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총장.

대학 다닐 때 롱펠로우(Longfellow)의 ‘인생 예찬(Psalm of Life)’을 읽으며 감탄한 적이 있다. 이제 인생 나이 70을 넘어서면 우리끼리는 ‘7학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초등학교도 6학년까지만 있으니, 실제 우리나라 학제에선 ‘7학년’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면 노인 예찬을 들어보자.

“인생 나이 70을 넘으면… 가는 시간이나 가는 순서가 다 없어지니, 남녀 구분 없이 부담 없는 좋은 친구 만나 산이 부르면 산으로 가고, 강이 부르면 강으로 가고, 하고 싶은 취미생활도 마음껏 하면서 남은 인생 후회 없이 살다가 가기 바란다. 한도 많았고 정도 많았던 이 세상.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없이 떠날 적에 돈도, 명예도, 사랑도, 미움도 가져갈 것 하나 없는 빈손이요 동행해줄 사람도 하나 없을 것이니….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다 쓰고, 쥐꼬리만큼 남은 돈 있으면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쓰면서, 행여라도 사랑 때문에 가슴에 묻어 둔 아픔이 남아 있다면 미련 없이 다 떨쳐 버리고, 당신이 있어 참 행복하다고 진심으로 얘기할 수 있는 친구 하나 만나 남은 인생을 건강하게 후회없이 살다 갑시다.”

이 세상에서 진실한 친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가슴이 넉넉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은 먼저 남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은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이 모든 것을 행하는 사람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에게서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늘 남을 비웃는 사람은 남들한테서도 비웃음을 받는 사람이다. 악수하면서 눈은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은 좋은 버릇이 아니다. 항상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조금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살면 큰 실수가 없다.

남들보다 가난하게 사는 것은 절대로 못나서가 아니다. 컴퓨터를 열어 인터넷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이 남보다 앞서가는 것이다. 집안에 가만히 앉아 노는 것보다, 집 주변이라도 걸어 다니고 쓰레기 하나라도 줍는 것이 잘사는 것이다. 새로 산 휴대폰의 기능을 배워 한 가지씩이라도 더 활용하는 것이 잘사는 것이다.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작동시켜 보고, 그러다 보면 사용에 익숙해질 수 있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늘 걷고, 움직이기를 게을리 말라.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즐거움의 기본 욕구를 갖고 태어난다. 그래서 즐거운 일이 많을수록 더욱 건강해진다. 우리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어림잡아 볼 때 길어야 90-95세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남은 시간을 계산해 보고, 하루 하루를 아끼고 즐기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김기섭 시인은 <친구>라는 시에서 ‘마음 맞아 친구 되어 / 서로 마음 알아가며 // 같이 있는 것으로 / 세상 부자 되었고 // 힘겹고 외로울 땐 / 힘 되어 줄 사람 // 언제나 가까이 있었기에 / 더욱 그리워지는 사람 /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 보고싶다 친구야’라고 노래하고 있다.

시인 윤수현은 <향수에 젖어>라는 시에서 ‘휘리릭 휘리릭… / 세월은 물처럼 흘러가고 // 다시 듣는 봄이 오는 소리에 / 초록의 싱그러움과 설렘으로 / 젊은 날의 향수에 젖어보네 // 두려울 것 없는 용기와 / 잘 길들여진 야생마처럼… // 거칠 것 없는 푸른 초원을 / 달리던 젊은 시절… // 꿈과 희망을 찾아 / 한 편의 영화 속 주인공 되어 // 드넓은 세상을 향해 / 질주했던 젊은 시절.. // 상상의 나래를 펴고 / 힘차게 날갯짓하던 시절 // 나만의 파라다이스’라고 노래했다.

청년은 희망으로 살고, 노인은 추억으로 산다고 했다. 노년들도 한때는 역사의 주인공이었고, 밤낮없이 바쁘게 일하고 수고했고, 성취의 보람을 누렸던 세대들이다. 그러나 꽃은 피면 다시 져야 열매로 발전하듯이, 역사의 주인공 자리를 자식에게, 제자에게 그리고 후배에게 물려 주고 떠나야 한다. 떠나야 할 때 집착하면 노욕이요 남루해진다.

침묵해야 할 때 말을 하면 초라하고 불쌍해진다. 노인의 발언은 눈으로만 해야 한다. 할 말이 많이 있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을 때라도 절제하고 삼가라. 조언이나 상담을 요청할 때만 말을 거들고, 먼저 말하지 마라. 노인은 실전 용사가 아니라, 있는 그 자체 존재감으로만 있어야 한다. 그러니 오동나무는 천 년을 지나도 그 안에 아름다운 노래를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桐千年老恒藏曲).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