‘동성애 폭로' 다큐 상영 후 ‘혐오세력’ 낙인… 한국판 ‘칙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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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카페 전경.

중앙대 앞 한 카페가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더 이상 게이가 아닙니다(I no longer gay!)>를 상영한 것과 관련, 이 학교 내 소위 성소수자 동아리 '레인보우피쉬(RainbowFish)'가 '보이콧'을 벌이고 다른 단체들도 연대 서명을 추진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서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발단은 이 '나귀와 플라타너스' 카페에서 지난 22일 이 영화를 김광진 감독 진행으로 상영한다고 예고하면서 불거졌다. 이 카페는 SNS를 통해 "동성애를 탈출한 Ex-gay(lesbian)들을 통해 동성애의 실체와 그 불편한 진실을 세상에 공개하니,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한다(아메리카노 무료 제공)"며 "성소수자 동아리인 '레인보우피쉬' 멤버들의 참석도 환영한다"고 공지했다.

해당 카페에서 22일 영화 상영회를 진행하자, 레인보우피쉬는 다음 날인 23일 '나귀와 플라타너스를 보이콧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해당 영화는 동성애를 '치료 가능한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지금도 곳곳에서 반인권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성적지향 전환치료'를 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했다.

레인보우피쉬는 "우리는 혐오의 징그러운 구애와 집착에 익숙하기에, 동성애에 대한 보수 기독교계의 전형적 무지와 구시대적 시각을 담아낸 영화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보지만, 이러한 영화가 오랜 세월 중앙인의 휴식처로 자리해 왔던 '나귀와 플라타너스'에서 상영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엄중한 현실"이라며 "캠퍼스와 불과 5분 남짓 떨어진 곳에서 성소수자에게 적대적 환경을 조성하려 한 '나귀와 플라타너스'의 대담한 시도는, 절대로 용납되어선 안 되는 일"이라고도 했다.

이들은 "87%가 넘는 동아리 대표자들의 찬성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여섯 번째로 성소수자 모임의 정동아리 등록을 이루어낸 대학이 바로 중앙대로, 지성의 전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소수자에 대한 학생사회의 인식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첨병에 중앙대가 함께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없는 분명한 사실"이라며 "이러한 가운데 '나귀와 플라타너스'의 행보는 우리를 넘어 우리와 함께하는 학생사회에 대한 도발"이라고 전했다.

해당 동아리 SNS 계정에서는 이 영화에 대해 "기독교 혐오 세력에게 주요한 혐오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러한 행사는 '열리는 것만으로도' 학내 성소수자들에게 다시금 스스로에 대한 혐오를 환기하게 하고, 잠정적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그들의 논리에 대해 정당하게 비판하는 절차 또한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이와 같은 혐오가 학교 근처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실력행사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또 "학내 성소수자 단체로서 학내 성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은 저희의 당연한 책무"라며 "이 과정에서 보이콧이라는 방법론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저희의 입장에 조금이나마 공감해 주길 바라는 뜻에서 댓글을 달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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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피쉬 로고.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카페 측이 '나귀와 플라타너스 대표입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26일 '중앙인 커뮤니티'에 게재했다. 이 대표는 "대학 시절, 제게도 동성애의 경험이 소용돌이쳤고, 그래도 '안 돼!' 하고 뭔가 단속을 했다. 삶을 집어삼킬 뻔했던 소용돌이도 잦아들었다"며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두 아이가 생겼으며, 교회도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문제의 영화를 감독에게 받아 보고 중앙대생들에게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기독교 색채가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제가 겪었던 것처럼 동성애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며 "사실 저희 카페에서 여러 번 영화 상영의 전력이 있었기에 이런 발상은 자연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시도 자체가 성소수자 분들에겐 얼마나 상처가 되는 일인지 이번에 잘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지금 레인보우피쉬가 내신 성명서를 놓고 찬반이 분분한데, 특히 '대학 근처 카페에서 주인장이 영화 한번 보여 준 걸 가지고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응은 '나귀와 플라타너스'를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라며 "고객의 90% 이상이 중앙대생으로, 편안하게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으로서 나름 애착을 갖고 있었던 카페였는데, 카페에서 '나는 더 이상 게이가 아니다'를 상영한다니 느꼈을 실망감과 일종의 배신감을 지금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주인장이어도 민감할 수 있는 개인의 소신을 중앙대생들이 애착을 갖고 있는 장소에서 펼친 것에 대해, 고객들과 상의해 신중하게 하도록 하겠다"면서도 "그래도 누군가가 동성애에 대한 당신의 입장을 말하라고 한다면, 피눈물을 흘리더라도 '원인이야 뭐든 간에 동성애로 끝까지 간다면, 그건 안 돼! 안 된단 말이야!'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소신을 굽히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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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순서대로) 레인보우피쉬의 성명서와 카페의 입장문, 레인보우피쉬의 2차 성명서.

입장문을 통해 이해를 당부했지만, '레인보우피쉬'는 '소신으로 위장된 혐오, 공감으로 가려진 위선: 나귀와 플라타너스의 입장문에 부쳐'라는 제목의 2차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내걸어, '갑질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 진보 일간지는 '동성애 혐오'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나귀와 플라타너스'의) 입장문에 따르면, 이번 시사회는 '동성애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근거해 개최한 것으로 나타나 있고, '이번 일로 성소수자들이 느꼈을 실망감과 배신감을 충분히 이해한다', '아무리 주인장이고, 개인의 소신에 근거한 일이라도 민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고객과 상의해서 진행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으나, '나귀와 플라타너스'가 입장문을 통해 진정으로 밝히고자 했던 바는 글의 말미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했다. 

이들이 지적하는 부분은 다음 대목이다. "그래도 누군가가 동성애에 대한 당신의 입장을 말하라고 한다면 피눈물을 흘리더라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원인이야 뭐든 간에 동성애로 끝까지 간다면, 그건 안 돼! 안 된단 말이야!'"

성명서는 "'나귀와 플라타너스'에 의하면 동성애는 '허용되어선 안 되는 것'이고,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 또한 정당하다. 그들의 성적지향은 전환치료를 통해 치유돼야 할 질병에 가깝다"며 "'동성애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도 이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고, 이 모든 것은 '피눈물을 흘려서라도' 지켜내야 할 주인장 개인의 소신이다. 성소수자들이 느꼈을 감정은 이해해 보겠지만 그렇다고 존중할 수는 없는 법으로, 뻔뻔하고 오만한 단언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늘 그렇듯, 혐오는 스스로 민낯을 드러낼 때 더욱 처절해진다. '원인이야 뭐든 간에'라는 전제는, 이러한 혐오가 합리적 사유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며 "논리적 비판과 과학적 근거자료가 통할 리 없다. 보이콧이라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동성애의 유전성과 선천성을 반박하는 과학적 근거자료도 많이 나와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또 "우리는 혐오의 익숙한 민낯을 이곳, '나귀와 플라타너스'에서 목도한다. 맹목적 혐오를 두고, 소신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이 자유로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인 양 포장한다"며 "이런저런 공감의 표현을 통해 따뜻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연출된 혐오는 더더욱 위선적으로 다가온다. 소신으로 위장된 혐오와 공감으로 가려진 위선. '나귀와 플라타너스'가 감추고 있던 혐오의 '민낯'"이라고 했다.

이들은 "우리는 '나귀와 플라타너스'의 입장문을 통해 보이콧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재확인한다"며 "맹목적 혐오와는 타협할 수 없고, 이러한 혐오가 학교 근처에 발붙이는 것 또한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정성 있게 사과하고, 이러한 행사를 다시 열지 않겠다고 약속하라. 그 두 가지가 선행되지 않는 한, 레인보우피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카페 대표 “어느 정도 각오했던 일... 매출보다 하나님나라와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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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입구.

선교단체 출신으로 오랜 기간 중앙대 학생들과 함께해 왔다는, 카페 '나귀와 플라타너스' 대표는 2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동성애나 성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해서 갈등하고 얼굴을 붉힐 필요 없이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슈가 된 김에 제가 대단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분명히 이야기해야겠다"며 "4년간 카페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써 왔는데, 그러던 '주인장'이 강경하게 '동성애는 안 돼'라고 하니 그들이 실망감 내지 배신감을 느꼈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 카페는 이번 사태 이후 다소 방문자가 줄어들고 매출이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이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영화 상영을 결정하면서 어느 정도 각오한 사안"이라며 "비즈니스 목적으로 매출이나 수익에 목을 맬 것으로 기대하고 보이콧 운동을 벌이는데, 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세상살이에 필요한 먹을 것 입을 것들을 더해 주시리라는 약속을 믿는다"고도 했다.

동성애에 대해 카페 대표는 "포스트모던 시대가 되면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라 '다름'을 이야기하면서 동성애자들이 '소수'와 '인권'을 내세우는데, 이러한 진상을 모른 채 동성애를 찬성하는 대학생들이 꽤 있고 성관념 자체가 개방화되면서 이런 선이 무너지기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