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봉독>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사도행전 8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고난의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한번 따라 해주시겠습니까? “고난의 축복”(고난의 축복) “고난의 축복”(고난의 축복).

여러분 인생을 살다보면 예기치 않게 고난이 다가옵니다. 몸이 좀 이상해서 병원에 가봤더니 수술해야 하는 큰 병이 있기도 하고, 잘 자라던 자녀가 갑자기 사춘기에 들어와서 반항적이 되고, 잘못된 길로 나가 부모님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기도 하고, 사업을 하다가 여러 가지 일로 큰 어려움에 처해서 완전히 이제는 다 끝났다 하는 그런 절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고, 그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은 믿었던 사람이 배신을 하고 상처를 주고 손해를 입히고 등을 돌리게 되는 그러한 일들을 당하기도 하고, 이러한 일들이 예고 없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이러한 고난이 다가올 때 이러한 문제가 다가올 때 절망하고 좌절하고 주저앉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절망이 다가오고 고난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와도 그것을 새로운 기회로 알고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은혜와 축복의 시작으로 알고 믿음을 잘 견디어 나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3절과 4절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란 가운데서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즐거워 할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환란을 통하여 인내를 배우게 되고 인내를 통하여 연단 받고 훈련을 받아 준비가 되어 지면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우리의 꿈과 소망이 이루어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고난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와도 절대로 포기하거나 절망하고 주저앉아 뒤로 물러가면 안 됩니다.

여러분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서 하나님 내게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지금은 문제가 있지만 이 고난이 변하여 축복으로 다가오는 것을 믿습니다. 그와 같은 믿음의 자세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1. 믿는 자가 당하는 고난

먼저 믿는 자가 당하는 고난에 대해서 함께 생각을 해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고난이 다가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예기치 않는 고난이 종종 다가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폭발적인 부흥을 했습니다. 그때 고난이 다가왔습니다.

사도행전 8장 1절로 3절에 보니까,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이 장면은 초대교회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집사였던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하고 그로 인해 교회에 큰 핍박이 다가오고 성도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그 내용을 설명을 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 이제 모든 것이 다 정리 될 것으로 알았던 유대교회 지도자들은 그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또 얼마 있지 않아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아 나와서 복음을 전하여서 복음이 급속도로 증거 되는 것을 저들이 알고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얼마나 폭발적으로 교회가 부흥을 했느냐? 성경을 보니까 사도행전 2장 41절은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우리교회에서 금요일마다 침례를 할 때, 몇 백 명 침례를 해도 시간도 많이 걸리고 줄도 긴데 삼천 명이 줄을 서서 침례 받는 장면을 여러분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4장 4절을 보니까 숫자가 더 확대 됩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여자와 아이를 빼놓고 남자만 오천이니까 벌써 이만에서 삼만의 성도가 늘어난 것입니다. 6장 7절을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그들을 핍박하던 제사장들의 무리들도 예수 믿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려고 핍박하고 저들의 모든 활동을 억제하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복음이 더 확장되었습니다. 사도들을 붙잡아 저들을 심판하려고 했지만 백성들을 두려워해서 도로 놔주는 장면이 4장 21절에 나옵니다.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교회가 너무 폭발적으로 부흥을 하니까 교회에 이 행정을 맡아 관리할 재직을 뽑았습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일곱 집사를 뽑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중에 스데반 집사와 빌립집사를 우리는 주목해 봅시다. 얼마나 집사님들이 성령 충만하고 말씀 충만했던지 가서 말씀을 전할 때 귀신이 쫓겨나고 병이 고침을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도 잘했고 나가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담대히 주의 복음을 전하는 데에 앞장섰기 때문에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 8절을 보니까,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성경은 말씀합니다. 얼마나 말씀을 잘 전했든지 스데반 집사의 말을 당할 수가 없었어요. 6장 10절에,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 유대인들이 거짓증인을 세워 그를 붙잡아 산헤드린 공회에 세워서 그를 재판하려고 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오늘날의 국회와 같은 곳인데 그 당시 최고의 권력기관입니다. 그런데 스데반 집사가 그들 앞에 서서 당당하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얼굴이 천사처럼 빛나더라. 할렐루야.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환란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슴을 펴고 담대히 주의 말씀을 전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 15절은 설명합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여러분의 모습이 천사의 얼굴처럼 여러분의 얼굴이 천사를 본 것처럼 빛나는 그러한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야, 저 사람은 진짜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그 어려움과 문제 가운데서도 얼굴에 기쁨이 충만하고 늘 입만 열면 감사하니 정말 저분은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다.” 인정받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고난의 때에 문제와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동요되지 말고 얼굴에 늘 미소를 잃지 말고 강하고 담대한 그런 믿음으로 전진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고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고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환상 가운데 하늘이 열리면서 예수님이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외쳤습니다. “보라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내가 보는 도다.” 그들이 귀를 막고 달려들어 돌을 들어 그를 쳤습니다.

그가 돌에 맞아 죽을 때 자기에게 돌 던진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7장 59절 60절을 보면,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성경은 죽는 것을 잔다고 표현했습니다. 왜? 죽음 이후에, 천국의 삶이 시작되기 때문에 잔다는 것은 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근데 그가 돌에 맞아 죽음으면서, 피투성이가 되면서 주님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실 때에 예수님을 못 박은 자들을 용서한 것같이 스데반 집사도 돌에 맞아 죽으면서 그들을 용서하며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누가 우리를 핍박하고 우리에게 돌을 던질 때 같이 돌을 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너그러운 마음,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품고 사랑해줄 때 용서해줄 때 큰 은혜가 임합니다. 이 모습을 본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이 나중에 변화되어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임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늘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믿음의 전진을 해나가시길 바랍니다.

‘오픈도어선교회’에서는 2015년도 기독교 박해에 대한 보고서를 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하여 약 1억 명이 넘는 크리스천들이 신앙 때문에 예수를 믿는 신앙 때문에 심문과 체포, 죽음까지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상의 10개국 기독교를 핍박하는 10개국 여러 나라가 ‘북한, 소말리아, 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수단, 이란, 파키스탄, 에리트레아, 나이지리아’ 인데 북한은 2002년부터 13년 연속 1위로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박해하는 나라로 뽑혔습니다.

박해의 주된 요인은 이슬람 극단주의로, 상위 50개국에서 40개국에 주요 박해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고, 그 다음이 독재주의 편집증입니다. 북한을 포함한 상당한 국가에서 독재주의 나라에서 이 기독교인을 핍박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리비아에서 IS에 의해 21명의 이집트 기독교인들이 참수되었습니다. 이들 가족들은 그 가족의 순교를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남편이 참수당한 젊은 과부 미리암 파르하트는 23세밖에 안됐는데요. 남편을 잃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처음 이틀 동안은 매우 슬펐고, IS가 공개한 비디오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디오에서 참수당한 21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매우 위로를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라’는 협박을 거부하고, 자신과 다른 기독교인들이 참수당할 때 예수님께 기도한 남편이 자랑스럽고 위로가 됩니다.”

형제가 참수당한 사무엘(Samuel)이라고 하는 성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순교자들의 믿음을 지켜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비디오에서 ‘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뻤습니다. 그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는 이유로 살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매우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IS 대원들의 마음을 여시고, 그들이 진리를 알고, 자신들이 잘못된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올바른 행위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용서’하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고난의 축복입니다. 순교를 당한 그 비디오를 보면서 가족들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기 가족을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한 위대한 신앙인으로 저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리고 지금도 주의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복음의 증인들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이 우리에게 다가온 축복의 기회요, 하나님의 은혜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절대로 고난 중에 무너지지 마시고 믿음으로 무장해서 더욱더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앞만 바라보고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사마리아에 증거 된 복음

둘째로 사마리아에 증거 된 복음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드립니다. 저들이 핍박받고 흩어졌을 때, 흩어진 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8장 4절로 6절에,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여러분, 고난 당할 때 내게 왜 이와 같은 고난이 다가왔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었는가. 우리 자신의 신앙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늘 새로워져야 합니다. 늘 주님 앞에 변화되어야 합니다. 잘못 된 것을 바로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더해 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5절을 보니까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주여, 우리가 변화 받고 새로워지게 하여주옵소서. 새로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늘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주님의 일꾼으로 설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우리가 새로워져야 되고, 우리 교회도 날마다 새로워져야 되고, 우리 모든 모습들이 날마다 새로워질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흩어진 성도들이 그들이 흩어진 자리에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에게 이러한 환난과 핍박이 다가오게 되었는가. 그때 그들이 떠올랐던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읽습니다. 8절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분명히 주님께서 분부하신 말씀은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게 되는데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예루살렘에 너무나 큰 은혜와 축복과 부흥이 임하니까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모여서 매일같이 예배드렸어요.

이 집에서, 저 집에서, 돌아가면서 예배를 드리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영광 돌리면서 살아가면서 그만 ‘여기가 좋사오니’ 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들이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인데 그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큰 환난이 다가온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흩어지게 되었을 때 ‘아, 스데반 집사가 바로 돌에 맞아 죽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구나.’ 우리가 사명을 잊어버리고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무사안일하게, 편하게만 있으려고 했던 우리의 신앙의 자세가 문제였구나. 그래서 뿔뿔이 흩어져서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오늘날 전 세계에 1/3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디모데후서 4장 1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중국 최초의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 선교사가 있습니다. 오늘날 중국교회가 엄청나게 부흥하고 있는데요. 처음에 이곳에 복음을 들고 간 것이 바로 영국선교사 로버트 모리슨인데 그는 열다섯 살 때 이미 선교사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매우 총명한 머리를 갖고 있어서 어릴 때부터 주목을 받고 대학에서도 공부를 잘하여 교수가 그를 이끌어서 교수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 저는 주님을 위해 나 자신을 버렸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주님, 저는 비록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복음이 가장 필요한 곳’에 가기를 원합니다. 주님, 이 일을 위하여 저를 인도하소서!”

25세 때 그가 중국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당시 중국은 우리나라 대원군시대처럼 외국을 가장 적대시 했고, 서양인의 중국선교가 전면금지 되었고 중국인들에게 중국어를 배우는 것조차도 금지되었습니다. 중국인이 만약 외국인에게 중국말을 가르치다가 적발되면 극형에 처함을 받았기 때문에 중국 사람들이 중국말을 가르쳐주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곳에 들어가서 고생에 고생을 하면서, 창문도 없는 지하 화물창고에서 생활을 하며 중국말을 배우고 복음을 전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첫아들이 태어난 날 바로 그 자리에서 죽었고, 아내는 결혼한 지 6년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얼마나 핍박이 심한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열매가 없었습니다. 7년 동안에 겨우 한 사람 전도했고요, 25년 동안에 열 명에게 침례를 베풀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긴긴 세월동안 눈에 보이는 열매는 나타나지 않았지만은 장차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 것을 믿고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는 천명 이상이 침례를 받을 것이다. 그런 꿈을 가지고 성경을 번역했는데, 이와 같은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모리스는 1834년에 죽기까지 ‘열 명’의 중국인들에게 침례를 베풀었으며, ‘100년 후 1934년까지 천 명이 침례를 받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러나 1858-1860년 중국 내륙이 열림으로써 ‘교회의 확장’은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1877년에 이미 회심자들의 수는 ‘1만3천 명’에 달하였다. ‘많은 수의 선교사들’이 이곳으로 왔으며, ‘대학교, 중고등학교, 병원, 의과대학’이 설립되었고, 모리슨이 처음 중국을 찾은 뒤 ‘백년’ 만에 ‘3,445명의 선교사’, ‘33만 명의 중국인 신자’, ‘10만 명의 중국인 목사들과 교사들’이 생겨났다!

할렐루야. 백년 만에 그가 꾼 꿈의 목표가 330배 이상의 그 부흥을 가져오게 되었고요. 오늘날 중국은 미국, 브라질 다음으로 가장 많은 크리스천을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가 그 극심한 환난 가운데 번역한 성경은 중국복음화의 초석이 되었고 이 중국어 성경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던 퀼츨라프 선교사와 토마스 선교사가 이 성경을 갖고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리슨 선교사를 통하여 위대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중국 난징에 있는 애덕출판사에서는 성경을 1년에 천만 권씩 찍고 있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제가 그곳을 다녀왔는데 올해 3월까지 중국에서 발행한, 출판사에서 발행한 성경만 1억 3천 3백 권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셨는데 이 모리슨 선교사의 뿌려진 적은 씨앗이 이와 같은 큰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 어떠한 고난이 다가와도 참고 견디고 믿음으로 나가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축복은 다가옵니다.

3. 주님이 주신 기쁨

세 번째로 주님이 주신 기쁨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이 놀라운 일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큰 은혜와 기쁨과 축복을 더해 주십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8장 7절에,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모든 결박에서 놓여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 말씀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성령 받고 나서 복음을 전할 때 놀라운 역사가 임합니다. 귀신이 쫓겨나가고 병이 고침을 받고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할렐루야. 여러분, 성령 충만 받아 이 귀한 역사를 잘 감당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오늘도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떤 역사가 나타났습니까? 사도행전 8장 8절을 보니까,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우리 마음에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감사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고난이 변하여 축복이 되니 기쁨이 충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가 충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어떤 고난이 다가오고 어떤 문제가 다가와도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무장해서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임할 것입니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임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있는 그 곳에 넘치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성령 충만 받고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가정에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여러분으로 인하여 여러분 직장에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여러분으로 인하여 여러분 사업장에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여러분으로 인하여 학교가 기쁨이 충만하고 캠퍼스가 기쁨이 충만한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여러분을 통하여 모든 구역이 충만하고 감사가 충만하게 되고 날마다 교회가 부흥하고 새롭게 변화되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주여,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삶 가운데 큰 기쁨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도행전 13장 52절에 보니까,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늘 기쁨이 충만해야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 우리 권면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항상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할렐루야. 문제가 다가와도 어려움이 다가와도 슬픔이 다가와도 기뻐하고 감사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기적이 우리 삶 가운데 풍성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울어보고 웃어보니 웃는 것이 낫다고 여러분, 고난의 때에 여유 있는 마음을 갖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고통 가운데 고난을 통과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왕이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염려할 시간에 기도하고 찬양하고 속상해 하고 소리 지를 시간에 웃고 감사하며 고난을 잘 헤쳐 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매년 6월 26일은 UN이 정한 세계 마약퇴치의 날입니다. 17년째 마약 중독자 재활을 돕고 계신 신용원 목사님이 있습니다. 3대째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 태어났지만 아버지께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셔서 가세가 기울게 되자 방황을 했습니다. 전교 1등 하던 그 학생이 삐뚤어 나갔습니다. 그래서 부잣집 아이들 돈을 뺏고 싸움하다가 마약까지 손을 대게 되어서 마약중독자가 되고 폭력사건에 연루되어 수배자가 되어 도망을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숨을 곳을 찾던 중 숨어들어간 곳이 오산리 기도원입니다. 이 오산리 기도원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납니다. 41세에 청상과부가 되어서 늘 자기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신 어머니 기도가 떠올랐습니다. 그때에 그가 기도원에서 하나님께 매달려 통곡하며 부르짖고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는 고백합니다. “하늘을 보며 살려달라고 빌었죠. ‘어머니가 맨날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데, 나에게 그걸 믿게 해주시면 평생 배신하지 않겠다고’요. 그런데 정말 ‘어마어마한 불덩어리’가 몸 안에 쑥 들어오는 거예요. 방언이 뭔지도 모를 때였는데 제가 ‘방언’을 제가 하고 있었어요! 8시간이나 울다가 웃다가 하며 뒹굴었어요. 아침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는데, 그게 그렇게 아름다운 거예요. 그때부터 거짓말처럼 마약이 끊어지더라고요!”

할렐루야. 신학을 공부한 다음 17년 째 자기처럼 마약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구해내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고, 2005년에는 세계 마약의 날 기념국민근정포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복음’으로 안되는 게 어디 있습니까? 마약보다 강력한 체험은 ‘성령 체험’밖에 없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모두가 성령 충만 받고 주님의 기쁨이 넘쳐나서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넉넉히 잘 이겨내고 승리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이 고난 중에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 마음에 염려, 근심,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 주님이 함께하시고 고난은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요, 축복의 출발점인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어떤 문제가 다가와도 주님만 붙잡고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영광을 주께 돌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15. 6. 28. 주일 4부예배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