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서울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7번 출구에서 목적지까지는 약 200m 정도의 거리였습니다. 양 옆에는 가정집들과 작은 건물들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묘소는 도시 변두리나 농촌의 산 또는 언덕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은 도심지에 위치하여, 부산에서 올라온 필자는 손쉽게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1981년 한경직 목사님을 중심으로 설립된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은,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과 용인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의 법적 소유 협의회로서, 이곳의 성지화와 한국 기독교의 연합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는 선교 100년의 신앙과 정신을 계승하고 선교 200년을 향한 비전을 함양하기 위해, 2005년 7월 100주년기념재단 이사회의 결의로 창립한 독립교회라고 합니다. 가맹교단 20여 곳과 기관 26곳의 후원으로 현재 100주년기념재단 사업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성지 묘원에는 가톨릭의 절두산 성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한강변 최고의 절경으로 유명하며, 봉우리 모양에 따라 가을 두, 용두 봉, 잠두 봉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그 유래는 1866년 병인양요로, 순교 100주년인 1966년 순교자기념관이 건립됐으며, 선조들의 순교정신이 살아 숨쉬는 뜻깊은 성지이자 대한민국에 의료, 교육, 종교계 및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417명의 묘가 있고, 그들 중 선교사는 147명입니다.

조선 말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로 9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순교하자, 1866년 2월 프랑스군이 천주교 탄압을 문제 삼아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과 서강까지 진입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격분한 대원군이 잠두봉에서 수많은 천주교인들을 머리를 베어 참수했다 하여 절두산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천주교는 우리 개신교가 조선에 들어오기 전인 약 150년 전, 이 땅에 복음을 위하여 수많은 신도들이 순교함으로 개신교의 복음사역을 위한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500년 전 로마 교황과 지도자들의 부패를 보고, 루터는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으로, 당시 엄두도 내지 못할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개신교가 부흥하고 발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개신교는 당시 지도자들보다 더 부패를 저지르고 있음을 속히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은 오히려 개신교의 지도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선은 안과 밖이 다른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입니다. 저 또한 머리와 입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서, 위선적인 두 마음을 품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로 온전히 모을 때, 하나도 모르면서 둘을 나타내려는 위선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이웃을 사랑하며 살겠다는 이 위대한 약속을 실천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양화진 묘비에 새겨져 있는 글들을 읽노라면, 눈에서는 금새 눈물이 울컥하고 쏟아집니다. 깊은 감동이 가슴에서부터 젖어갑니다. 당시 조선은 선진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이방인 이 땅으로, 가족들을 뒤로한 채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젊은 나이로 순직하며 순교했던 분들의 공로로, 오늘날 이 땅이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로 부흥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뜨거운 기도와 찬양으로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이 뿌린 복음의 씨로 수확된 열매는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 오늘날 교계의 큰 부흥 성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안타까운 일들이 연일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것을 볼 때, 가슴이 미어지고 그들의 순교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심령의 무거움을 느낍니다.

특히 이사야 29장 13절, “주께서는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심판을 받게 된 원인은 첫째로 그들의 영적 방탕과 영적 무지(9-12절), 둘째로 그들의 위선적이고 형식주의적인 신앙(13-14), 셋째로 하나님을 속이며 멸시했기 때문입니다(15-16).

요즘 기독교의 정체성마저 사라지는 것을 보노라면, 참으로 그분들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연일 터지는 목사님들의 성추행 사건, 배임죄, 연금 문제와 타락한 선거 문화를 비롯하여 각종 명예를 얻기 위한 투쟁을 보노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분들인지 위선자들인지 분간하기 힘듭니다. 특히 입으로 하는 전도, 찌라시 전도, 지하철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는 전도는, 세상 사람들도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합니다.

어떤 부흥강사는 연중행사로 부흥회를 합니다. 연일 소리치며 떠들어 댑니다. 누구를 위한 집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교인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경품도 내걸고, 홍보지로 교회는 물론 자동차와 지역에 도배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들에게 하늘나라 소식을 전하시면서, 세상에 나가서는 소외된 이들과 고아와 과부, 그리고 병든 자들을 손수 찾아다니시면서 치유를 해 주셨는데, 부흥사들은 왜 앵무새처럼 입으로만 소리치는 걸까요.

무조건 사람들을 동원해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는 것은 아닌지, 주님을 핑계 삼아 교주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제 부흥강사들은 솔선수범하여, 주님께서 하신 방법대로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에게 옳은 진리를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너는 내가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고 늘 물으셨습니다. 주님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들의 생각을 아시고 인간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은 성도들의 입장 대신 자신의 입장으로만 일관합니다.

목사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성도들이 가난과 병마로 고통을 당하는 분들은 나 몰라라 하면서 지도자들에게는 엄청난 금전도 마다 않고 선뜻 내놓는 것을 보면, 정말 주님의 뜻에 합한 지도자들인지 분간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목사들과 장로들은 명예와 권력, 돈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음에 개탄합니다. 가난한 이웃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이익이 되는 이웃들에게만 다정다감함을 목격합니다. 설교는 정말 성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따라 합니다. 성도들에게 좋은 꼴을 먹이려고 매 주일 전력을 다해야 하는데, 지역의 유지가 되어 출타하기 일쑤입니다. 이러니 교회에 가도 목사님 뵙기가 힘든 형편입니다.

해외 성지순례도 좋지만, 우선 국내 외국인 순교지를 방문하여 신앙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도들과 교회 지도자들 중에는 양화진에 외국인선교사묘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분들이 많아,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이방인인 우리 민족의 복음을 위해 육신의 행복을 외면한 채 수많은 고통과 고난을 겪으며 순교한 성지를, 각 교회 여름수련회나 성경학교, 각 연합회에서 한 번씩 순회 방문을 한다면 얼마나 값진 믿음의 여행이 되겠습니까? 자신들의 신앙을 점검해 볼 시간도 가지며, 우리 복음의 역사도 알게 되고, 앞으로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하며 다짐하는 귀한 시간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땅에 묻혀 있는 선교사들의 외침을 가만히 들어보시기를 기대합니다. 그 작은 울림이 골고다에서 일러주신 주님의 음성이 아닐까, 장차 들이닥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지 않고, 자신들의 영욕을 위해 오늘도 신음하는 그 소리는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불신자들의 불평의 소리가 귓전을 때립니다. 이제 모든 성도들은 오늘 하루를 순교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기 ‘양화진의 천사’ 순교자들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자신들이 뿌려 놓은 아름다운 순교를 배우라고 지금 이 순간에도 권면하며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효준 장로(부산 덕천교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