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1년 10월 16일
본문: 마태복음 26:6~13
설교: 김동호 목사
제목: 옥합을 깬 여인처럼

▲김동호 목사(높은뜻연합선교회) ⓒ크리스천투데이 DB
집회 요청을 자주 받습니다. 그런데 가끔씩 집회를 요청해 놓고는 그것을 철회하는 연락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부교역자들이 저를 청년 집회나 부서 집회에 강사로 초청을 했는데 담임목사님이 뜻밖에 허락을 해 주지 않아서 아주 난처해하고 미안해하며 집회 약속을 철회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강사 초청을 받았습니다. 전에도 그 교회 청년부서에서 강사 초청을 받았다가 위와 같은 이유로 철회를 당한 적이 있는 교회라 담임목사님하고 의논을 해 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부서 일은 이제껏 자유롭게 부서가 강사를 결정하여 왔으니 아무 문제없다고 하셔서 허락을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다시 제가 말씀 드린 대로 되었습니다. 상대방 쪽에서는 되게 미안해하시지만 저는 제법 자주 당하는 일이라 별로 마음 쓰지 않습니다.

얼마 전 facebook이라는 것을 시작하였습니다. facebook을 시작하자마자 친구하자는 요청이 제법 많이 들어왔습니다. 아직 일주일이 되지 않았는데 그 인터넷 공간에서 저와 친구를 맺은 수가 2,000을 넘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나이든 분들도 제법 있지만 아무래도 나이든 사람보다는 청년들이 더 많은데 청년들이 저와 친구를 맺겠다고 요청을 해 주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하고 그랬습니다.

사람들의 저에 대한 평은 호불호(好不好) 분명합니다. 저에 대한 평가를 좋게하여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로 저에 대한 평가를 좋지 않게 하여 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아니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어느 것이 진정한 나에 대한 평가일까? 물론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평가가 맞았으면 하지만 그것은 사실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사실 사람들의 평가에 아주 둔감한 것은 아니지만 제법 신경을 잘 안 쓰는 편입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신경을 안 쓰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리고 이젠 제법 그게 됩니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이지만 제가 신경쓰는 것은 사람의 평가와 판단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의 평가와 판단입니다.

꽤 오래 전 소망교회 청년부 집회를 양수리 수양관에서 했었습니다. 그때 집회가 참 좋았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그 교회 청년들로부터 제법 많은 팬레터(?)를 받았습니다. 너무 기쁘고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이게 위험할 수 있겠다싶어서 한 번 읽은 후 그것을 모두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청년들에게 그 사실을 일러 주었습니다. 고맙지만 잘못하면 그게 지나쳐서 내가 위험해 질 수 있기 때문에 그랬다고 이야기 했더니 이해해 주었습니다.

할 수 있으면 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평에 대하여 더 마음을 쏟습니다. 그것이 더 제게 유익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나를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하여 그와 같은 부정적인 평가와 비판을 유념하지만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싫거나 무서워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평가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평가가 무서워서 일을 망설이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두려워하고 정말 마음에 부담이 되는 평가는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저는 사람의 평가 앞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의 평가 앞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내가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이 두렵지 않고 하나님이 두렵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면 사람과 세상이 두렵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과 세상을 두려워하게 되면 하나님이 두렵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고 세상과 사람들이 두려운 사람들은 모두가 다 실패합니다. 그러나 세상과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사는 사람들은 성공합니다.

사람의 평가는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습니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사람들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와 같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는 사람은 자연 위선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 지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어떤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보통 사람들의 일 년 수입만큼 가치가 나가는 향유를 그것을 옥합을 깨트려 부은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행동에 대하여 본문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그 여인의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게 하겠다니 세상에 그런 찬사가 어디 있겠습니다. 그것도 사람으로부터 받은 평가와 찬사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평가와 찬사라니 말입니다. 저도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평가를 받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창세기 5장에 보면 아담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는 몇 살에 누구를 낳았고 몇 년을 살다가 죽었다라는 기록이 거의 전부입니다. 저는 그 아담의 계보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 아담의 계보를 읽으면서 저는 나는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과 역사책에 그렇게 기록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옥합을 깬 여인과 같은 평가를 받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그 평가가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기록될만한 그런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설교 중에 금기로 배운 설교 중 가족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 특히 아이들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오늘도 좀 하려고 합니다. 용서하여 주시고 좋은 쪽으로 받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큰 아들이 작년 방학 동안 한국에 나와 있었습니다. 나와 있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한 모양입니다.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냉장고를 사 주었습니다. 저희 집 냉장고가 오래되어 컴프래셔 소리가 조금 요란 했는데 그게 보기 불편했던지 바꾸어 주었습니다. 솔직히 제게 냉장고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아들의 형편을 생각하면 자기 딴에 옥합을 깬 것입니다. 세탁기까지 바꾸어 주겠다고 하는 것을 세탁기는 아직 쓸 수 있으니 바꾸는 것은 낭비라고 제 아내가 고집을 부려 냉장고만 사놓고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희 집 냉장고에는 제 눈에만 보이는 글씨가 붙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우리 큰 아들이 사준 냉장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냉장고입니다. 저희 집에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냉장고가 있답니다.

둘째 아들 아이가 최근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영화를 하는 아이인데 취직을 했다기 보다는 어떤 방송국의 드라마를 제작하는데 어느 작품을 제작하는 것에 계약을 하였다는 것이 맞습니다. 처음으로 번듯한 수입이 생긴 것입니다.

그 처음 수입으로 아비인 제 선물을 사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제 딴에는 좋은 시계를 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오메가라는 시계를 산 모양입니다. 이제껏 자기가 한 번도 써보지 못한 돈을 썼다고 은근히 일러주었습니다. 제가 그 둘째 아이의 이야기를 facebook에 올렸습니다.

<옛날에는 손목시계도 귀했다. 고등학교 때에도 손목시계를 차고 학교에 오는 친구가 반에 몇 명 되지 않았다. 내 경우도 대학예비고사를 보게 되어 처음으로 손목시계를 샀었다. 처음으로 내 손목시계를 차고 그게 얼마나 좋았었는지 아직도 그 느낌이 새삼스럽다. 요즘은 시계가 너무 흔해서 우리 집에 굴러다니는 손목시계가 몇 개인지 조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둘쨋 놈이 취직을 하였다. 첫 월급을 타서 내 선물을 준비한 모양이다. 시계를 샀단다. 오메가 손목시계. 얼마를 주었는지 이야기를 안 해 주는데 제법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한 모양이다.

...

쓸데 없는 짓 하지 말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들은 척도 안하고 그냥 산 모양이다. 손목시계는 몇 만 원짜리부터 몇 십 만 원짜리 몇 백 만 원짜리 그리고 몇 천 만 원 심지어는 억대 시계도 있다.

나는 시계는 시간만 맞으면 된다고 정말로 생각하는 사람이고 시계와 같은데 돈 쓰는 일을 바보스러운 일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 둘째 놈이 내가 가장 바보스럽게 생각하는 짓을 하고 말았다. 고집스럽게.. 지 아빠의 마음과 생각을 다 알면서도.. 아버지인 내게 좋은 것을 해 주고 싶어서다.

그 마음이 고맙다. 그래서 정말 바보 같지만 그 오메가 시계 차고 다닐 작정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손목시계를 차고 좋아했던 그 마음으로, 아니 그 마음보다 더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내가 오메가 시계를 차고 다녀도 그러니 좀 용서해 주셨으면 좋겠다.>

저는 우리 둘째가 저를 위해 자기 나름 옥합을 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팔면 가난한 사람 여럿을 도와 줄 수 있을 줄 알지만, 제 마음 속에 그 계산이 언제나 앞서지만 그 오메가 차고 다닐 겁니다. 그리고 평생 자랑할 겁니다. <이 오메가는 우리 둘째 놈이 사 준거야...!!!>

첫째, 둘째 이야기를 했으니 막내 이야기까지 마저 하겠습니다. 막내 놈이 느닷없이 제 구두를 사가지고 제 사무실로 왔습니다. 패션 디자이너를 하겠다던 놈이기 때문에 옷이나 구두를 보는 안목이 저하고는 다릅니다.

제 눈에 보기에도 꽤 좋아 보이는 구두를 가지고 왔습니다. 아니 꽤 비싸 보이는 구두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고맙기는 했지만 야단을 쳤습니다. 아직 학생이어서 번듯한 수입이 없는 자식이 제 분수에 맞지 않는 선물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형이 월급 탔다고 아마 막내에게 용돈을 좀 주었던 모양입니다. 막내는 그 용돈을 받자마자 제 구두를 산 모양입니다.

큰 아들이 사준 냉장고는 몰라도 저는 둘째와 막내가 사준 시계와 구두는 절대 제 돈으로 사지 않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시계를 차고 그런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에 대하여 앞으로도 비판적으로 말할 겁니다. 그 생각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겁니다. 그 돈이면 인도에서, 아프리카 말라위 그물리라에서, 베트남에서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다고 계산하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 아이들이 사 준 그 시계와 그 구두를 차고, 신고 다닐 겁니다. 그것은 시계와 구두가 아니라 내 아이들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가에 대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감동하여 저는 설교 시간에 그 이야기를 꺼내어 우리 아이들의 행동을 기념(?)하였습니다. 옥합을 깬 여인의 행동에 대하여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행동을 기념하게 하겠다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 담긴 마음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여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여 힘들게 모은 돈으로 하나님 냉장고 사드리고 싶습니다. 오메가 사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구두 사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의 여인과 같이 하나님을 위하여 제 옥합을 깨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전심으로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찬송 부르고 싶습니다. 그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이 진심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옥합을 깨는 여인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노력하는 교회 중에 하나입니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 프로잭트입니다. 희년 운동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탈북자 사역을 위하여, 사회적 취약계층, 성경이 말씀하시는 ‘소자’들을 위하여 우리 예배당 건축하는 일을 우선 포기하고 그것을 깨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정작 우리는 그 돈이 없어서 이곳, 저곳을 방황하였습니다. 광야 생활을 하였습니다. 우리 높은 뜻 푸른 교회가 높은 뜻 모든 교회를 대표하여 고생하였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문학의 집, 100주년 기념관, 동덕여고, 서울 고등학교를 전전하였습니다. 특히 동덕여고 강당에서는 추운 겨울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강당에서 예배드리기 위하여 교인들이 다 에스키모처럼 옷을 입고 와서 예배를 드렸었습니다. 설교하는 저도 등산화를 신고, 내복을 입고, 오버 코트까지 입고 올라가 설교했었습니다.

교역자들과 직원들이 특히 고생이 많았습니다. 매주일 예배를 위하여 무대 설치를 하고, 강당 바닥에 의자를 세팅하고, 예배가 끝나면 그것을 다 해체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난히 많이 내렸던 눈을 치우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생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은 정말 아름답게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의 자립과 자활을 위하여 시작한 메자닌 아이팩과 메자닌 에코원 공장은 잘 되고 있습니다. 고마운 손 공장은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장을 줄였습니다. 그러나 메자닌 아이팩과 에코원 공장이 잘 되어 고마운 손 공장의 직원을 그 공장으로 보낼 수 있어서 공장은 어렵지만 우리 탈북자 직원들은 지킬 수 있었습니다. 블리스 앤 블래스도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을 세워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이 국내를 넘어서 세계로 퍼져가게 되었습니다. 인도와 베트남 그리고 아프리카와 러시아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베트남 의료선교를 참 열심히 하였습니다. 베트남 빈농이라는 곳엘 해마다 가서 봉사하는데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잘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베트남 빈농 시와 아주 가깝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빈농시로부터 야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25만 원 정도씩을 대출하여 자리를 잡게 하는 일을 제안 받아 우선 100명에게 지원을 하기로 계약을 하였습니다.

우선 백 명으로 시작하지만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이 된다면, 다시 말해서 빈농시가 나서서 대출된 돈이 성공적으로 회수 된다면 다음에는 500명 분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프리카 말라위에서도 큰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물리라라고 하는 7,000명 정도가 사는 가난한 마을을 입양하여 교육, 의료, 농업 전반에 걸쳐 앞으로 5년 동안 성공적으로 자립 시키는 프로잭트를 유엔의 기관과 계약을 맺고 하기로 하였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성공확률이 높지 않은 프로잭트입니다.

그런데 시작이 좋습니다. 느낌이 좋습니다. 자꾸 길이 열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보입니다. 그리고 좋은 동역자와 협력자들이 끊임없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이 프로잭트가 성공하게 된다면 우리 열매나눔재단과 열매나눔 인터내셔널은 그 입지가 세계적으로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기록될 일이 될 겁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서 기억되고 기념이 될 일이 될 겁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 주실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이 우리에게 축복이 됩니다. 그냥 하나님을 아는 사람 되지 마십시다. 먼 발치에서 좇아가는 사람 되지 마십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진심으로 그리고 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십시다.

옥합을 깨어 향유를 부어도 그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십시다. 그렇게 살면 우리의 삶이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서 기억이 되고 기념이 될 만한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이 될 줄을 믿습니다.. 옥합을 깬 여인처럼 하나님 사랑하며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