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조 목사는 빌립보서가 ‘그냥 읽어도 은혜가 되는 성경이라 오히려 부담될 수 있겠다’는 질문에 “모든 목사나 성경이 마찬가지겠지만, 자신 있어서 설교하는 본문은 단 하나도 없다”며 “빌립보서 설교는 세상에 함몰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그려 가면서, 우리가 이 땅에서 함몰되지 않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 매주 주시는 말씀들과 은혜를 나눈 것”이라고 했다. ⓒ이대웅 기자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이하 100주년기념교회) 정한조 목사가 최근 빌립보서 설교집 1·2권 <합당하게 생활하라>와 <이것들을 생각하라(이상 홍성사)>를 펴냈다. ‘선임목사’로서 담임목사의 안식월 동안 했던 설교를 엮은 책들이다. 한국교회에서 소위 ‘부교역자’가 주일 공예배 설교를 오랫동안 맡는 경우도 흔치 않은데, 설교집까지 발간한 것은 더욱 이례적이다. 본지는 이에 정 목사를 만나 관련된 이야기들을 나눴다. 다음은 정 목사와의 일문일답.

-책 서문에서도 언급하셨지만, 부교역자로서 주일 대예배 설교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빌립보서 강해로 두 권짜리 설교집까지 내셨습니다.

“보통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집회로 출타하거나 잠시 유고가 생기면 외부 강사를 많이 데려오는데, 저희 교회는 선임이라는 이유로 저를 세워 주셔서 개인적으로 매우 감사드립니다. 인간적으로는 감사했지만, 능력이 부족하고 형편없는데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맡게 됐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의 옥중서신 중 마지막이고, 사적 애정이 많이 들어간 작품입니다. 사역 중심, 목적 지향적이던 모습보다, 사람을 배려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또렷하게 드러나 있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의 별명이 ‘기쁨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그것과 함께 제게는 빌립보서를 생각하면 늘 ‘세상에 함몰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표면적으로는 로마의 죄수가 됐지만, 바울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함몰되지 않고, 그리스도께 매여 있고 붙잡혀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게 굉장히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사로잡고 세속적 가치관 속으로 빠뜨리려 하지만, 거기에 함몰되지 않고 천국 영생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다, 빌립보서가 연결됐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고 나면 영원한 호흡을 하게 되니, 빌립보서를 나누면 유익하리라는 것입니다. 설교집이 책으로 나온 것은 설교를 잘해서라기보다, 출판사에서 예쁘게 봐 주셨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출판사에서 애를 많이 써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설교 준비를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담임목사님처럼 순서대로 설교하니 본문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 본문을 창문 삼아 다른 본문들을 함께 보고, 세상 이야기들도 살피며 준비합니다. 설교는 제 모든 인생의 총체입니다. 본문의 창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된 결과가 이번 주에 나타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주일이나 수요일에 설교를 맡은 교역자들은 교회로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설교 준비를 합니다. 저도 주일에 설교가 있을 때는, 그 전날 토요일에는 교회로 출근하는 대신 새벽에 일어나 그동안 주신 내용을 원고로 옮깁니다. 저녁 늦게까지 하루 종일 해야 하는 고된 과정입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하룻 만에 하는 설교가 준비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지난 제 삶과 사역, 묵상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빌립보서는 짧은 분량(4장)인데 오랜 기간 설교하셨습니다. 성경 본문은 66권이나 되는데, 교인들이 편식할 위험은 없을까요.

“처음엔 담임목사님의 안식월(7개월) 동안 빌립보서를 충분히 마치고 시간이 남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들이 참 많았다고 할까요? 풍성한 내용을 주셔서 7개월간 1-2장을 끝냈습니다. 이후 담임목사님이 돌아오셨고, 아시는 것처럼 목사님께서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수술과 요양 동안 다시 설교를 맡게 돼 3-4장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래서 설교집 두 권이 나왔습니다. 두 번째 설교는 수술과 요양 기간에 한 것이라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편식의 위험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오히려 그것(강해·순서 설교)이 편식을 하지 않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 같은 절기 때면 목사님들이 선택하는 본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생활을 오래 하면 계속 겹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순서대로 설교하지 않는다면, 제가 과연 어떤 본문을 선택할까요? 한 주간, 또는 최근 읽은 말씀 중 와 닿는 부분을 택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다 보면 제 취향대로 교인들에게 설교하게 됩니다.

그러나 순서대로 할 경우에는 제가 좋아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어렵거나 피하고 싶은 본문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설교하면서 그 말씀이 진짜 하나님 말씀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부분만 한다면, 뛰어 넘고 하지 않는 본문들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 범위도 너무 길게 잡으면 그 중 하고 싶은 것들만 할 수 있는데, 차례대로 한다면 모든 말씀이 하나님 말씀임을 굳이 입으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성도님들이 깊이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땅을 깊이 파면 지하수가 다 통하듯, 어느 본문이든 깊이 들어가면 모든 성경이 연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주성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한 권을 깊이 있게 설교하는 일이 오히려 편식하지 않고 교인들에게 좋은 꼴을 먹이는 방편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담임목사님을 통해 배운 것입니다.”

▲정한조 목사는 설교 중 ‘예화’의 일부분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체를 설명해 준다. 이에 대해 “사람들에게 원작이 주는 힘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목사님들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들어 보면 ‘그 책을 과연 읽었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읽고 핵심만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읽지 않은 분들도 많고 읽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기에 이야기를 되새겨 주면서 본문을 더 뚜렷하게 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대웅 기자

-주일 공예배 설교라는 부담을 어떻게 극복하고 계신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극복하지 못했습니다(웃음). 어떻게 극복이 되겠습니까.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30세부터 전임 사역을 시작했는데, ‘빨리 40세가 되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 때가 되면 목회나 설교가 좀 익숙해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게으르게 하겠다는 건 아니고, 조금이나마 마음 편하게 준비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40세가 되니 더욱 부담이 됐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인간의 입으로 전해야 하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인간이 인간의 말을 전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일이 얼마나 부담스럽겠습니까.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그러시겠지만, 설교 원고가 완성돼도 ‘오늘 준비가 잘됐다’고 생각이 들 때는 없습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어렵고, 더 심해지면 밤에 잠이 오질 않고, 아침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웃음). 그러나 주일 아침에 주시는 하나님 은혜로 말미암아 말씀을 전합니다.

예전에 구역장 세미나를 하면서 설교 준비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교회 내에서 회자되는 것 같은데요. 한번은 서재에서 수요 설교를 준비하는데 너무 안 풀리고 힘들어 거실로 나왔는데, 문득 주방 쪽 식탁에 간장 한 병이 보였습니다. 순간 ‘저걸 마시고 쓰러지면 오늘 설교 안 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웃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많은 분들께서 피드백을 해 주셨습니다. 특히 준비하고 전하는 일이 무척 힘들었을 때마다, 어김 없이 여러 교우들께서 문자나 메일을 통해 ‘오늘 설교가 제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노라’고 피드백을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게 그분들의 피드백이라 생각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오늘도 수고했다’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교회와 부교역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최근 부교역자 처우(주로 월급·복지) 문제가 한국교회에서 논란이 되었는데, 100주년기념교회는 ‘부교역자’라는 단어조차 쓰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교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자체가 어렵고 힘들면, 잘 해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일부의 소리는 담임목사와 격차가 커서 나오는 박탈감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담임목사가 용기를 내고 손해 볼 각오를 하면 해소되지 않을까요.

저희 교회도 기본적 호봉이 있지만,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편입니다. 저희 담임목사님은 1988년부터 전임사역을 하셨으니 일반 회사라면 봉급 차이가 많이 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것은,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고 결단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교회들도 담임목사님이 용기를 내시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100주년기념교회에서 처우보다 주목되는 것은 40-50대 부교역자들이 많은 부분인데요. 부교역자 처우가 좋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이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신대원에 수백 명과 함께 입학할 때부터 생각했던 부분인데, 일반 회사에서도 모든 입사 직원들이 다 이사가 되고 사장이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과장이나 부장을 하다가 마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목회자들을 모두 담임목사로 부르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담임목사로, 다른 분은 보통 말하는 ‘목사’로 부름받았을 수 있습니다. 전임목사로 부름받았다면, 평생 전임목사로 있는 게 맞지 않을까요. 한국교회가 점점 쇠퇴한다는데, 어떤 분은 전임목사로 은퇴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교회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교회 정관에서 은퇴에 대해 담임목사 65세, 전임목사 60세로 정해 놓은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홍성사 양화진책방에서 자신의 책들과 함께한 정한조 목사. 정 목사는 담임인 이재철 목사가 교역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부분으로 “목회자됨에 대해,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 목회자는 섬김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 달라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목회에 관해서는 최고 전문가가 돼야 하고 그런 부분에서 세밀함을 많이 강조하신다”고 했다. ⓒ이대웅 기자

-목사님은 제네바에서 담임목회를 하시다가 귀국 후 다시 전임목회를 하고 계신데, 결정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어렵지 않았습니다(웃음). 목회가 목사의 어떤 능력을 토해내는 현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르심을 따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곳으로 부르셨다면, 전임이면 어떻고 담임이면 어떤가 생각했습니다. 도시면 어떻고 농어촌이면 어떤가, 그게 기본적인 마음입니다.”

-담임목사가 오랫동안 부재하고 강단을 비워도 교회가 흔들림이 없는 것은, 성도 수준이 높아서인지요 아니면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기 때문인지요.

“저희 교회 큰 특징 중 하나가 상임위원회 제도입니다. 저희는 작년까지 일반 교우님(장로)이 상임위원장을 대행하셨고, 담임목사님은 교회의 여러 결정에 관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잘 유지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상임위원회는 장로교회로 치면 당회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소수의 장로들에게 교회의 모든 권한이 주어진 당회 구조는 권력화되고 서열화되기 쉬울 텐데, 결정 구조가 크면 클수록 투명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상임부서가 49곳 있고, 각 부서 팀장과 전임 교역자 29명, 사무장 1명까지 총 79명이 상임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매달 모여 교회의 살림을 이야기하고, 결정사항이 있으면 회의록을 만들어 운영위원인 306개 구역장들에게 메일로 발송해 구역 식구들과 나누도록 합니다. 성도님들이 구역 공부만 나오시면 교회의 모든 결정들을 다 알 수 있는 투명한 시스템이, 교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방편이 된다고 봅니다.”

-한국교회에서 100주년기념교회가 갖는 위치, 그리고 이 교회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일반적으로 교회는 구성원들을 위해 시작되지만, 저희는 그렇게 세워진 교회가 아닙니다. 1차로 한국교회 양대 성지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과 용인순교자기념관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일, 선교 100년의 정신을 계승하고 200년의 비전을 함양하는 일이 목표입니다. 저희는 그것들을 위한 길을 닦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1차로 구성원들을 섬기고, 한국교회를 섬기고, 한국 사회를 섬기는 일들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