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학술원 제9회 해외 석학 초청 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강혜진 기자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이 주최한 제9회 해외 석학 초청 강좌가 2일 오후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4층 1연수실에서 진행됐다. 이날 강좌에는 박창환 교수(전 장신대 총장)가 ‘나의 생애와 영성’을 주제로 강연했다.

▲박창환 박사. ⓒ강혜진 기자

박 교수는 1924년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나, 한국 신학계에 성경 헬라어 사전을 처음 편찬한 공적을 갖고 있다. 최초 중국 산둥성 선교사인 박태로 목사(1대), 외할아버지 김재욱 장로, 순교자 박경구 목사(2대) 등의 신앙을 이어받았다. 또한 아들 박호진 목사, 손자 박범 목사가 5대째 목사직을 이어가고 있다. 부친 박병구 목사는 강양욱 목사와 평양신학교 동기였으나, 조선기독교연맹에 가입하여 공산당 일에 협력하는 일에 반대하다 당의 미움을 받고 6.25 때 피살됐다.

박 교수는 “내가 12살 때, 길선주 목사님께서 진남포 억량리교회 부흥사경회를 인도하실 때, 나도 그 집회에 참석해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며 중생하는 체험을 가졌다. 결코 내 힘으로나 내 계획으로나 의지로 된 사건이 아니”라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적시에 성령으로 감화하여, 영이신 하나님과 독생자 예수를 믿고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시작하게 하신 것이다. 이러한 초보적인 영성을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가족회의에서 목사가 되라는 결정을 통보받고, 처음에는 이에 반대했으나 어머니의 격려로 따르게 된다. 그는 평양신학교 예과에 입학해 약 2년간 공부하다, 1945년 6월 일본 수병 훈련소에 입대했다. 해방 이후 복학해 공부를 계속했으나, 북한은 이미 공산화가 되고 기독교 지도자들이 대거 남하해 평양신학교는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였다.

이후 아버지가 목회하는 곳에 가서 중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아버지의 권유로 38선을 넘어 서울의 조선신학교에 편입했다. 그러다 신앙동지회 사건으로 고려신학교로 전학을 하게 된다. 이어 박형룡 박사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 장로회신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되었다.

박 교수는 “평양신학교에서부터 남들이 하지 않는 공부를 혼자 열심히 했다. 헬라어를 혼자 공부했는데, 왜인지 모르고 그저 좋아서였다. 조선신학교에서 본과 2년을 공부하면서 새벽마다 헬라어 성경을 조반 먹기 전에 한 장씩 읽었다. 또한 고려신학교에서 히브리어를 독학하면서 히브리어 구약 원전을 읽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원어 성경 읽기 훈련이, 그를 최초의 성경 헬라어 사전 편찬자가 되게 한 원동력이 됐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세우고 사람들을 골라서 미국 유학을 보냈다. 그는 전액 장학금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박 교수는 “당시 장로회신학교에는 전문적인 구약학·신약학 교수가 한 사람도 없었다. 2년 후 서울 남산의 장로회신학교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쳤다. 당시 김윤국 박사가 구약을 전공하고 돌아오셨기 때문에, 나는 신약학을 가르치는 데 전념했다. 이 모든 것은 자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적당하게 훈련시키셔서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셨다고 생각된다”고 고백했다.

영성과 관련하여 박 교수는 “인간이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주시는 은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떠나 짐승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당신의 영을 부어 주셔서 나의 영안이 열려야, 하나님과 통하고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성령이 마음에 임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와 통하게 된다”고 전했다.

또한 “영성을 가진 사람은 가만히 제자리에 앉아서 옛것을 고집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기독교 영성은 정지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계속 활동하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발전하게 하신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영성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항상 탐구하고 진리를 사모하여 계속 전진하기를 원하고 애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는 말씀을 인용해, 율법을 통한 종교적인 경배가 아닌 성령과 진리 안에서의 예배를 강조했다. 특히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권면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알 때, 우리는 소망 중에 기뻐할 수 있다.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후사가 되었고, 장차 하나님의 것을 전부 상속받는 자가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영성이 말해 주는 것이고 우리의 소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박창환 교수는 장신대 신약학 교수, 인도네시아 선교사, 장신대 학장을 역임하고, 미국 애틀란타의 컬럼비아신학교, 시카고의 맥코믹신학교, LA장로회신학교 등에서 가르쳤으며, 모스크바 장신대 학장으로 봉직하면서 5년을 가르쳤다. 현재는 91세의 고령임에도 건강을 유지하며, 미국에 거주하면서 생의 잔업을 정리하는 동시에, 신약성경 사역과 평신도 성경교재 작성 작업, 설교자들을 돕는 성경 연구지 발간에 주력하고 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영한 박사는 “박창환 박사님은 1951년 예장과 기장의 분열, 1959년 예장 통합과 합동 분열의 현장을 지켜 본 증언자이다. 1977년 박 목사님이 장신대 교무처장일 때, 데모도 많이 있었고 학생들도 참 어려운 시기였다. 그런 시기를 지나, 장신대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안정적인 신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는 박창환 박사님이 훌륭한 성품으로 교수 시절과 학생 시절 애써 심어 놓은, 중도적이고 열린 학교 경영과 개혁신학에 힘입고 있다. 성경신학자인 박창환 박사는 ‘정통 교리가 성경보다 앞서거나 우위에 설 수 없다’고 한다. 이는 ‘오로지 성경’(Sola Scriptura)으로 종교개혁자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해 주는 바른 가르침이요, 항구적인 정신”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