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운동연구가).

요즘 수많은 가정 문제들이 발생하는 가운데, 이러한 문제점들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근본적으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크리스천의 가정들도 예외가 아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크리스천의 가정이 회복되려면 무엇보다도 각 가정이 성령의 통치 속에 있어야만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정의 회복이 있게 될 때, 그 가정들을 품고 있는 교회의 갱신은 물론 더 나아가 교회가 자리한 지역사회와 국가의 총체적 발전과 복음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 가정 속에 성령의 통치가 어떻게 임하는지, 그리고 우리들의 가정이 성령의 통치를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다짐과 노력의 과정이 필요할 것인지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자.

성령의 중생케 하시는 능력이 가정에 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가정이 성령의 통치를 받기 위한 첫 단계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중생(重生;  regeneration)의 체험을 하도록 기도하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고 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을 받는 일이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출생인 중생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크리스천으로서의 풍성한 삶을 향하여 가는 출발점에 불과하다.

크리스천은 중생한 사람들이다. 아담 안에서 태어났으나 다시 그리스도 안에 태어남으로써 거듭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거듭났다고 해서 이런 이중적 인간의 본성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참된 성화의 길로 가는 사람도, 자기 속에 죄적인 본능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중생은 인간의 심령을 전투장으로 만든다. 인간 안의 죄성(罪性)은 마치 목숨을 내놓고 덤비는 것처럼 보인다. 바울은 이 죄를 스스로의 능력과 특성들, 곧 지혜와 교활함과 힘을 가진 한 인물, 곧 ‘옛사람’에 비유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안에서 성령의 사역을 통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시는데, 이때 인간은 매우 능동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죄의 길을 버리게끔 양심을 각성시키신다. 거듭나지 못한 자의 양심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거듭난 자는 할 수 있다. 이는 그의 각성된 양심이 자유의지를 선으로 향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족들이 모두 영적으로 거듭났다고 해도, 영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육신적인 차원에 머물러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곧 영적으로 미성숙한 가정의 단계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철저한 자아 부정과 육신의 욕망 제어를 위하여 힘쓰고 애써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치유와 회복의 단계를 필요로 하게 된다.

가정 속에 치유와 회복을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

치유와 회복의 단계는 성령의 역사 속에 크리스천의 삶 전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감으로 일어나는 성화(聖化)의 과정이다. 치유와 회복의 단계가 필요한 이유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환경에 대해 올바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성경적이고 영적인 통찰력을 갖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중생한 자라 할지라도 마음의 문제와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적절하게 처리되지 않는 한, 이 쓰라린 기억들은 결코 우리를 과거에서 자유롭게 해주지 않는다.

치유의 과정은 고백과 용서이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내적으로 체험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치유와 회복의 참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치유의 원동력은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그 적용 방법은 실제 사역 현장에서 성령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심리적인 질병들을 들자면, 두려움이 그 중에 하나이고 의심도 이에 속한다. 분노, 악심(惡心), 걱정, 그리고 죄책감도 물론 여기에 해당된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죄책감은 떨쳐버리기 매우 어렵다. 그것은 크리스천이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약속을 믿고 용서받는 은혜를 체험한 후까지도 계속 남아 있을 때가 많다. 열등감과 부족하게 느끼는 것과 자신의 가치를 무시하는 감정들도 역시 치유의 대상이다.

정서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건강하기를 바란다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해야 한다. 그러나 용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 속에 용서받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용서치 않는 것은 우리의 내면에 감옥을 만드는 것이며, 우리가 용서하지 않을 때 오히려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심지어는 몸까지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용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직시함으로 비롯되는 것이다; 첫째, 용서란 우리 자신에게 행해진 구체적이고 명확한 잘못을 직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정한 용서를 받기 위해 죄를 고백하는 데 있어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 고백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용서는 우리에게 가해진 상처와 고통을 직시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잘못들이 우리 안에 일으키는 각각의 특별한 감정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용서의 확신을 방해하면서 순간마다 우리를 괴롭히려고 따라다니는 사단의 궤계를 깨달을 때, 즉시 그것을 떠나가도록 명해야 한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그리고 주님께 의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과 하나님의 성품을 기억하며, 예수님이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는 것과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악을 이기셨음을 떠올려야 한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5).

궁극적으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의 마지막 부분은 우리의 회개와 믿음이다. 감정의 치유는 우리의 죄와 죄의 여러 형태와 아픔들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을 때 일어난다. 성령은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을 드러내시고,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크리스천의 정서와 또 과거의 기억에서의 치유가 주어지는 과정은 점진적으로 경험된다. 이것은 더 깊은 성화의 삶으로 크리스천을 초청하는 것으로서, 크리스천은 하나님 앞에 치유된 만큼 하나님의 통치의 영역을 내어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