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

성경의 인물로 본, 악과 고통에 대한 신학적 단상

 
성경의 인물들을 정형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악의 문제와 관련하여 성경의 주요 인물들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따라서 각 인물들을 악과 고통의 문제와 관련하여 신정론적 해석에 접근해 보려는 것이 신학적 단상의 취지이다.

악에 대해 성경이 알려 주는 분명한 사실

선과 악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어거스틴은 이 문제에 대해 무려 288개의 철학 학파가 있다고 했다. 이렇게 성경과 신앙을 떠나 인간이 선과 악의 구체적 목적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성경이 알려 주는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즉 선과 악의 시작에 대해서는 성경이 명확하게 알려 주고 있다. 악은 이미 있었다. 그리고 그 악이 우주 속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악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을 타고 이 세상에 들어왔다.

악을 제어할 언약의 피

본래 처음 인간이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을 때에,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복 속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고 다른 생명 피조물들을 다스리며 더불어 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존재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특권과 더불어 하나님과의 특별한 언약의 책임을 지게 된다. 그것은 동산 가운데 있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관련된 일이었다. 아무리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 해도, 인간은 결코 창조주는 아니었다. 그 한계를 알고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로서 주권자요 섭리자인 창조주의 말씀 앞에 겸손해야 한다. 아무리 동산 모든 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는 특권을 지녔더라도,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게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을 가르는 구분점이기도 했다. 인간은 결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으면 안 되었다(창 2:16, 17). 그것을 먹는 날에는 처음 인간은 정녕 죽는다(창 2:17). 계약(언약) 위반은 곧 죽음이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 생명이 피에 있다고 했다(레 17:11-14). 계약은 결국 생명의 피로 맺은 약정이다. 계약을 어기면 인간은 곧 그 피(생명)가 죽는 것이다. 마치 생명을 밟고 선 죽음처럼, 악은 선을 밟고 고개를 내밀었다. 이 악을 막을 세상 피조물은 당연히 없었다. 하나님은 급하게 아담을 부르셨고, 아담은 부끄러워 몸을 숨겼다(창 3:8-10).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피 흘린) 가죽옷을 입히고(창 3:21), 이 악을 제어할 생명의 피를 보낼 것임을 약속한다. 일부 사람들이 원복음이라 부르는 그 구절이었다(창 3:15). 사랑의 하나님의 사랑의 피였다!

다시 악으로 돌아가서

분명 악이 이 땅에 만연하게 된 것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부터였다. 먼저 하나님이 아담과 맺은 첫 언약 속에는 이미 악의 가능성에 대한 염려가 들어 있다(창 2:16-17). 냉소적으로 말하면 에덴동산에 간교하고 악한 존재가 침투하여 들어왔으며, 그 간교한 존재(뱀)는 처음 사람 아담과 그 동반자 하와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즉 이 세상 악의 시작은, 악한 존재 뱀과 처음 사람 아담에게 부여된 자유의지의 부산물이요 합작품이었다. 자유의지를 필요악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받은 자유의지가 악이라는 요소를 결정적으로 판도라 상자처럼 세상에 뿌린 씨앗이 되었는가 하는 논쟁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 칼빈주의와 웨슬리안-알미니안주의 논쟁으로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악의 존재는 차원 자체가 달랐다. 악의 존재 자체는 이미 아담 이전에도 있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 악의 본질은 아닌 것이다. 심지어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고 말한다. 당연히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과 타락과 추방 이후, 세상은 죄로 물들기 시작하고 악은 흩어지고 범람하였다. 창세기 인류 최초에 나타난 이들 악은 대단히 혼돈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 과정에 대한 성경의 묘사는 그리 길지 않다. 주로 창세기 3장에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내용은 짧으나, 그 진행 사항은 절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하나님 앞의 불순종과 의심과 악의 행동이 거의 동시에 나타나는가 하면, 부끄러움, 수치심, 혼란, 두려움, 부부 갈등, 핑계, 남 탓(심지어 하나님 탓까지), 에덴동산 추방 등이 연이어 일어났다. 그 이후에도 생태계의 변화, 잉태와 출산의 고통, 가족 갈등, 살인 등 끊임없이 악들이 범람하였음을, 성경은 마치 속사포를 쏘듯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악은 쏟아지듯 이 세상에 부어졌다고 성경은 소개하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악을 고민하고 성찰하고 판단하고 대처할 겨를조차 전혀 없었다.

악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이렇게 이미 존재하고 있던 그 악의 매개자가 있었다. 바로 마귀였다. 인류에게 최초 유혹을 시도했던 의인화된 뱀(창 3:2, 고후 11:3)은 땅에 기어 다니는 저주를 받았으며, 인간과 영원한 원수가 되었을 뿐 아니라(창 3:14-15), 죄악의 종말론적 패배를 묘사한 계시록에서 사단(곧 마귀)이라고 불렸다(계 12:9, 20:2). 악의 매개자가 마귀임이 분명하나, 성경에는 애석하게도 이 마귀의 기원이나 마귀가 어떻게 악을 품고 악의 매개자 역할을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 정보가 없다. 암브로시우스는 “낙원에 있는 사람의 행복이 악마가 질투하게 된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흙으로 만들어진 열등한 인간이 영생의 희망을 품고 사는 반면, 뛰어난 본성을 가진 피조물이었음에도 타락하여 이 세상 일부로 존재하게 된 악마가 질투하게 됐다는 것이다. 세상 밖 악의 본질적 기원은 불분명해도, 악은 분명 그렇게 우리 세상 곁으로 들어왔다. 도덕적(나쁜) 악과 자연적(해로운) 악의 시작이 모두 이때부터였다. 물론 성경적으로 보면 자연적 악은 도덕적 악의 결과였다. 이렇게 모든 악은 세상 속으로 번져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으로 누군가 언젠가 와서 인류와 세상의 죽음과 죄와 저주와 악의 근원을 제거해 줄 것이라는, 그 언약의 약속의 말씀을 성경에 뚜렷하게 남겨 놓았다(창3:15).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www.kictnet.net)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이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