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대가는 그 질문에서 깊은 영성이 묻어났고, 영성의 대가는 그 대답에서 냉철한 지성이 솟아나왔다.

‘삶과 가족’이라는, 평범하지만 한없이 비범한 화두 아래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과 영성이 만났다. 이어령 박사(이화여대 석좌교수, 양화진문화원 명예원장)와 이재철 목사(백주년기념교회)는 양화진문화원 2010 목요강좌가 마련한 ‘지성과 영성의 만남’ 8차례의 대담 중 첫번째 시간을 4월 8일 오후 가졌다.

강의가 열린 서울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선교기념관은 1시간 전부터 ‘라이브 무대’를 사수하려는 성도들로 넘쳐났다. 2백석이 채 안돼 보이는 선교기념관에 들어오지 못한 수많은 성도들은 홍보관 등에서 스크린으로 이들을 만나야 했다.

問 삶이란 무엇인가?
이어령 박사 “말로 할 수 없고, 겪어 봐야 알 수 있다”

이재철 목사 “죽음이라는 거울 앞에 서야 알 수 있다”

▲이날 목요강좌는 한 시간 전부터 이어령 박사와 이재철 목사의 주옥같은 이야기를 들으려는 성도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대웅 기자

사회자 김종찬 박사(전 KBS집중토론 사회)는 처음부터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주제를 던졌다. 이에 이어령 박사는 “아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다”며 “머리로 느끼는 게 앎이라면, 삶은 온몸을 던져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앎은 말로 할 수 있지만, 삶은 말로 할 수 없고 체험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는 것은 사는 것보다 훨씬 쉽다고도 했다.

“담배를 무슨 맛으로 피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그 맛에 핀다’고 답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삶은 겪어봐야 알고 체험해 봐야 안다”며 “성경을 안다, 기독교인을 안다는 말이 감히 겁나는 말이듯, ‘기독교인이 뭐냐’고 물으면 말은 못 하지만 번지점프하듯 시늉만 내지 말고 진짜 뛰어들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어 성경이 말하는 삶에 대해 이재철 목사는 “어떤 대상을 분석할 때 그 대상을 들여다 보면 실체를 놓치기 쉽다”며 “그 대상과 상반되는 것을 같이 놓고 보면 우리가 요구하는 대상을 훨씬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므로 삶을 알기 위해서는 대비되는 죽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이 목사는 말했다. 이 목사는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고 장소도 구별되지 않고, 죽을 사(死) 자처럼 그야말로 한밤중에 비수처럼 날아온다”며 “우리가 오늘 하루를 살았다, 50년을 살았다고 하는데 사실은 하루를 죽은 것이고, 50년을 죽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임을 알면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았을 때 하나님을 찾게 되며, 죽음을 알고 삶을 알면 하나님 말씀은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인생 사용설명서가 된다. 이 목사는 “삶이라는 제품을 바르게 쓰면 그 삶이 의미있어진다”며 “삶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창세기 5장의 에노스처럼 죽음이라는 거울 앞에 서야 하고, 그 죽음 앞에서는 여호와를 찾지 않을 수 없으며, 참된 삶의 실체를 인생 사용 설명서를 통해 알아갈 수 있다”고 전했다.

問 참된 삶은 무엇인가?
이어령 박사 “생사 넘어서야 보이는 것”

이재철 목사 “창조의 목적대로 사는 것”

▲최근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펴낸 이어령 박사. ⓒ양화진문화원 제공
사회자는 곧바로 ‘어떻게 사는 게 참된 삶인가’를 물었다. 이어령 박사는 먼저 “예술가는, 문학가는 해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며 “슬픔을 표현하고 노래할 수는 있지만, 슬픔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 이런 아픔을 놓고 기도할 때 영성이 찾아오고, 지성이 표현한 고민을 해결하는 일은 영성의 소관이라고도 했다.

이 박사는 “우리는 독일 시인 하이네가 노래했듯 빛도 아니고 어두움도 아닌, 대낮도 아니고 한밤도 아닌 저녁 황혼에 침대 위에서 누워있는 마취 환자처럼 어렴풋한 상황에 있다”며 “하이네는 그리스의 신들을 그렇게 좋아했지만, 그 신들은 인간들처럼 같이 울어주고 슬퍼해줄 수는 있어도 두 팔을 뻗어 우리를 끌어안을 수 없음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에게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빛과 어둠,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방황하고 괴로워한다”며 “생사를 넘어서야 생사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게 빛이고 어둠인지 알 정도가 되면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로 영성의 의견을 구했다.

이재철 목사는 이에 “바로 산다는 기준은 절대 우리 자신이 아니다”며 “우리의 대전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과 의도에 맞춰 사는 것이 바른 삶”이라고 답했다.

그 기준은 물론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목사는 “죽음을 알고 생명이신 하나님을 좇는 자들에게는 아까도 말했듯 성경이 인생 사용설명서”라며 “모든 사람들이 고가 제품을 살수록 가치를 극대화시키고 의미를 절대화시키기 위해 설명서를 숙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인생이라는 제품을 하나님의 인생 사용설명서대로 사용하지 않고 바르게 살 수 있는 길은 있을 수 없다”고 전했다.

問 가정의 기원과 목표는 무엇인가?
이어령 박사 “사랑이 없는 가정들은 주식회사일 뿐”

이재철 목사 “삶의 모든 문제는 어그러진 가족관계”

이러한 삶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족’의 기원과 목표에 대해서도 지성과 영성은 서로의 입장에서 서로에게 다가갔다. 이어령 박사는 가정이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적 측면과 애를 키우고 낳는 생물학적 측면에서 중요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 이념적이고 종교적인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시장 원리로 가장이 돈을 못 벌어온다고 해서 가장을 내쫓지는 않는다”며 “사랑이 없는 가정은 주식회사일 뿐이고, 가족은 절대 희생과 헌신이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예수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경제적인 면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는 안 되지만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점을 알고 경제적인 면에만 가정의 목적을 둬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 박사는 자신이 갈등을 느꼈던 예수님의 가족관을 설명하면서 논지를 진전시켰다. 그는 “예수님은 가족이 찾아와도 듣기에 언짢은 소리를 하셔서 유교에 젖어있던 한국 사람에게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지만, 가족보다 더 큰 사랑과 모두를 가족처럼 사랑할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며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제가 옛날 믿었던 가족관이 기독교를 믿고 달라진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해석됐다”고 밝혔다. 사랑 안에서 가족보다 더 큰 하나님 나라의 가족 공동체를 일컫는 것이다.

이재철 목사는 “우리는 성경 첫번째 책을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기록이라며 창세기라고 부르지만, 그 이야기는 2장에서 끝나고 3장부터 끝까지는 가정을 세워 가시는 이야기”라며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세우셨다가, 타락해서 노아의 가정을 세우시고, 바벨탑 사건으로 또다시 타락한 이후 아브라함 가정을 찾아 역사를 이루시는, 창세기는 창가정기라 할만 하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건강한 것은 기본 단위인 가족 공동체가 건강하다는 의미고, 병든 사회를 결국 가족 관계가 무너진 것이므로 모든 삶의 문제는 어그러진 가족관계의 산물이라고도 했다.

가족이 추구해야 하는 삶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인이 걸어가는 길이 전제되지 않으면 우리가 말하는 성공은 세상의 성공과 구별되지 않을 것”이라며 “땅 한 평 없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이나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힌 베드로, 참수형을 당한 사도 바울 등은 모두 지금 관점에서는 실패한 사람들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가는 길이 구별된 길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베드로가 ‘황제의 도성’인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황제가 아닌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한 것처럼, 부와 명예가 있는 황제의 길이 아닌 나를 버리고 영원을 얻는 그리스도의 길을 추구해야 한다고도 했다.

問 결혼과 이혼, 삶의 자세에 대해…
이어령 박사 “늑대와 싸워도 먹히지 않는 강한 양 만들자”
이재철 목사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우라”

▲신학생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목회자인 이재철 목사. ⓒ이대웅 기자
결혼과 이혼, 삶의 자세에 대해서도 두 대가는 다양한 조언을 쏟아냈다. 날로 심각해지는 이혼 문제에 대해 이어령 박사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가정이 황폐해지고 붕괴되며 나아가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라는 온전한 삼각형이 갖춰진 가정을 찾기 힘들게 됐다”며 “모두들 가정에 병이 있는데도, 다들 행복한 척 하고 바깥에 들리지 않게 TV 켜 놓고 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더 이상의 가정 파괴를 막기 위해 부부생활의 패턴이 믿음과 사랑, 소통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닭살 돋지만 서양 사람들처럼 표현해야 하고, 그렇게만 하면 이혼하지 않을 수 있다”며 “부부가 같이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가 있거나, 하다 못해 테니스라도 같이 치면서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박사는 지식정보 사회를 맞는 성도들의 자세에 대해 “믿는 사람들은 ‘온유’라는 말에서 나타나듯 아주 약해 보인다”며 “하지만 그것이 힘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또 힘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늑대한테 잡혀먹는 양이 되지 말고, 늑대보다 강한 양을 만들되 늑대와 싸우다가 우리가 호랑이가 돼서는 안 된다”며 “이제 절대 약한 양, 쫓기는 양, 늑대한테 목 내미는 양이 아니라 목자 없이도 내 힘으로 강력한 늑대를 이기는 양이 돼야 하고, 이것이 오늘 같은 험악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독교인들의 살 길”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에게 무조건적인 믿음과 희생만 강조해서는 안 되며, 공부도 하고 기술도 쌓고 연구도 해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냈을 때 가족이라는 세속 공간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박사는 자신이 지은 ‘도끼 한 자루’를 인용하면서(보아라 파란 정맥만 남은 아버지의 두 손에는 도끼가 없다) “무지개거나 꿈이거나 안개거나 무언가 아이들이 황홀한 눈으로 쳐다보고 가슴 두근거리는 눈으로 봐야지 도끼 같은 무시무시한 것으로는 안심시킬 수 없다”며 “오늘 대담이 끝나고, 도끼 대신 우리 아버지 손에 무엇을 들려야 할지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재철 목사는 가정의 기초가 되는 바람직한 결혼생활에 대해 언급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은 결혼에 대해 창세기에서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 말씀하셨다”며 “결혼한 남자와 아내가 정말 바른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남편에게 있어 아내가, 아내에게 있어 남편이 서로 0촌, 0순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0순위를 지킬 수 있는 동기는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나와 한 몸을 이룰 대상으로 내려주셨다는 믿음이고, 그 믿음은 상대에 대한 믿음으로 옮겨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러가지로 부족하고 생각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짝지워 주셨기 때문에 함께 새로운 존재로 나도 저도 아닌, 한 몸으로 승화됨을 믿으라는 얘기다.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성경이 부모와 자식 관계를 이야기할 때, 자식의 의무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고 사실 좋은 부모가 되라는 말씀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성경을 통틀어 몇 차례밖에 없는데, 이는 자식이 있기 전에 부모가 먼저 있었고 좋은 부모가 바른 믿음·가치관·인생관을 갖고 살면 좋은 자식들이 되기 때문이라고 이 목사는 말했다. 그는 “부모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좋은 부모는 말하자면 나이가 들수록 자기만 아는 노인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마음을 자꾸 갖는 어른이 돼야 한다”고 풀이했다. 이를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같이 늙어가야 하고, 철저한 청지기 의식으로 살아야 한다.

이 목사는 “부모와 자녀간에도 채워질 수 없는 틈이 있으며, 21세기 현대인들은 모두 절대 혼자로 태어나 고독하다”며 “고독한 존재끼리 살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더 황폐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를 생명과 소망으로 채워가면 하나님 은혜 속에서 가정이 회복되고 개인의 삶이 회복되며, 이를 통해 사회가 회복되고 시대가 회복된다고 성경은 말한다”고 전했다. 그는 “늑대보다 강한 양이 되라는 박사님의 말은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우라는 예수님 말씀과 맞닿아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을 내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약할 때 가장 강하다는 역설의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고 대담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