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나도 꿈꾸는 사람인가? 한 번 따라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도 꿈꾸는 사람인가?

꿈꾸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많은 지식이나 좋은 환경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꿈이란 내일에 대한 소원과 바람을 마음에 품는 것이 꿈입니다. 아브람은 나이 75세에 갈데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가 가나안의 꿈을 마음속에 받아들였습니다. 아브람의 재산이라고는 그가 마음에 품은 꿈이 전부였습니다. 나는 재산이 없습니다. 나는 일류 대학의 졸업장이 없습니다. 나는 전문적인 지식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꿈꾸는 것은 그런 것이 없어도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재산이 없어도 꿈은 꿀 수 있습니다. 일류학교의 졸업장이 없어도 꿈은 꿀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꿈을 품을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꿈을 가지고 있으면 꿈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신앙과 생활에 성공한 사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꿈꾸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꿈꾸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오늘 꿈꾸는 사람입니까?

1. 꿈은 현실이 아니다.

꿈은 현실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꿈속에 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꿈은 우리 마음속에 삶의 목표를 제시합니다. 꿈이 없으면 살아갈 목표와 희망을 얻지 못하고 운명론자나 절망자가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여기 소원은 꿈이란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의 소원. 뭘 소원하느냐? 그 꿈을 마음속에 두고서 여러분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5절에도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너희 꿈을 이루어 주어서 독수리가 날개 치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같이 큰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꿈이란 마음에 품은 소원이다

꿈이란 내 마음의 화폭 위에 넣은 소원을 성취시킨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아름다운 미래의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진 모습을 그려 넣는 것입니다. 언제나 제 가슴을 바라보면 그 아름다운 소원이 꿈이 되어 있습니다. 그게 이루어질지 안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기도를 할 때 기도가 힘이 있는 것입니다. 꿈을 품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헛된 기도가 많습니다. 꿈을 품고 기도하면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도 여기 앉아서 찬송을 부르시는 여러분을 바라보고 조금만 더 꿈을 구체적으로 꾸었다면 이렇게 기둥이 많은 교회는 안 지었을 것인데…. 아주 멋지게 교회를 지었을 것인데…. 꿈이 적으니깐 그것을 다 이루어지니깐 할 수 없이 늘 교회당을 넓게 만들기 위해서 기둥을 세우고 또 새로 기둥을 세우고 이래가지고서 떨어진 누더기 기워 입듯이 이렇게 교회를 만들어서 안됐다 싶은 생각이 났습니다만 그래도 하나님이 꿈을 이루어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소원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항상 그 소원이 이루어진 꿈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그 꿈입니다. 그 소원이 이루어진 꿈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면 기도가 굉장히 힘이 있습니다.

시편 149편 19절에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는도다”. 그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어주신다. 여러분 마음의 소원이 꿈입니다. 꿈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가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구하면 그것이 여러분의 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소원의 꿈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3. 꿈을 기도하라

꿈을 가슴에 품고 기도를 해야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후손을 비유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마음에 꿈을 분명하게 가졌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꿈이 없이 기도만 했으나, 꿈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자 즉시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 것입니다. 아들을 달라고 10년을 기도했습니다. 10년을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이 아들을 주지 아니했었습니다. 나중에 85세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낙심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식을 안 주니까 우리 집에서 기르는 종을 양자로 들이고 상속자로 삼겠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녁에 밖으로 나오라고…. 밖에 나오니까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리라. 별들을 헤아리니까 네 자손이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 마음속에 별들이 다 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니까 이젠 아들이 구만리장천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속에 들어와서 꿈으로 거기에 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그 소리가 가슴 속에서 울려나는 것입니다.

그는 감동했습니다. 믿었습니다. 그러자 백세에 아들을 얻게 된 것입니다. 꿈을 가지고 기도하라. 적은 꿈이라도 확실히 마음에 꿈을 가지고 기도하라. 바라봄의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바라보면서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을 줄 때도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눈에 보이는 그 땅을 내가 네 후손에게 주리라. 바라보아야 돼요.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여러분, 적은 것이라도 바라보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믿음도 주시고 꿈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고 입술로만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4절로 5절에 보면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어떤 사람들이 내게 와서 “목사님 꿈을 어떻게 꿉니까? 어떻게 꿈을 가집니까?” 그래 내가 하는 말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모두 다 당신의 꿈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에 감동을 갖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마음에 작정하고 이루어진 모습을 마음속에 꿈으로 간직하고 기도하면 꿈이 있는 곳에 믿음이 생겨나고 믿음이 생겨난 곳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장막집을 가지고서 늘 자기 장막집만 바라보고 기도를 합니다. 이 장막집 밖으로 나와야 됩니다. 육신의 감각적인 세계를 벗어나서 성경에 기록한 말씀을 꿈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성경에 7,000여개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냥 약속 아니라 7,000여개의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받아들이면 여러분 일일이 다 꿈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꿈을 갖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4. 꿈은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해서 홍해수를 건너고 가나안 땅 바로 가까운데 왔습니다. 열두 종파를 거느리고 모세가 한 종파에 한사람씩 대표를 세워서 가나안 땅을 스파이하고 돌아오게 한 것입니다. 10명은 인본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정탐하고 그 때문에 불가능의 환경을 뚜렷이 바라보고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12명의 정탐꾼을 보내되 그 중에 10명은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살아있는 믿음이 없었어요. 할 수 없다. 안 된다. 손 털어라.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절대로 안 될 거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본 것은 안 되는 것만 보았지 된 것은 보지 않았었습니다. 민수기 13장 31절로 33절에 보면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엄청난 잘못된 보고를 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바라본 것은 할 수 없다. 안 된다는 보고밖에 없습니다.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

메뚜기 철학을 가지고서 자기들은 가나안 땅 주민들과 상대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우리 도로 애굽으로 돌아가자. 모세를 제쳐버리고 쿠데타를 일으켜서 우리가 새로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 것입니다.

정말로 잘못된 정보는 비극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탐꾼 중에 여호수와와 갈렙은 하나님을 모시고 정탐을 했으며, 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정보를 접수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는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하든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일어나서 민수기 14장 6절로 9절에 보면 백성들을 안돈시키려고 했습니다.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다른 번역으로 말하면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똑같은 사항을 40일 동안 정탐하고 난 다음 보고가 이렇게 다릅니다. 10사람의 보고는 “우리는 그들 앞에 메뚜기 같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 밥이라. 가서 먹으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 들어가서 점령하자.” 그러니깐 백성들이 그 말을 듣고 회개를 하는 것 대신에 돌멩이를 들어서 둘을 쳐 죽이려고 그랬습니다. 네가 어디에 와서 거짓말을 하느냐? 쳐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해야 하나님과 같이 행동할 수 있는 것인데 10사람은 하나님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보고하는 것도 하나님 없는 보고를 했습니다. 여호수와와 갈렙은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 모신 그 지식 속에서 정탐을 했으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정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도 지금 이만한 발전을 하고 산 것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하는 지도자들이 있어서 우리 국민에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취하도록 했기 때문에 이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의 지도자가 앞으로라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하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우리는 못해 안 돼 할 수 없어. 세계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우리가 따라갈 수 없어. 그렇게 말하면 국민들 전체가 신앙을 잃게 되고 망합니다. 할 수 없게 되면 망합니다. 우리 한국은 (교회가 많아지고 성도의 수가 많아져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할 수 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을 가지고 기도하고 일했기 때문에 오늘날 같은 축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를 믿게 된다는 것은 큰 개인의 축복일 뿐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축복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을 하면 그 자체가 애국자인 것입니다. 앞으로 더욱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우리 한국을 만들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면 무엇을 두려워할 것이 있겠습니까?

5. 꿈은 기적을 가져온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성경에 보면 그 제자 빌립을 시험해보시는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절로 6절에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주님께서 여러분 자체도 시험할 때가 있습니다. 빌립은 제잔데 주님은 시험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수없이 많이 고치니까 사람들이 그것을 눈으로 보기도 하고 또 병자들을 고치게 하기 위해서 인산인해로 모여왔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녁이 되니까 하루 종일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그 사람들이 시장하단 말입니다. 먹을 것을 줘야 되겠다고. 빌립에게 어떻게 음식을 사서 먹이겠느냐?

빌립은 예수님을 따르는 열두 제자 중에 한 사람이지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이 없었습니다. 그는 당장 계산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계산에 넣지 않고 계산한 것입니다. 이곳은 광야다. 남자만 한 오천 명이니까 부녀자 하면 한 이삼만 명이 된다. 다 조금씩 먹을지라도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떡이 부족하다. 떡 살 곳도 없다. 그가 순식간에 계산의 결과를 예수님께 고했습니다. 이곳은 광야고 사람도 많고 음식 살 곳이 없으니 먹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계산을 잘못한 것이 뭐냐면 땅은 넓고 사람은 많고 떡 살 곳도 없다 는 못 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계산은 자기 계산에 넣었지만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같이 계신다는 계산은 넣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계산에 넣어야지요. 여러분의 삶 속에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을 계산에 넣어서 예수님과 함께 계산해야지 예수님 없이 인력으로 계산을 하면 할 수 없지요.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하나님 없이 인생을 계산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여러분 계산할 때 하나님을 계산에 넣어야 돼요. 하나님을 계산에 넣어서 빌립이 대답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 예수님이 빌립을 시험했는데 빌립은 낙제했습니다. 못 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광야가 있고 백성들이 있다. 광야와 백성들은 있는데 왜 광야에 같이 있는 예수님은 안 보았습니까? 여러분 가정생활에 어려움이 다가올 때 이 어떻게 할꼬? 고민스럽지 않습니까? 그 어려움만 보지 말고 어려운 곳에도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같이 있으리라.

같이 계신 예수님은 왜 계산에 안 넣습니까? 이것이 우리 신앙에 큰 어려움인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빈손 들고 서울에서 목회를 시작했지만은 크고 적은 일에 항상 예수님을 모시고 계산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계산하니까 광야 속에 광야만 본 것이 아니요. 불가능만 본 것이 아니요.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붙잡고 매달리니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그 때문에 예수님이 먹일 것을 못 먹일 리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요6:10)” 남자만 한 오천 명, 부녀자 수만 명이 되는데 음식을 살 곳도 상점도 돈도 없다고 없는 곳을 바라본 빌립을 생각하니 기가 막힙니다. 여러분 어떠한 일을 당해도 없다 인생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예수님이 계시면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빈 손 들고 살아간다. 그렇게 말하지 마시고 나는 예수님과 더불어 살아단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간다. 무엇이든지 주께 기도하면 주님께서 들으시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마 11:28-30)” 아, 주님이 초청하고 있는데요. 나와 같이 인생을 살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여러분 우리의 생활에 절대로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길을 옮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없는 것은 항상 있어요. 가난한 자도 늘 있고 병든 자도 늘 있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도 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우리와 늘 같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너희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노라.

가정예배가 왜 중요합니까? 가족들이 모여서 기도하면 그 가운데 예수님이 함께하시므로 모든 짐을 예수님께 기도하고 맡기면 주님께서 가정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 15절에 보면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을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이 예수님 제자들이 이렇게 데리고 다니면서 기적을 보고 배우게 했는데도 어려운 일이 닥치니깐 다 못 한다는 말부터 먼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돈은 없다고 해도 좋습니다. 돈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니깐! 권세가 없다. 그것도 좋습니다. 모두 다 권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깐! 그러나 ‘예수님이 안 계신다.’ 그렇게 말하면 절대 아닌 것입니다.

뒤에 예수님이 계시면, 예수님을 의지하면, 필요하면 돈도 생기고 권리도 생기고 바다와 바닷물도 잠잠해지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 (그가) 네 죄를 다 사하시고 네 병을 다 고치시고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성경에 예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몰라요~안돼요~우리는 빈 손들었습니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물을 보기 때문에 모든 일에 있어서 할 수 있습니다. 될 수 있습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날 교회가 망하는 것은 살아계신 예수님이 기적을 이룩하시는 것을 빌립처럼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안드레는 품앗이를 들러 왔는데 예수님은 안드레에게 부탁 안 했습니다. 그런데 안드레가 예수님께 와서 ‘주님 여기에 어린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있는데 이것 가지고 어림도 없지 않습니까.’ 안드레는 그래도 희미하게 예수님을 기적을 행하는 하나님으로 인정을 했습니다. 전혀 인정도 안 했었으면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도 가지고 안 왔지요. 저 사진은 물고기가 많은데 예수님께 가져온 물고기는 두 마리 였었습니다. 그런데 품앗이를 들러 왔어요.

주님 묻지도 않았는데 안드레는 여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소년의 점심 도시락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 가지고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이것을 어떻게 좀 할 수 있을지 싶어서 가지고 왔습니다. 정 없다고 하는 빌립은 예수님이 떠났으면 그래도 희미한 믿음이라도 가지고 나온 안드레를 주님께서 곁에 불러서 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이 축사하고 나누어 주신즉 오천 명이 다 배불리 먹고 열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저때 우리도 참여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고기를 꺾어서 주고 나니 또 생겨나고 떡을 떼고 나니까 또 생겨나고 하나님이 우주와 만물을 지으셨으니 자꾸 생겨나게 하는 것은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참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반드시 잊지 말고 가져야 될 것은 우리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전지전능 무소부지할 뿐 아니라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으로 좋은 일을 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주와 만물을 지어놓고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좋은 일을 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나쁜 마귀, 주님은 좋은 하나님이신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행하면 생각이 언제나 긍정적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계시는데 할 수 없다, 안 된다, 못한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왜 문제는 그 자리에 있고 광야도 그 자리에 있고, 없는 것도 그 자리에 있고 돈이 없다는 것도 그 자리에 있는데 예수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광야에 갔을 때 예수님을 숫자에 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숫자에 넣어야 돼요.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이 강단에 서는 조용기도 숫자에 넣어주면 조용기가 여러분 집안을 위해서 기도도 해주고 설교도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아 조용기 목사 이제 은퇴도 하고 기운도 없어 보이니깐 소용이 없다. 우리 우리끼리 해보자.’ 잘 할 거에요. 그러나 제가 기도를 해 드리면 좀 더 잘 될 것입니다. 그런다고 내일부터 신앙상담이 몇 백 명씩 몰려오면 뒷감당은 못 합니다. 저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60년을 가까이 경험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예수님이라면 그 향기로운 그리스도의 냄새가 기가 막힙니다.

여러분 제가 말씀을 안 드렸습니다만, 예수님을 모시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어떤 때 강대상에 올라오면 그 향기가, 예수님의 이름에 붙어서 넘쳐 나오는 향기가 너무 기가 막힙니다. 코를 뚫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심장을 뚫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위를 살펴봅니다. 누가 향수를 뿌리고 왔는지. 근데 여기에 향수를 뿌리고 온 기도하는 장로님은 안 계세요. 오늘 우리 장로님 기도에 내가 마음에 크게 감동을 느꼈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오시면 마음속에 멋있는 향기가 그런 향기가 날 수가 없어요.

그럼 내가 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향기 저만 맡게 하지 마시고 우리 성도들도 좀 맡게 해 주시옵소서! 그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들어오시면 여러분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 예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그러고 여러분이 예수님 앞에서 바라고 소원하는 꿈을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좋은 집으로 이사 갈 수 있다. 그 마음에 소원이 있으면 예수님 앞에서 여러분이 그 꿈을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여러분에게 변화와 기적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더 변화된 삶, 더 나은 내일을 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꿈을 통하여 예수님과 대화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여러분 당장 여러분의 힘으론 안 되지 않아요? 꿈을 마음속에 품고 예수님께 꿈의 이야기를 하면 주님께서 그것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적을 언제나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성경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가는 곳마다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그러한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만 보지 말고, 예수님께서 함께 와 계신 것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 광야는 언제나 다가오는 것입니다. 광야를 만났을 때 ‘이제 큰일 났다. 우린 망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왜? 광야에 여러분이 계신 곳에는 예수님도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광야에 여러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함께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승리를 갖다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창조적인 입술의 고백을 해야 돼요. 예수님이 계시면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무를 유로 변화시키는 예수님이기 때문에 창조적인 기적이 있는 것을 선포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제가 길을 가다가 몸이 괴로워서 고통을 당한다면 ‘나는 예수님께서 나와 같이 계심으로 건강하다. 나는 튼튼하다. 나는 치료 받았다. 생명력이 있다!’ 그렇게 창조적인 말을 하면 그것이 실제 힘이 되어서 여러분 몸에 생기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창조적인 선언은 굉장히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고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다 우리 입으로 창조적인 명령을 하라는 것입니다.

너 이 죄는 물러가라! 너 이 귀신은 물러가라! 너 이 질병은 나을지어다! 너 이 가난은 물러가라! 부정적인 세력은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칠 때 여러분 말이 하나님의 능력이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입술의 고백이 여러분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프랑스의 작가인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는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에 분명한 꿈을 가지고 있으면 삶의 자세가 달라지고, 결국 삶의 모습도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꿈을 마음에 그리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여러분이 종이를 내어서 손으로 그 꿈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목표를 기록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직 뿌려지지 않은 씨앗만 가지고 있는 셈이다. 씨앗만 가지고 있으면 싹이 나고 잎이 피지 않지 않습니까. 꿈은 씨앗을 뿌려놓음과 같은 것입니다. 제가 반평생을 세계 여러 곳에 가서 교회성장에 대한 강의를 하는데 반드시 내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들은 교회 성장을 하길 원하면 종이에 기록을 해라. 앞으로 5년 동안에 1,000명의 교회를 만들겠다. 2,000명, 5,000명, 10,000명, 그 목표를 기록해서 그것을 벽에 붙여놓고 화장실에 붙여놓고, 책상 앞에 붙여놓고 그 꿈을 바라보아라.’ 나의 힘으로 안 되지만은 하나님 성령의 능력으로 제 꿈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꿈이 여러분 그것을 이루도록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오스트리아에 가서 세미나를 하는데 마지막 날 목사님들에게 교회성장을 위해서 5년 이후에 어떠한 교회가 되겠다는 꿈을 기록하라고 했어요. 모두들 와~웃어요. ‘오스트리아엔 그런 거 하면 안 됩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도박을 좋아하고, 스포츠를 좋아하기 때문에 주일날 놀러가지 교회 안 나옵니다.’ 그래서 ‘그럼 무엇 때문에 세미나 했습니까? 교회당을 지을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다 도박하러 가고 스포츠 하러 갔으니까는 문 닫아 버려야지.’ 무조건하고 종이를 가져오고 연필을 가져와서 적자고. 그래서 제가 기도를 같이 하고, 적어서 내놓으라 했어요.

종이를 가져왔는데 보니까는 200명, 300명, 500명… 1,000명도 안돼요. 아주 꿈을 안 가져요. 그런데 거기에 목사님 한분은 5,000명을 적어 나왔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전부 다 웃었습니다. 근데 나는 안 웃었었어요. 하나님 앞에 5,000명이라는 꿈을 꾸었으면 5,000명이라는 꿈이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꿈이 그 목사님과 환경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작년, 재작년 한국에서 감리교회에서 교회성령 세미나를 하는데 그 목사님 아들이 참석을 했어요. 아버지는 이제 나이가 많고 은퇴하셔서 자기가 그 교회를 인계해서 지금 목회하고 있다고 그래서 그 교회가 지금 아버지가 5,000명을 적었는데 지금 몇 명이냐고…. 허허허 웃으면서 우리 아버지가 조 목사님 말을 너무나 많이 해서 아주 조 목사님 이름이 우리 마음에 박혔습니다. 아침밥 먹을 때도 조 목사 이야기 하고, 세미나를 해도 조 목사 이야기 하고, 기도할 때도 늘 조 목사 이야기 하고….

그래서 ‘조 목사는 이야기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데 교회가 어떻게 됐습니까?’, 허허허 웃으면서 내가 ‘아버지가 5,000명을 적었는데 5,000명이 되었습니까?’ 하니 ‘아니요.’, ‘그럼 결국 실패했군요.’, ‘실패 안 했습니다.’, ‘5,000명 안 되었다면서요?’, ‘8,000명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니”.

그러므로 기록해야 돼요. 여러분 저는 하나님께 편지를 늘 씁니다. 옛날에는 일사천리로 말을 했지만은 요사이는 하나님께 편지를 씁니다. 오늘도 또 집에 들어가면 오늘 예배 본 사실을 편지로 쓸 거에요. ‘하나님 내가 설교하는데 열심히 듣는 교인도 있고, 조는 교인들도 있었습니다.’ 저의 책상에 가면 제가 매일같이 하나님께 편지한 노트북이 이렇게 쌓여 있습니다. 그걸 왜 말로 하면 될 것인데 글로 적느냐? 하나님은 글로 적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여러분도 글로 적으면 헛소리 못 합니다. 헛소리 못하도록 하고, 글로 적으면 굉장히 좋은 꿈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글을 적고 읽고 간수해 놓으면 그 글이 여러분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꿈과 목표를 종이에 기록하는 것이 원하는 사람들이 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꿈을 마음속에 분명히 기록해두면 꿈이 그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가고 마침내 그 꿈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꿈이 나를 이끌어 간다!’ 아무 꿈도 안 가지면 가자는 사람도 없어요, 갈 곳도 없어요. 꿈을 꾸면 꿈이 나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참 이 세상에 기막히게 인생을 사는 길이 있습니다. 인생을 꿈을 통해서 믿음으로 살 수 있는 길도 있는가 하면, 꿈을 저버리고 인간의 힘으로 살다가 실패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나도 꿈꾸는 사람인가? 여러분도 꿈꾸는 사람입니까? 꿈을 꾸십시오! 적은 꿈도 꾸고 큰 꿈도 꾸십시오! 많은 꿈을 꾸고 있으면 순서를 쫓아서 꿈이 여러분의 생애 속에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 때 진짜로 꿈을 꾸는 꿈도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마음속에 확실히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진짜로 꿈꾸는 것도 있고 하나님 성령께서 마음속에 꿈을 심어주는 꿈도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다가 바라는 꿈을 마음속에 그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방법이지만은 꿈은 여러분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여러분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꿈이 점령해서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개인은 망합니다. 꿈이 없는 백성도 망합니다. 꿈이 없는 교회도 망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준다고 말한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 믿는 사람이 발전하는 이유는 성령이 오셔서 환상과 꿈을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령이 오시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진동도 하고, 뭐 그렇게 한다 말입니다. 그런 것은 없어도 그만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이 오시면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준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환상과 꿈을 가슴에 품고 있으면 하나님이 환상과 꿈을 통하여 직접 역사하시기 때문에, 요셉같이 종으로 팔려왔으나 꿈은 요셉을 끌어서 애굽의 국무총리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꿈은 약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다 꿈꾸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5. 6. 28. 주일 4부예배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