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주최 2015 생명윤리 세미나가 ‘의료윤리 헌장들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을 주제로 28일 오후 서울 양재동 온누리교회(담임 이재훈 목사) 드림홀에서 진행됐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박상은 원장(샘병원 의료원장) 사회로 의료윤리연구회 초대 회장 이명진 원장(명이비인후과)이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고찰’,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 권오용 변호사(예인법률사무소 대표)가 ‘뉘른베르크 강령에 대한 고찰: 기독교 가치관과 의과학실험’, 이상원 교수(총신대)가 ‘제네바 선언과 현대 생명윤리’를 각각 발표했다.

이명진 원장은 의료인이 되기 전 선포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대해 “내용상 전반부는 의사와 의사 간의 계약, 후반부는 환자에 대한 의사의 다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며 “현재 사용하는 선언문은 1948년 세계의사협회에서 제정한 ‘제네바 선서’이고, 우리나라에서는 1955년 연세대에서 처음 번역·도입하여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이 원장은 “선서에는 자살약이나 낙태 처방을 하지 않겠다는 등 당시 그가 속한 그리스 의사들의 보편적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내용들이 담겨 있는데, 이는 중세 신학자들이 기독교 교리에 맞게 해석하고 수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정신은 의사 뿐 아니라 가운을 입는 성직자나 법률가 등 모든 전문직들이 함께 익히고 실천해야 할 강령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명진 원장이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그는 “특히 7단락 ‘어느 집을 방문하든지 환자를 돕기 위해 갈 것이며 고의적인 비행과 상해를 삼가고, 노예든 자유인이든 여자들이나 남자들과 성적 접촉을 삼가겠다’를 보면, 빈부 격차에 관계 없이 진료했고, 환자와 이성애·동성애 모두를 금했다”고 밝혔다.

권오용 소장은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생체실험’을 반성하며 제정된 뉘른베르크 강령을 살폈다. 당시 뉘른베르크 군법회의에 전범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의사들은 △인체가 견딜 수 있는 고도의 한계 조사를 위한 저압 실험 △체온 회복 방법 연구를 위한 냉동 실험 △말라리아 면역과 치료법 개발을 위한 말라리아균 주입 △항생제 효과 조사를 위한 세균감염과 치료제 실험 △유행성 황달, 발진티푸스, 독극물 치료를 위한 고의 감염 등의 혐의를 받았다.

이에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최종 판결에서는 ‘허용되는 의학 실험’에 대한 10가지 원칙을 세우기에 이르렀고, 이를 뉘른베르크 강령이라 부른다. 권 소장은 “단순히 의학실험 명목으로 살인죄를 범하는 것을 막는 의미라면 그 강령의 의미는 지극히 작겠지만, 그 이상으로 의학 실험 일반에 대해 한계가 있음을 규범화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는 “본질적으로 흙인 우리 육체는 영원할 수 없고, 100년 정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생명의 연장과 복지를 위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에 대해 생체실험을 했던 2차 세계대전 당시나 그 전후 비인도주의적 의과학실험은 물론, 오늘날 많은 의학윤리·생명윤리 규범이 생겨난 시점에서 행해지는 각종 의과학 실험은, 인간 생명의 의미나 본질을 넘어서는 욕심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 “뉘른베르크 강령은 전쟁 수행을 위한 지식과 기술개발 목적으로 나치에 의해 자행된 잔인한 살인과 고문, 학대행위에 대한 응징과 재발 방지 차원에서 나온 의학 실험의 한계를 정한 원칙이었으므로, 그 의미는 매우 한정적”이라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이고 완전한 존재이자 물질적·육체적 차원을 넘어 전인적 존재로서, 그 질병과 고통의 해결 및 복리를 위한 대체 방법들이나 좀 더 자연스러운 방법들을 찾아내고 개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권오용 소장은 “2차대전 이후 사회는 의과학 실험 결과에 의한 질환 극복과 복지에 만족하면서, 좀 더 나은 의과학 기술 개발을 기대하는 것이 현실이나, 우리 심령은 오히려 더욱 공허해지고 자살과 각종 사고에 의해 한꺼번에 많은 생명을 잃게 되는 허무함을 경험하고 있다”며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종전 규범 중심의 생명윤리 논의보다 좀 더 성경과 기독교 본질의 가치와 진리에 기반한 생명의 문화와 삶에 대한 연구·운동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원 교수는 앞서 언급된 제네바 선언에 대해 “선언이 스스로의 엄숙성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인간의 면전에서만 이뤄지는 활기 없는 입장 표명으로 전락하면서, 의료를 영예와 고상한 전통들에만 의존할 뿐 하나님 앞에서 책임지고 수행해야 할 것들로 여기지 않았다”며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비해 의료의 가치들은 다소 유지됐지만 핵심 본질인 ‘수직적 차원’을 상실하면서 세속화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낙타와 안락사를 특정해 거부하는 중요한 항목을 의도적으로 빼 버렸다는 것.

▲이상원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그는 “특히 제네바 선언 이후 ‘생명의 시작점과 종결점’에 관해 전통적으로 견지됐던 정의들은 계속 수정돼, 의료적 관점에서 가장 취약한 생명들인 출생 전과 직후, 임종 직전의 인간 생명들을 ‘살아 있는 인간’의 범주로부터 배제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이러한 시도가 목표하는 바는 살아 있는 건강한 사람들의 복리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이 영역에 있는 생명들을 희생시키는 의료적 조치들을 정당화시키는 것으로, 현대 생명윤리가 ‘약자의 윤리’에서 ‘강자의 윤리’로 갈아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생명의 시작점과 종결점에 대한 현대 의학의 관점들을 열거한 이 교수는 “제네바 선언서는 그 의도와 달리 세속화와 자율성 증대, 실용주의와 유물론 팽배라는 새로운 시대적 조류를 제대로 읽어내 넘어서지 못하고 끌려가는 상태에서, 오히려 히포크라테스 서약의 핵심을 간과한 채 주변적인 것들만 전수받음으로써 새로운 반생명적 관행의 문호를 열어주는 문서가 되고 말았다”고 전했다.

이상원 교수는 “기독교 생명윤리는 이 같은 제네바 선언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비판하면서, 수정이 이뤄지는 순간부터 심폐 기능이 정지될 때까지 모든 인간 생명은 영혼을 가진 살아 있는 생명이고, 신체적·정신적 능력의 정도 여부나 잔여 수명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 생명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분명히 고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더해 “특히 수정 이후 배아와 태아, 그리고 출생 직후의 유아들, 그리고 임종 직전의 중증질환자들이나 노약자·치매환자들, 혼수상태 환자들의 생명이 유물론과 공리주의와 실용주의를 지향하는 강자의 윤리에 희생되지 않도록, 약자의 윤리 입장에서 이들의 생명을 지키고 보존하는 데 헌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미나에서는 개회기도 박재형 교수(국군수도병원), 인사말 함준수 교수(신일병원), 종합토론에 엄주희 박사(연세대 법학연구원)와 김창욱 교수(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가 각각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