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 19:4)

성경의 언약 이해에 도움을 준 학문적 결실은, 고대 근동 지방의 정치적 조약들에 관한 연구이다. 특히 고고학 발굴을 통하여 근동 지방의 다양한 정치적 조약들에 대한 연구가 가능하게 됐다. 그 가운데 강대국들 사이의 쌍무적 관계의 조약들보다는, 제국과 그 종속국 사이의 소위 ‘종주권 조약’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연구 가운데 고대 히타이트 제국의 왕들과 그에 예속된 종속국 군주들 사이에 맺은 정치적 조약에, 성경의 언약과 많은 유사성이 있음이 밝혀졌다. 이들의 조약 문서 형태는 특별하게 고정된 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문서에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요소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이 연구 결과로 밝혀졌다.

(1) 서두--종주권자의 신원과 칭호와 조상들을 밝힌다.

(2) 역사적 서언--종주권자와 종속자 사이에 있었던 이전 역사의 관계를 기록하면서, 종주권자가 종속국의 유익을 위하여 베푼 행위들을 강조한다.

(3) 조약 규정들--종속국이 종주권자에게 어떤 책임과 의무가 있는가를 밝힌다. 대표적인 규정으로는, 종속국이 히타이트 제국 외의 나라와 조약을 맺지 말아야 하는 점, 종주권자의 지배 아래 있는 다른 민족들을 침략하지 않아야 하는 점, 종속국 군주는 매년 일차씩 종주권자 앞으로 나와야 하는 점을 들 수 있다.

(4) 조약 문서의 보관--종속국은 조약 문서를 자국의 신전에 보관해야 하며, 정기적으로 낭독하여 자신들에게 종주권자에 대해 어떤 책무가 있는지를 상기시켜야 한다.

(5) 저주와 축복--종주권자에 대한 충성 여부에 따른 상벌이 규정된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전체 주제가 언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성서에서 가장 중요한 언약 관련 본문은, 출애굽기 19장에서 시작되어 24장까지 이어지는 시내산 언약이다. 시내산 언약과 관련된 본문이 히타이트 조약 문서의 구조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는 히타이트의 종주권 조약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대부분 등장하고 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 19:4)는 언약의 역사적 서언에 해당된다. 그런 점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출 20:2)라는 선언에서 다시 언급된다. 비록 히타이트 조약 문서의 역사적 서언보다는 짧은 내용이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억압에서 구출하셨다는 이전의 역사가 진술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은 출애굽 사건을 전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출 19:5)는 조약의 기본 규정과 그에 따르는 복의 규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 규정은 출애굽기 20장에서 십계명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를 위한 언약법으로 확대된다(출 21-23장).

이런 규정들은 언약 당사자들 사이의 쌍무적 규정이기보다는, 종주권자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일방적으로 부과하신 의무 규정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목적은 이스라엘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신 것이다.

출애굽기 24:3-8은 언약서의 낭독과 증인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언약서 기록과 낭독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말씀을 기록할 뿐 아니라 그것을 보관하고 공중 앞에서 낭독해야 함을 전제한다. 또한 열두 기둥은 열두 지파를 대표하는 것으로, 언약에 대한 증인 역할을 한다.

고대 근동의 조약 문서는 성경의 언약을 이해하도록 돕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들 문서를 통하여 언약과 관련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성경의 언약이 종주권자인 하나님과 종속국인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졌다는 점이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부과하신 의무 규정이 더없이 큰 복이라는 점이다. 전자가 언약의 근본적인 틀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후자는 언약에서 강조되는 법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로 내려오셔서 우리들을 언약의 동반자로 삼으셨지만, 여전히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여호와 경외’는 신앙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법 없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법을 통하여 ‘여호와 경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은 우리를 죽이는 ‘죄와 사망의 법’이 아니고, 우리를 살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다(롬 8:2).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