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어린 시절과 지금의 교회 모습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주일학교에는 선생님들 중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자가 태반이었고, 성경 말씀은 예배 때 목사님께 듣는 설교와 구역 공과나 주일학교 공과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당시의 신앙생활에는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숭고한 믿음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종이 전하는 말씀에 절대 순종했으며,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종들도 성경 말씀을 진지하게 연구하며, 열정적으로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은 주일학교 교사들은 이를 진실과 감동으로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했습니다.

한글도 모르는 분이 많았지만,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주님을 모르는 이웃에게 정확하게 전하곤 하셨습니다. 비록 글을 모르셨지만, 전도의 열정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주일학교 어린 학생들에게 ‘요나’ 이야기를 참 재미 있게 들려 주시던 것을 지금도 추억합니다.

이처럼 비록 가방끈들은 짧았지만, 그들의 용기 있는 믿음과 성실로 이 땅에 많은 교회들이 발전했고, 나라 안팎에 무수한 인재들을 배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내며 인류와 국가, 민족을 위해 각자 맡은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초라했던 모습들이었지만, 당시 교회 안에는 늘 사랑과 온정이 넘쳐 흘렀습니다.

지금 같이 편안한 의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마루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하며, 추운 날씨에는 저마다 국방색 담요를 가져와 온 몸을 감싸고 추위를 견디고, 방석을 만들어 교회 마루에서 찬송하며 기도했던 추억들이 새삼 떠오릅니다.

목사님께서는 예배를 인도하시며, 마이크도 없이 ‘생목’으로 열변을 토하셨던 기억이 지금도 귓전을 울립니다. 지금처럼 부목사님들이 사회를 보시는 것도 아니었고, 예배에 관한 모든 것들을 혼자 하시며 교우들의 모든 ‘삶’들을 품으며 고초를 함께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주일예배를 드릴 때 반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온다든지 모자를 쓰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 자신의 옷들 중 최고로 좋은 것을 입고 예배를 드리러 왔습니다. 옷이 구겨지면 다리미로 깨끗하게 다렸으며, 구두는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반짝반짝 광을 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슬리퍼에 운동화 등 너무 편한 차림으로 예배에 참석해, 심히 민망할 때가 많습니다.

당시에는 성경책이 빨간색이었습니다. 깨끗한 모시옷 차림에 성경책을 팔에 끼고 주변 이웃들로 하여금 예배 드리러 가는 것을 알리는 모습 자체가 전도였습니다. 동네 분들은 교회 가는 교인들의 뒷모습을 보고 매우 부러워하기도 했으며, 교인들을 존경하기도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교인들은 매우 인정이 많았고,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필요한 것들을 함께 해결해 줬기에, 사람들이 교인들을 매우 좋아하고 사랑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교통수단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십 리 길을 걸어가면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입으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간혹 이웃을 만나면 전도도 했던 기억이 새삼 피어오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변화로 인하여 때로는 갈피를 잡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 변화 속에는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진정성을 느끼기 힘들고, 같은 성도들끼리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듭니다.

성경책을 갖고 오는 모습은 보기 힘들고, 아예 스마트폰을 켜 놓은 채 거기에 나오는 성경을 읽으며 예배 드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 해서 하나님 말씀이 변질된 것도 아닌데, 요즘 젊은이들은 간편하고 신속하게 주님의 말씀과 친해질 수 있는 방편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얻게 되는 지식과 각종 정보를 적극 활용하여 교회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이를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지만, 사탄의 유혹에 이끌려 죄를 지은 아담과 이브로 인해 세상은 하나님의 룰을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의 이기주의와 탐욕 때문에 시대는 늘 변하고, 지금도 내일도 미래도 변해 갈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인간은 늘 착각 속에 죄를 생산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성도들끼리 가슴에 상처를 주는 일들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한 실정입니다. 가장 귀하고 소중하게 예배를 드려야 함에도, 자신의 간편함과 손쉬운 방법을 이용하려는 잔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서 변화를 거부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성도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화를 적극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열린 마음을 가지면서도, 젊은이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나아갈 때는 과감히 꾸짖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으로 대하는 덕목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배우고 체험한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벗어나면 이 모두가 자기 주장일 뿐이며, 사사건건 일상 속에서 속 좁고 삐딱하게, 치사하고 저급하게 살도록 하려는 사탄의 계략을 물리쳐야 합니다. 사탄을 따라가려다 무안해진 마음과 자존감을 털고, 외려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행위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음으로써 “뱀처럼 지혜롭게, 비둘기처럼 슬기롭게” 믿음의 생활을 하는 지혜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과거 내 방식만을 고집하지 말고, 새로운 문화를 포용하려는 열린 마음으로 시대를 품고 함께 나아가며, 다른 어떤 것을 포용하더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만큼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이효준 장로(부산 덕천교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