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산후조리를 위해 집에 왔는데 이건 숫제 전시체제입니다.
온 식구가 아기 중심으로, 다른 건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문득 딸이 태어나던 날이 생각납니다.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진통이 와서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교회 권사님의 도움으로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어렵게 살 던 때였고 산후조리의 의미도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내는 어려운 형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생활전선에 나갔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도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했습니다.
딸아이의 산후조리 모습을 보고 나니
비로소 그게 그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딸아이의 산후조리를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못하고
아내와 눈이 마주칠까 봐 피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그래서 겪어 봐야 어려움도 귀함도 안다고 하나 봅니다.
나는 다 잊고 살아가지만 아내는 한이 될 만큼
결코 잊을 수 없는 것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때의 아기가 엄마가 되어 손주에게 잘 나오는 젖을 물리고 있으니
얼마나 기특하고 감사한 일인지요. 아내는 아마도 그때의 자신의 설움이
생각나서 딸아이에게 더욱 잘해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한 것이 이것 뿐은 아니겠지만
이제라도 내 이런 마음을 알면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풀리지 않겠습니까?
미안해요, 여보.

최원현/수필가, 칼럼니스트

*교통문화선교협의회가 지난 1988년부터 지하철 역 승강장에 걸었던 ‘사랑의 편지’(발행인 류중현 목사)는, 현대인들의 문화의식을 함양하고 이를 통한 인간다운 사회 구현을 위해 시작됐다. 본지는 이 ‘사랑의 편지’(출처: www.loveletters.kr)를 매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