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4)

언약의 본래 목적이기도 한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새 언약은 옛 언약과 본질적 연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깨어진 언약 관계의 온전한 회복을 위하여, 새 언약은 옛 언약과 확연히 구별되는 불연속성을 지닌다. 그런 점은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렘 31:32)이라는 예레미야의 선언에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에 의하여 주도된 언약은 그 자체에 결점이 있다거나 중도에 폐지될 수 없다. 언약의 중도 파기가 발생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전적으로 인간의 결함 때문이었다. 새 언약은 인간의 그런 연약성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언약 파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내리신 특별 조치이다. 그러므로 새 언약 역시 옛 언약처럼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 그리고 언약의 수혜자인 이스라엘은 수동적 입장에 있을 뿐이다.

예레미야에 의하여 제시된 새 언약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불연속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새 언약은 그 성취가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실제로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미래 약속의 핵심이다. 그것은 새 언약의 성취가 종말론적임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예레미야는 새 언약의 제시에 앞서 “날이 이르리니”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예언서에 자주 등장하는 ‘여호와의 날’인데, 미래 희망을 뜻하는 대표적인 종말론 표현이다. 이는 새 언약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계획하고 계신 새로운 시대의 언약임을 예고한다.

둘째로, 죄악의 용서에서도 새 언약은 모세의 시대와 달리 하나님의 일방적인 용서를 선언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완전하고 편만하여,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여호와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내재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셋째로, 율법 문제에 관하여도 새 언약의 불연속성이 존재한다. 옛 언약의 율법은 돌비에 새겨졌지만, 새 언약은 그 율법이 마음에 새겨진다는 것이다. 이는 옛 언약의 외형적이고 부분적인 율법과는 달리, 새 언약의 율법은 내면적이며 그 성취가 완전하게 될 것임을 강조한다.

새 언약의 세 가지 불연속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율법과 관련된 불연속성이다. 율법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충성을 측정하는 잣대 역할을 한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율법에 순종하며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실패 원인도 마음 중심에서부터 율법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새 언약이 율법 문제를 앞세워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