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 소장(선교신학연구소). ⓒ크리스천투데이 DB

필자는 그동안 이슬람 세계관에 해당되는 논문을 여러 차례 발표하였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20세기 후반 이슬람권에서 확장되는 내부자운동과, 그 내부자들을 위한 번역 성경이 기독교 세계관을 잘 전달하고 있는지에 관해 선교신학적으로 변증하고자 한다.

기독교 신앙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성경이 본문 그대로 잘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점차 기독교와 이슬람과의 혼합주의적 제3의 종교나 이단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 전달로 인해 발생하는 영적 충돌과 진리 대결은 선교 현장에서 피할 수 없는 사실이며, 선교사들은 문화적 충돌이 최소화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지만 타문화권 선교로 인한 영적 충돌 과정에서 성경적 세계관이 수립되지 못하면, 혼합주의 이단과 우상세력이 그 안에서 무성해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현대 종교다원주의 시대에서 기독교적 거대 체구인 WCC와 가톨릭이 점차 우상의 개념을 상실해 가고 반개종주의적으로 기울어지는 상황에 병행해, 이슬람권에서도 기독교가 내부자운동을 통해 점차 사도적·성경적인 복음을 상실하고 반개종주의적·종교통합적 공동체로 변질될까 우려된다(갈 1:6-10).

새로운 이슬람선교 방법을 주창한 내부자운동 중에는 MBB(Muslim Background Believer)들의 상황화 신앙 형태를 C1-C6로 분류한 존 트라비스, 내부자운동의 주창자 케빈 하긴스, 낙타전도법을 시작한 케빈 그리슨, 복음서와 사도행전 번역자 마즈하르 말루히 등이 “과거 믿던 이슬람을 버리지 않은 채 예수를 믿고자 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서로 다른 세계관을 포용할 뿐 아니라, 오히려 삼위일체 하나님 대신 알라를, 아버지 하나님 대신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 대신 메시야를 믿고, 교회 대신 모스크에 모이도록 한다.

이러한 상황화론은 1990년 처음 등장한 ‘C1-C6 스펙트럼’이라는 인도네시아 자바섬 지역 무슬림들을 위한 전략에서 시작돼, 1998년 소위 6가지로 상황화된(contextualize) 기독교 공동체로 분류·인쇄돼 세상에 알려졌고, 필 파샬에 의해 더욱 견고해졌다. 혼합적 포용적 세계관은 C5와 C6 공동체에서 발견된다. 우리가 연구하게 되는 신학은 C5 상황화 신학에 관한 것이다.

C5 상황화 신학 중 케빈 그리슨의 낙타전도법은 목사를 ‘이맘’, 그리스도인을 ‘이사리 무슬림’이라 부른다. 그리슨은 알라와 삼위일체 하나님을 동일시하고, ‘알라가 내린 완전한 계시’가 초기 성경에 담겼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현재까지 2천 년간 성경이 온 세계 방언으로 번역이 되었지만, 그 내용을 고친 역사는 없다. 그러나 내부자운동 지도자들은 무슬림들이 어떤 증거도 없이 하는 “‘성서의 백성들(기독교와 유대교)’이 ‘알라의 계시’를 왜곡해서 믿지 못할 경전이 되게 했다”는 주장에 대해 변증하지 않는다. 또 모세오경이 이슬람교가 전파되기 전에 이미 사라졌다는, 유스프 알리와 모든 무슬림들이 예외 없이 기독교 성경이 변질된 문서라고 잘못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침묵하며 수긍하는 것 같다. 내부자운동 지도자들의 성경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엄청난 잘못으로 발전할 수 있다.

케빈 그리슨은 오히려 꾸란에 대해 “하늘의 영원한 소망을 주는 놀라운 진리”라고 좋은 평가를 내린다. 그는 꾸란 Sura 3:42-55이 예수의 신성을 증명한다고 주장하며, 예수는 직접 알라에게서 왔으며, ‘말씀’으로 불리는 예수는 알라 자신의 한 부분이라면서 성경과 꾸란의 혼합주의를 추구한다.

내부자운동 신학자들의 공통점은 위와 같이 꾸란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 꾸란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반삼위일체적이고 반기독적 구절들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제목을 쓰면서 최근 작품이고 신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가장 정통 안목으로 편집된 문서인 <크리슬람(종교문화연구소, 조수아 링겔 외 저, 전호진 역, 2014)>이라는 문서를 참작했다. 필자는 내부자들의 새 성경번역본을 입수하지 못하고 위 문서 내용을 재인용한 점과, 실제로 내부자운동가들을 접하지 못하고 문서에 의해서만 연구하게 됨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자료들을 신뢰한다. 본문에서 이용된 꾸란은 <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파하드 국왕 꾸란 출판청, 1999)>이다.

이슬람에 관한 변증적인 논문을 쓰면서 무슬림 구도자들도 필자의 원고를 읽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꾸란 구절 뿐 아니라 성경 말씀도 본문에 많이 인용하였다.

1. 꾸란의 생성

무슬림들의 기본 신앙고백 6개 중 세 번째 항목은 경전에 관한 고백이다. 그것은 모세의 구약성서(타우라트), 다윗의 시편(자부르), 예수의 신약성서(인질), 무함마드의 성 꾸란이다. 그러나 현실적 경험으로 무슬림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독교 변증가 존 길크리스트는 꾸란이 인정하고 있는 토라와 인질은 구약과 신약을 뜻한다고 한다. 사실 성경을 파는 모든 이슬람 서점에서 토라를 구하면 구약성경을, 인질을 구하면 신약성경을 준다.

그런데 모든 무슬림들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는 원형이 없고, 기독교인들이 원형을 변질시켰으며, 후세 신자들이 만들어 낸 해설서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다. 반면 이슬람의 교리문답집은 꾸란을 알라가 무함마드에게 23년간 걸쳐 계시한 것이고, 무함마드가 그의 생애 중에 손수 쓰고 정돈한 것으로서, 아랍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오늘날 유일하게 남아 있는 우스만의 꾸란은, 역사적으로 여러 개의 꾸란 원본들 중 하나였다고 알려진다. 그것들은 무함마드가 죽은 후 첫 번째 칼리프인 아부 바크르가 편집한 꾸란과, 두 번째 칼리프 우마르의 딸이며 무함마드의 처들 중에 하나인 하프사가 편집한 꾸란이며, 이후에는 이전 꾸란들을 모두 불태우고 남은 제3대 칼리프인 우스만의 꾸란이다.

이미 알려진 이슬람의 계시와 꾸란의 생성에 관해 요약하자면, 610년 무함마드가 히라산 동굴에서 이름 모를 영에게서 소위 ‘계시’를 받기 시작한다. 622년 메디나로 이주하여 632년 그가 사망하기까지 계속되어 23년 동안 받은, ‘알라’의 율법들이다. 꾸란의 단어들 중 3/4는 성경에서 퍼간 것들이고, 미쉬나와 탈무드에서 전승된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무함마드는 문맹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쓴 것은 하나도 없었고, 비서들이 받아 썼다. 그들 중 이슬람으로 개종한 압둘라 마수드(Abdulla B. Masud)와 우바이 캅(Ubai B. Kab)이 있다.

이 같이 꾸란은 몇 개의 원본들을 가지고 있었다. 알 부카리는 대추야자, 흰 돌들, 사람들의 가슴에서 꾸란을 수집했다고 기록하고, 첫 번째 꾸란은 첫 칼리프였던 아부바크르 때에 자이드 타벳(Zaid ibn Tabet)의 꾸란 수집에 의해 편집된 것이다(Al Hadis, Vol. 3, 707). 이 아부 바크르의 꾸란은 두 번째 칼리프인 우마르 카탑에게 전해졌고, 우마르는 죽을 때 이 자료를 그의 딸이며 무함마드의 부인이었던 하프사에게 주었다. 이 우마르의 꾸란 원본은 634년에 편집된 것이다.

650년에는 세 번째 칼리프였던 우스만 아판(Uthans b. Afan)에 의해 편집된 꾸란 원본이 있었다. 그러나 이 꾸란 원본들이 일치하지 않아서 우스만은 자신의 것만 남기고 다른 것들을 모두 불태웠다. 알 부카리는 다른 꾸란 원본들을 불태우라는 우스만의 명령에 관해 아래와 같이 진술한다: 그는 무슬림이 필사한 사본 중 하나를 모든 나라에 보냈고, 게다가 편집된 모든 것 또는 원본 중에 그 필사한 사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태우도록 명령을 내렸다(Al Hadis Vol. 3, 708) 그래서 시아파는 현재의 꾸란을 무함마드의 꾸란이 아니고 우스만의 꾸란이라 비난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용하는 꾸란이 ‘무함마드의 꾸란’이라는 무슬림들이 고백은 사실상 역사적 근거가 없다. 현재 우스만 꾸란에는 많은 모순들이 보이지만, 우스만의 이러한 극단적 처사로 말미암아 무슬림들은 꾸란 원본들 간의 차이를 전혀 알 수 없게 됐다. 게다가 꾸란은 그 속에 있는 모든 모순에 대해 질문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Sura 5:101f).

“믿는 자들이여 분명한 것은 묻지 말라 했으니 그것이 오히려 해롭게 하느니라. 또한 꾸란이 계시되는 것을 묻는다면 이는 더욱 너희들에게 해악이라… 너희 이전의 한 무리가 그러한 질문을 하였으니 그들은 그로 인하여 불신자들이 되었노라(Sura 5:101-102)”.

무슬림들은 꾸란의 절대성을 믿는데, 그것은 알라의 최종 계시라는 꾸란 계시의 최종성 자체를 진리의 표준으로 믿는 데 있다. 또 이슬람 교리 중에는 꾸란의 모순을 해결하는 ‘만수크 교리’가 있다. 그것은 나중 계시가 이전 계시를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이 교리에 의해 꾸란보다 먼저 기록된 신·구약의 계시는 무효화되고, 나중에 받은 무함마드의 ‘메디나 계시’가 먼저 받은 ‘메카 계시’를 무효화하여 모든 교리적 모순과 충돌을 제거하는 것이다.

2. 무슬림의 성경관

위와 같은 전제를 가진 무슬림들은, 성경도 그와 같은 줄 알고 ‘성경변질론’을 주장한다. 꾸란과 일치하지 않거나 모순과 충돌이 되는 성경 구절들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원본의 내용들을 고쳐 변질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변질시킨 흔적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고, 어떤 무슬림도 그러한 주장을 입증하지 못한다. 성경변질론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꾸란조차 성경변질론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도 고칠 수 없다는 구절을 말한다.

Sura 6:34: “…하나님의 말씀을 위조할 수 있는 자 아무도 없었으며…”
Sura 10:64: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치 아니하니…”

꾸란은 다만 아래와 같이 유대인들에게 말한다.

①너희는 알면서 진리를 왜곡하고 숨기지 말라는 것과(Sura 2:42)
②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면서도 그 말씀을 왜곡한다는 것과(2:75)
③그들이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과(2:146)
④성서의 백성들이 진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 진실을 감추려 한다는 것과(3:71)
⑤그들은 성서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낭독할 때에 발음을 정확하게 하지 않게 왜곡하며 그것이 성서로부터 온 것처럼 말하나, 그것은 성서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것과(3:78)
⑥그들 손으로 성서를 써서 값싸게 팔려고 했다는 것이다(2:79)

이 내용들을 간추리면, 일부 유대인들이 무함마드를 속이려고 하였다는 것과(2:75, 146, 3:78), 유대인들이 올바로 인도함을 받고 성경적 진리를 알고도 그 교리를 무효화했다는 것과(4:46), 무함마드에게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것과(2:41, 79), 유대인들이 잘못 발음해서, 몇 낱말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과(5:13), 유대인들이 성경을 베꼈다는 것들이다.

이와 같이 무함마드가 비판한 이 유대인들은 무함마드 주변인들이었고, 전체 유대인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꾸란은 유대인들이 성경 정품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토라를 고쳤다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꾸란은 결코 성경의 변질에 관해 이아기하고 있지 않다.

꾸란은 Sura 5:47에 신약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계시한 대로 판결하게 하라”고 한 바와 같이 꾸란은 성경을 변질시키지 않았음을 증거하고 있다. 사실상 성경을 변질시킨 것은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오히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이다. 꾸란의 성경변질행위 중 대표적인 예는 ‘보혜사 성령’을 무함마드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이스라엘 자손들이여 실로 나는 너희에게 보내어진 선지자로서 내 앞에 온 구약과 내 후에 올 아흐맏이란 이름을 가진 한 선지자의 복음을 확증하노라(Sura 61:6)”.

꾸란 Sura 3:81의 각주 81-1은 신구약 성경에 아흐마드(무함마드)가 올 것을 예언해 놓았다고 하고, 그 근거를 신명기 18장 18절과 요한복음 14-16장에 두었다. 요한복음 14장 이하에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공생애의 마지막 날 밤 보혜사 성령 ‘파라클레토스’를 보내주실 것을 거듭 약속하신 말씀을, 꾸란은 본래 예수께서 약속하신 것은 ‘페리클뤼토스(찬양받을 자)’ 즉 아흐마드(무함마드)인데,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왜곡하여 무함마드에 관한 예언을 성경에서 삭제하고 그 단어의 모음을 바꾸어서 ‘보혜사(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꾸란은 예수께서 보혜사가 아니라 무함마드가 올 것을 올 것을 예언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 사실로나 문맥상으로 터무니없는 거짓이다. 온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요 5:22) 무슨 이유로 죄인 무함마드(Sura 47:19, 48:2)가 올 것을 예언하겠는가?

꾸란은 진리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실을 드러낸다. 예수께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셨는데(요 14:16), 한 보혜사는 요한일서 2장 1절의 그리스어 사본에 나오는 보혜사(파라클레토스)–아버지 앞에 계신 대언자,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고, 다른 하나는 요한복음 14-16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마지막 날에 제자들에게 다섯 차례나 약속하신, 아버지께서 보내 주실 하나님 자신의 영인 보혜사 ‘성령’을 일컫는다. 성자-하나님(요일 1:2)과 성령-하나님(요 14-16)을 가리키는 이 ‘파라클레토스’는 하나님 자신의 영을 가리키지만, 무함마드를 가리키는 ‘페뤼클뤼토스’는 기독교와 아무 상관이 없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임을 아는 모든 성경번역가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모두 성령 충만해야 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

꾸란의 증거와는 상반되게, 성경은 변질되지 않았고 성경은 성경 자체가 진리임을 증거하는 성령의 증거에 의한 자증성이 있어(auto pisti), 성경을 읽기만 해도 진리를 깨닫고 구원을 받는다. 성경은 불경이나 우파니샤드나 꾸란에 의해 해석되지 않는다. 오직 성령에 의해 해석된다. 사본들에 작은 차이들이 있다 해도 그 영향은 아주 미미하고,, 보편적 메시지에 상충되거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성경은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사 34:16)” 함과 같이, 성경이 기록된 이래 이단 외에는 아무리 유명한 사람도 성경을 쓰거나 일부를 빼 버리지 않았다. 우리는 사도 요한을 통해 성경 말씀을 가감하는 자들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있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말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 성경의 핵심 복음(신론,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을 변질시키는 이단들에게 경고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던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말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6-10)”.

우리는 기독교와 유일신 종교들의 관계가 연속성인가 불연속성인가에 관해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유대교 경전인 구약성경은 타종교들과는 달리 기독교도 사용하고(구약), 구약의 예언들이 신약성경에서 그대로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신앙적 연속성이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와 유대교와의 관계는 우상숭배라는 불연속성에 있지 않고, 구약과 신약, 언약과 성취라는 연속성에 있다.

그러므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신약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일시될 수 있으나, 유일신이라는 꾸란의 알라와는 동일시될 수 없다. 꾸란 자체가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삼신(三神)으로 왜곡하여 부정하기 때문에, 기독교 신관을 거부하는 불연속성에 서 있다(Sura 5:116f).

우리는 하나님을 결코 이슬람의 반삼위일체적인 알라와 동일시해서는 안 되고, 또 하나의 피조물이며 의미 없는 꾸란의 ‘메시아 예수’를 결코 성경의 예수와 동일시해서도 안 된다. 또 꾸란의 영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함으로 적그리스도의 영이 되었다(요한일서 2:22-25; 4:1-5). 무슬림들은 꾸란이 성경처럼 성령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가브리엘의 계시에 의해 기록됐다고 믿는다. 무함마드와 꾸란은 소위 가브리엘과 관계했다고 하지만, 진리의 영인 성령과 관계한 일은 없다. 성경과 꾸란의 세계관과 교리는 철저히 불연속성이다.

그러므로 모스크 안에 갇혀 있는 내부자들은 거기서 나와 교회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는 두 종교 간의 신앙 대상과 그 본질이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