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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일기

존 웨슬리 | 크리스챤다이제스트 | 462쪽 | 18,000원

존 웨슬리는 영국에서 신앙부흥운동을 시작하여 현재의 감리교회 토대를 이룬 창시자이다. 성공회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난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년)는 1709년 목사관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구사일생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가리켜 ‘불 속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라고 했다.

22세에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후에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그는 ‘홀리클럽(Holy Club)’을 이끌었는데, 이 모임은 웨슬리의 지도로 경건한 삶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그들은 성경과 고전을 연구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보며, 옥스퍼드 감옥의 죄수들을 방문했다.

그의 일기에서 우리는 복음주의적 부흥을 이끈 웨슬리의 깨끗하고 경건한 삶의 모범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Susannah)를 ‘영국의 신사임당’이라고 부르고 싶다. <존 웨슬리의 일기(The Journal of John Wesley)>를 보면, 그녀는 열아홉 명의 아이 중 열 명이 살아남자, 자녀교육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였다고 한다. 일주일에 하루 저녁씩 각 아이와 따로 시간을 정해 만났는데, 목요일 저녁에는 존 웨슬리와 만났다. 아이들은 만 6세부터 일정한 시간 동안 성경과 기독교 교리를 공부했고, 아이들을 위해 직접 교과서들을 만들기도 했다.

웨슬리는 어머니의 양육 원칙을 그의 일기에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아이든지 순종하는 행동을 하거나 남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하여 마음먹고 행동했을 때는 비록 제대로 되지 않았어도 그것을 잘 받아들여 주고, 다음에는 더욱 잘하도록 사랑으로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볼 수 있다.

1738년 2월 28일 일기에서, 웨슬리는 자신의 행동에 관하여 자신이 전에 하였던 결의를 새롭게 하면서 네 가지 결의를 기록하고 있다.

첫째, 절대적으로 개방성을 띠고, 내가 대화해야 할 상대와는 조금도 숨김 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둘째, 계속해서 진지하게 노력하며 잠시라도 경박한 행동이나 웃음거리를 즐기는 일에 빠지지 않는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는 말은 전혀 하지 않는다. 특히 세상일에 관하여 말하지 않는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할지라도 나는 안 한다. 그것이 너에게 무슨 관계가 있는가?
넷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는 일은 절대로 즐기지 않는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매 순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러기에 내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없는 일은 어떤 것이라도 하지 않는다.

웨슬리는 젊은 시절 제러미 테일러,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고 윌리엄 로의 저서들에서 큰 영향을 받아 일기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의 일기는 26권으로 제본되어 보존되어 있다.

1738년 5월 24일 밤, 그 유명한 ‘존 웨슬리의 회심’ 당일 일기를 보자. 웨슬리는 친구의 강요에 의해서 마지못해 올더스게이트(Aldersgate) 거리의 한 집회에 참석했는데, 그날 누군가가 마르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9시 15분 경이 되어서,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나는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 한 분만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분이 이 죄, 아니 나 자신까지도 다 제거해 주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하여 주셨다는 그런 확신이 가득함을 느꼈다.”

이 내용을 듣고 있었던 그는 그날 저녁 마음이 뜨거워지는 불길이 임하더니, 믿음으로 용서와 의를 얻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후 웨슬리는 당시 자기 교구 밖에서 자유롭게 설교할 수 없었지만, “전 세계가 나의 교구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야외설교를 강행했다.

그는 설교에서 세 가지 메시지를 강조하였다. 첫째, 죄인은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하여 그의 대속과 부활을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 둘째, 신앙으로 의롭게 된 그는 하나님에 의하여 즉각적으로 새로운 인간이 된다. 셋째, 거듭난 인간은 곧바로 거룩한 삶의 생활로 들어간다. 성화의 과정은 인간이 하나님이 본래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하는 과정이다.

웨슬리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참된 크리스천이 될 수 있는가?”에 집중돼 있었다. 왜냐하면 성화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온전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종교개혁의 영적 유산에 충실하면서도, 복음적 회개를 통한 ‘크리스천의 완전’을 추구했다. 실천적 영성을 강조하는 그의 가르침은 영국 사람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그 결과 그의 설교는 가난한 노동자들과 하층민들에게 깊이 스며들어 갔다.

그의 일기는 끈질기고 강인한 그의 선교 활동을 보여준다. 동시에 하나님께 사로잡힌 영적 지도자의 삶을 증거한다. 특히 그의 일기는 그가 겪은 인간적인 고뇌와 시련에도 불구하고 신앙적 일편단심을 유지한 영적 거인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완전한 크리스천’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부단히 거룩함에 이르려는 ‘진정한 크리스천’의 본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1707-1788년)는 훌륭한 동역자였다. 그는 6천여 편이 넘는 찬송시를 썼는데, 특히 교리적인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많다. 그의 찬송가는 전 세계 교회의 유산이다(‘만 입이 내게 있으면’, ‘천부여 의지 없어서’ 등).

존 웨슬리의 복음운동은 큰 공헌을 했다. 그는 복음전도 활동을 통하여 18세기 영국을 피의 혁명에서 구원해 냈다. 웨슬리의 복음운동은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사회개혁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미국 대각성운동의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

/송광택 목사(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