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산마루서신 가족이 묻습니다.
“개인적 삶을 위하여
1평 땅의 소유주도 되지 않는다.”는 고백은
부자연스럽고 지나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서도 살 수 있습니까?”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게 해서도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도 잘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해서도 세상 사는 데
설움 받지 않고
어려움 겪지 않고 살도록 나라를 만드는 게
잘하는 정치이고 좋은 세상 아닐까요?
선진국에 가보십시오.
집 없다고 설움 받는 나라 보았습니까?”

한 번은 집 갖자는 꿈을 가졌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꿈이 아니라 악몽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1991년 늦가을
선교기관으로 가니 사택이 없었습니다.

통장도 없이 살던 시절이었으니
무슨 보증금이라도 있었겠습니까?

부교역자로 있던 한 교회에선 이임할 때에 주신 전별금도
전액 헌금하고 나왔으니 모은 것도 남은 것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내 덕에 은행에서 빌려
13평형 실평수 9평짜리 반지하 연립에서
전세살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와 내 책을 넣으니 쓸 공간은 방 한 칸뿐이었습니다.
강변도로 밑이었으니 모래 바람이 창으로 들어오고
3살, 7살 어린 딸들은 기침을 하고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꿈을 가졌습니다.
“집을 마련하자!”

그리고 한 달이 지나니 설교도 글도 시도
내 머릿속과 가슴에서는 완전히 증발되어 버렸습니다.

출퇴근 길 강변도로를 달려도
강은 사라지고
차창 밖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아파트뿐이었습니다.

“저 집은 몇 평짜리이고
저 집은 북향이고 남향이고
……..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시멘트 콘크리트가 아니라
억대의 돈 덩어리였습니다.
넘어설 수 없는 철옹성이었습니다.

10년은 쌓아 올려야 저 콘크리트 덩어리 중
내게 들어올 것은 단 한 칸뿐이구나!

그 압박감에 거리를 다녀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돈 덩어리들이었습니다.
내 것은 하나도 없는!

페티 킴이 부르던 “서울에서 살렵니다”가
공허한 남의 나라 노래가 되어버렸습니다 . 

내 태어난 곳이 여기이고 본적이 서울이고
그것도 몇 대째 토박이 서울인데!

하지만 이 도시에서 몸 둘 곳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본적지에서 완전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지옥이 따로 없고
인생 자체가 악몽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만에 기권했습니다.
“하나님 그만 두겠습니다!”

그러자 다시 하늘은 푸르고
출근길 한강엔 찬란한 아침 햇살이 번지고
가위눌리던 가슴은 사라졌습니다.

깨달았습니다.
세상을 집 없이 살 수 없도록
셋팅 해놓은 곳이 바로 지옥이구나!  

거기엔 문화도 예술도
용서도 양보도 사랑도 흐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세상엔 거리마다
좌절과 분노가 강을 이루고
저격수만이 곳곳에 숨어 삽니다.
<이주연>

* ‘산마루서신’은 산마루교회를 담임하는 이주연 목사가 매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달음들을 특유의 서정적인 글로 담아낸 것입니다. 이 목사는 지난 1990년대 초 월간 ‘기독교사상’에 글을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펜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홈페이지 ‘산마루서신’(www.sanletter.net)을 통해, 그의 글을 아끼는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