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심 이사장

영화 ‘버킷 리스트’를 보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인공이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의 목록을 작성해 마지막까지 실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가 죽을 때를 미리 알고 ‘버킷 리스트’를 다 완수한 뒤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설사 ‘버킷 리스트’를 다 완수했다 해도 죽음 앞에서 의연하게 대처하기는 힘들다. 특히 말기 암이나 오랜 투병생활로 고통 받은 환자일수록 죽을 때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지키며‘품위 있는 마무리’가 되기를 원한다.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하도록 환자와 그 가족을 정신적·정서적으로 돕는 제도로 ‘호스피스(hospice)’제도가 있다. 호스피스는 그동안은 제도적인 뒷받침이 되지 못해 자원봉사자가 주를 이루고, 임종이 임박해서야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다행히 7월 15일부터 말기 암 환자의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해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비용부담이 덜어져 더 많은 말기 암 환자들이 혜택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죽음’ 자체를 준비하고 교육해 주는 전문 인력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죽음이 나와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평소에 죽음에 대해 알고, 미리 준비한다면 지금의 삶이 좀 더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겨질 수 있다.

이런 생각으로 ‘죽음’을 한 학문의 영역으로 분류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싸나톨로지(Thanatology)’라는 학문이 있다. ‘죽음을 다루는 임종영성학, 싸나톨로지(Thanatology)’는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학문으로 정립되어 있다. 싸나톨로지는 인문학, 사회학, 의학, 간호학 등 전 영역에서 죽음에 대해 연구하고, 죽음을 삶의 일부이자 인간의 자기완성 마지막 단계로 인식하는 통섭 학문이다.

임종과 죽음에 대해 다루는 싸나톨로지와 호스피스는 각각 이론적 영역과 실천적 영역으로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싸나톨로지는 다양한 분과 학문의 결과물을 토대로 연구를 진행하며 호스피스 완화의학의 기초가 되는 이론적 토대를 쌓는 역할을 한다.

호스피스의 경우 싸나톨로지의 연구 결과물을 기반으로 하는 실천학문으로서 임종을 준비하고 죽음을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 개발과 현장 적용을 담당하게 된다.

싸나톨로지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직업을 ‘싸나톨로지스트(Thanatologist, 죽음 교육 및 상담 전문가)라고 하는데 美 죽음교육 및 상담협회(ADEC)가 운영하는 호스피스 관련 국제 자격증 교육 이수 후 인증을 받으면 싸나톨로지스트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싸나토로지협회에서 ADEC과 협약을 맺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국 내 교육과 한국어로 시험을 볼 수 있다.

‘싸나톨로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최근 발간된 국제싸나톨로지스트이자 전일의료재단 이사장 한선심의‘빛나는 삶을 위한 죽음수업’을 보면 이해가 쉽다.

한선심 이사장은 “더 잘 살기 위해, 더 멋진 인생을 위해 죽음준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우리가 언젠간 지상을 떠난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주어진 찰나의 삶을 더욱 의미 있고 소중하게 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국 싸나톨로지스트 1호이자 한가족요양병원 전세일 원장은 “그동안 의학이 질병 치료에 중점을 뒀다면 이제는 환자의 남아있는 생명과 삶의 문제, 감정치유의 문제 등도 생각해 볼 때”라며 “싸나톨로지스트를 통해 환자 중심의 품위 있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국제 싸나톨로지스트가 되면 자신의 각 분야에 전문성이 더해져 의료기관 종사자는 의료 기술 외에 환자가 겪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변호사는 사망에 따른 법적인 문제를 폭넓게 다룰 수 있다. 호스피스 종사자가 싸나톨로지스트가 되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해 현장에서 더욱 전문성 있게 다가갈 수 있다. 또, 대학 등 연구기관과 사회복지관 등에서 근무 할 수도 있어 그 활동 영역이 넓다. 싸나톨로지스트는 2025 UN미래 보고서에서 10년 후 세계 10위 안에 미래 유망 직종으로 손꼽을 만큼 갈수록 전망 있는 전문 직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