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셉 목사(시인/소설가/결혼사역자/반동성애운동가, 헤세드결혼문화선교회 대표/www.hesedwem.net,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대표/www.antihomo.net).

추석 명절이 지나고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결혼 적령기를 맞았거나 지난 미혼 청년들은 명절에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고 숨죽이며 지내야 했을 것이다. 결혼 못한 게 자신의 어떤 결함 때문일 거라는 자책감으로 힘들고, 가족이나 친지들의 성화와 독촉으로 힘들고, 교회에서마저 이렇다 할 도움을 못 받는 현실 때문에 힘들고, 그러다 결국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져 북받치는 설움에 눈물까지 보이는 청년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철저히 개인사일 뿐, 어느 누구도 이러한 아픔과 고민에 눈길을 주거나 관심 기울이지 않는다. 단지 드러난 결과를 놓고 평가와 비판만 무성할 뿐, 정작 그 근본 이유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책무감도 없이 고개를 돌리는 실정이다.

필자는 10년 전부터 미혼 청년들의 결혼 문제 해결 없이는 한국교회가 정체에 빠지고 결국 위기를 겪을 거라는 진단을 내리고, 끊임없이 교회의 각성을 촉구해 왔다.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이에 대해 이렇다 할 호응이 없었다. 일부 대형교회에서 한시적으로 잠깐 ‘짝짓기 프로그램’을 흉내내 만남이벤트를 기획했지만, 미미한 성과와 부작용으로 얼마 못 가 중단하곤 했던 것이다. 이는 미혼 크리스천 청년들의 실상과 기대치를 모르고, 결혼 준비 교육을 병행치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한 탓이다. 그래놓고 애초에 하지 말 걸 괜히 시도했다는 둥 이상한 궤변을 장황히 늘어놓는 경우를 보았다. 물론 그렇게라도 해야 면피가 되고 책임의식에서 자유로울 테니까 일면 이해는 간다. 오죽했으면 그랬었겠느냐고.

교회에서 미혼 청년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지 않고 왜곡돼 있는 동안, 그들의 현실은 점점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대부분 교회에서 제때 결혼 못한 이들이 적체돼, 부모는 물론 생각 있는 목회자의 근심을 더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냥 교회 내에 안주한 채 기도를 계속하지만, 나이만 먹어갈 뿐 아무런 돌파구가 안 보여 더욱 난감할 뿐이다. 그렇다고 아무하고 결혼할 수도 없기에 시름은 깊어만 간다. 더욱이 교회 밖엔 미혼 남자들이, 교회 내엔 미혼 여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나마 교회 내에서 미혼 형제와 자매들이 건강하게 교제하여 결혼하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현실적 기준을 앞세워 서로를 배척하는 실정이랄까. 아무튼 의외로 많은 크리스천 청년들이 신앙과 무관하게 비신자와 교제하여 결혼하는 경우를 본다. 그들을 신앙으로까지 이끌어 결혼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신앙을 경시하고 멀리하면서까지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신앙과 결혼이 겉돌 경우, 지금까지 교회가 쏟아 부은 정성과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는 결과가 되기에 너무나 안타깝다.

지금 한국교회 안엔 결혼하고 싶어도 못하고, 결혼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돼 있고, 결혼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왜곡된 결혼관을 갖고 있는 이들이 대단히 많다. 그토록 좋아 보이던 청년의 신앙이 결혼이라는 현실적 벽 앞에서 초라하게 무너지는 경우, 당사자 뿐만 아니라 가르친 자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이러한 문제를 심각히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다면 다행인데, 병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식 못하거나 원인을 발견 못할 경우엔 치유 가능성이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오진과 돌팔이 처방은 더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뿐이다.

지금껏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교회 내 미혼 청년들이 아무런 문제 없이 얌전하게 신앙생활만 잘해 오고 있다고 믿는 목회자나 제직(諸職)들은 매우 순진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많은 미혼 청년과 상담해 본 결과, 그들은 이성교제 문제로 고민하고 있고, 잘못된 혼전 성관계로 인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있고, 실연당한 아픔을 극복 못해 슬퍼하고 있고, 결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다. 이는 그들의 가족력과 개인 경험, 율법주의나 잘못된 경건주의나 독신주의, 타락한 사회 환경과 타성적인 교회 환경 때문이다. 이를 정확히 일깨워 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 혼자서 잘못된 이성교제와 풀리지 않는 결혼 문제로 끙끙대기만 하는 것이다. 이대로 계속 시간이 흘러가면 한국교회는 절망적 상황에 봉착할 위험성이 크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그러한 파국을 막을 방책을 세우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수렁에 빠진 미혼 청년들을 건져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넘쳐나는 만혼자(晩婚者)와 결혼 무관심층, 결혼 기회를 박탈당한 결혼 무기력 환자들로 심각한 내홍(內訌)을 앓고 있지만, 정작 문제는 그것이 외부로 소문이 새 나갈까 쉬쉬하며 막고만 있을 뿐 이렇다 할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덮는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돼 가는데도 속수무책인 상황. 결혼을 원해도 제때 못한 청년들을 죄인 아닌 죄인 취급해 따가운 눈초리를 보낼 경우, 그들은 결국 교회의 아웃사이더로 전락해 교회를 옮기거나 아예 떠나기까지 한다. 따뜻한 사랑의 눈길이 아닌 차가운 눈길과 무언의 질책, 무시와 배척은 상처받은 미혼 청년들에게 절망감과 좌절감을 안겨 주고 자존심에 씻을 수 없는 상처까지 입힌다. 그로 인한 후유증은 고스란히 교회가 떠안게 되고, 결국 교회는 아까운 성장 동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미혼 청년들은 자신이 고민하는 결혼 문제에 대해 누군가에게서 도움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자신의 고민을 상담해 줄 결혼상담 전문가를 애타게 찾고 있으며, 결혼 전 어떻게 이성교제를 해야 하며 어떠한 준비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교회 내엔 이러한 문제에 올바르게 대처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결혼 사역 전문가가 전무하다시피 한 실정이다. 그 틈을 결혼정보업체가 비집고 들어와, 가뜩이나 어려운 미혼 청년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분위기를 어지럽히고 있어 안타깝다. 단순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 사람 저 사람 소개시켜 주는 정도로는 결혼 사역 전문가라 말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전문적 식견, 비영리적 마인드, 현장 경험을 구비한 자라야만 한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한국교회가 이 결혼 사역을 방치해 온 결과 청년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할 일은, 청년부 사역의 잘못된 목표를 바로잡고 목회철학을 수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껏 청년들에게 싱글 사역의 관점에서 맹목적 헌신을 요구했거나 목회자의 이기적 욕심과 기도로 현혹(?)시켰다면 마땅히 과오를 뉘우쳐야 하고, 그들을 교회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되는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그들에 대해 인색하고 무관심했던 제직들은 가슴을 치고 회개해야 하리라 본다. 이제라도 그들을 내 아들‧딸처럼 여기고 내 자녀의 결혼 문제만큼 신경을 쓰고 관심을 기울여 주고 구체적 도움을 주려 노력한다면, 앞으로 얼마든지 개선의 여지가 있고 오히려 교회가 새롭게 부흥하는 전기를 마련하리라 본다. 이를 통해 결혼 문제로 고민하는 불신 청년들까지 교회로 인도한다면, 잃어버렸던 성장 동력을 통한 교회 부흥은 결코 요원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 심리적 장벽이 엄연히 존재함을 잘 알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이성교제를 금기시해 온 전통과 잘못된 이성교제로 인한 폐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목회자들이, 이 문제를 매우 조심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문제가 매우 심각함에도 이를 외면하고 방치한다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교회가 청년부 사역의 일환으로, 미혼 청년들의 성경적 결혼 준비 교육을 체계적으로 신경 쓰고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그들을 더 이상 불신자와의 결혼이나 세상 가치관에 의한 배우자 선택으로 내몰아선 안 된다. 하루빨리 교회 규모와 상관없이 미혼자를 위한 ‘결혼 세미나’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결혼상담실’을 설립해야 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청년부 사역은 싱글이 아니라 커플에 초점을 맞출 때에만 지속적 성장의 가능성이 열리며, 장기적으로는 개교회에 보다 큰 유익이 됨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만일 교회에서 헌신했던 청년부 선배들이 제 나이에 결혼하지 못하고 심지어 교회를 도망치듯 옮겨간 사실을 후배들이 뒤늦게 안다면, 선배들과 같은 헌신의 필요성을 깨달을 리 만무하다. 또한 굳이 교회로 친구들을 전도해 오겠다는 열의를 가질 리 만무한 것이다. 그 결과 오랜 시간 정성을 쏟고 양육했던 청년들이 하나둘 교회의 아웃사이더로 나앉거나 교회를 떠나게 돼, 전도는커녕 자연 성장을 이룰 기회마저 상실할 위험성이 그만큼 커질 때 그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한단 말인가.

결국 손해 보는 건 교회와 목회자일 수밖에 없고, 교회가 고스란히 그 후유증을 떠안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시키고 탄식케 만드는 불충한 죄를 짓는 일임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이처럼 잘못된 교회시스템에 의한 심각한 문제를, 아무런 힘도 없는 청년부 사역자나 열의 없는 교회 청년부원들만의 문제로 호도하며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는 어리석은 목회자가 더 이상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