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총장.

부모님께서 내미시는 손! 그 자식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노년빈곤(老年貧困)이란 말이 있다. 노년의 빈곤은 노추(老醜)로 이어져 불행한 모습이 된다.

자식이 내미는 손과 부모가 내미는 손은 어떻게 다른가? 부모는 자식이 내미는 그 손에 자신의 모든 것을 쥐어 주면서, 애벌레가 성충이 되도록 애정으로 돌본다. 그리고 껍질만 남은 곤충처럼 되어 버린다. 그러면서도 부모는 자식의 손에 더 많은 것과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세월이 흘러 이제 부모는 늙어 힘이 없고 가진 것도 없다. 너무 늙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몇 푼 용돈을 얻기 위해 자식에게 손을 내민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와 다르다. 부모가 내미는 손이 보기 싫고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이 내미는 손에 섬으로 주었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홉으로 주는 것마저 부담스러워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니 할 수 없는 거지, 사랑도 내리사랑 아니던가. 두 부모가 열 자식 곱게 길렀지만, 열 자식이 부모 두 분을 따뜻하게 모실 수는 없는 것이다.

성경에도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 가급적 아버지에게서 멀리 떠나 타국으로 가서 자기 뜻대로 허랑방탕하게 살다, 재산을 탕진하고 나서 돼지와 같은 것을 먹으려 하나 그것도 허락되지 않는 극한적 벽에 부딪힌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 집에 가서 머슴 노릇이라도 해야겠다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되돌아올 때, 아버지는 그 아들을 먼저 알아보고 대문 밖까지 나와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던가?

“서둘러 가장 좋은 옷을 가져와 아들에게 입혀라. 또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고 발에 신발을 신겨라.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끌고 와서 잡아라. 우리가 함께 먹고 즐기자.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즐기기 시작했다(눅 15:22-24)”.

사랑하는 부모나 효도하는 자녀는 우리 가정윤리의 기본이면서, 효지백행지본(之百行之本·효도가 백 가지 행실의 기본이라)이다. 사람이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까마귀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동물이다. 부모가 안 계시면 내 몸이 어찌 이 세상에 존재할 수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우리 모두 국가(國家)의 기본 단위이자 세포조직인 가정(家庭)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 “나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여유를 주시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믿음으로 하나되게 하소서. 물질적인 풍요보다 마음의 풍요가 더 소중함을 느끼게 하시고,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서로에게 고통을 주지 않도록 도와 주소서.

없는 것에 불평하기보다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여유와 은총을 주소서. 교만에서 생기는 자존심과 허영심을 모두 버리고, 겸손함과 정직함으로 살아가도록 하소서. 작은 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도록 하시고, 모든 사람을 존중할 수 있는 겸허함을 주소서.

저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이 있기를 바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기쁨을 느끼도록 하소서. 서로를 믿고 사랑하며, 사랑 안에서 모두가 함께할 수 있도록 하소서. 삶이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주어진 삶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소서. 실수하거나 잘못하였을 때도 욕하고 비난하기보다, 용서하고 격려하며 포용할 수 있는 넓고 깊은 마음을 갖도록 하소서.

노력 없이 결과를 기대하지 않도록 하시고, 성실과 정직으로 모든 일에 임하도록 하소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해 열 가지의 일을 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진정한 하나의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미미한 저의 능력과 지혜를 저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위해 주신 것임을 잊지 않도록 하소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기쁨과 즐거움이 함께하는 열린 가족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과의 기도를 먼저 하고 그날 날짜 이름과 똑같은 장(章)의 잠언을 반복해 읽은 후 신문을 읽고 TV를 켜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신앙과 사람들과의 수평적 신앙이 균형 있게 유지되어야 하고, 부모님과 자녀 사이의 수직적 인간관계가 공고해야 남편과 아내, 형제와 자매 사이의 수평적 인간관계도 편안해질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영혼의 부모님(하나님)과 보이는 육신의 부모님(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자녀들이 되어야겠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