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하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민 14:30, 34)

역사적으로 언약은 광야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광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하신 곳이다. 언약을 맺으신 후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며 인도하셨다. 그곳은 또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못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엄격한 심판을 경험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그와 같은 이스라엘의 상반된 광야 경험은 이원론적으로 양분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상호 보완적 기능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심판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복으로 이끌기 위한 과정이다. 하나님의 질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국은 거부되었다. 그거나 그것은 영구적인 것 아니라, 40년이라는 한정된 기간 동안만 유보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본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남아 있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광야 경험이 불순종에 대한 일시적 심판이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거쳐야 할 과정임을 보여 준다. 그런 기간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정화된 새로운 언약 백성으로 거듭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렇게 상반되면서도 상호 보완성을 지닌 이스라엘의 광야 경험은, 후대에까지 이어져 예언서의 중요한 신학적 틀이 되기도 하였다. 그에 대한 대표적인 예언자로는 예레미야와 호세아를 들 수 있다(렘 2:2; 호 2:14-15).

고대 근동의 정치적 조약들은 체결에서 제시된 조건들이 매우 중요했다. 체결 조건의 조항들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어기면 곧바로 조약 자체가 파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고대 근동의 정치적 조약들은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일종의 약정(contract)이었다. 엄격한 조건들에 묶여 있는 조약과는 달리, 언약은 보다 큰 유연성을 지닌다. 물론 언약에도 언약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특별 규정인 율법이 있다. 그러나 언약에서 낱낱의 조항 준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조항들을 지키려는 마음가짐, 곧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이다.

율법 준수는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사랑과 순종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방법이다. 그런 점에서 불순종에 따르는 저주 역시 저주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잘못한 일에 대한 징계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것은 회복을 목적으로 한 정화의 과정이다. 이스라엘의 광야 경험은 반복되는 불순종과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민 25:1-3; 신 9:7-9 참조). 그런 과정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출애굽 구원의 최종 목적지였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회복했다. 심판이 복으로 전환된 것이다.

심판을 통한 복의 경험은 이스라엘의 광야 경험 자체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40년간 방랑하며 지냈던 광야는 환경 그 자체가 저주였다. 그곳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척박한 땅이었다. 그런 광야에서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존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심판이라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여전히 이스라엘을 살려 주는 원동력이었음을 의미한다.

징계 속에서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셨다.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언약의 선임 동반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상호 충성이라는 관계 속에서 이스라엘과의 결속을 유지하셨다. 그것이 ‘인자’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헤세드’의 본질적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이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하나님의 사랑 역시 ‘헤세드’로 해석할 수 있다(요 3:16).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