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학술원 제23회 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류재광 기자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이 1일 오후 서울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제23회 영성포럼을 개최했다. 이양호(연세대)·김영선(협성대)·안계정(대신대) 박사가 발표했고, 안인섭(총신대)·장호광(안양대)·김성원(나사렛대)·황덕형(서울신대)·임태수(호서대)·이동영(서울성경신대) 박사가 논찬했다.

먼저 ‘칼빈의 교회 개혁과 성령’을 제목으로 발표한 이양호 박사는 “칼빈은 이사야 주석에서 ‘교회의 정화는 성령에 의해 성취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교회는 하나님의 복을 상실하는 한 말라버리고 점점 타락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부어질 때 교회는 소생하고 마침내 힘을 얻는다. 단순히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 이상으로 놀랄 만큼 성장한다’고 했다”며 “밀너의 주장을 따르면,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의 개혁은 말씀과 성령의 상관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칼빈이 당시 교회 개혁을 위해 주장했던 것들을 열거한 이 박사는 특히 “교회의 권위와 성서의 권위 사이의 관계의 문제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종교 개혁자들 사이에 있었던 가장 큰 쟁점이었다”며 “종교 개혁자들은 성서의 권위를 교회의 권위 위에 둠으로써 성서적 근거에서 교회를 개혁하려고 했다”고 했다.

그는 “칼빈은 성서의 권위를 최우위에 두었으며, 감독이나 지방 교회 회의나 세계 교회 회의의 결정은 성서에 일치할 때만 권위를 가지는 것으로 보았다”며 “요컨대 교회의 권위를 성서의 권위에 종속시켰다”고 했다.

이 박사는 또 “칼빈은 교회 수입의 ‘적어도 절반’은 가난한 자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칼빈이 ‘적어도’라는 표현을 쓴 것은 고대 교회에서는 재난 때문에 긴급한 구제가 필요할 경우 그 절반 이외에도 교회의 기물을 팔아서 구제했기 때문”이라며 “제네바에서는 집사들이 구빈원 원장직을 맡았으며, 그들은 교회 헌금 외에도 헌납된 물건을 판매한 대금 등의 수입으로 구제 활동을 해 나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밀너가 말한 것처럼 칼빈에게 있어서 말씀과 성령의 상관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말씀과 성령이 상호 작용할 때 새 질서가 나타난다는 것”이라며 “교회 개혁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말씀에 근거해서 진행해 갈 때 참된 개혁이 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서 ‘18세기 웨슬리의 교회 개혁과 성령론: 웨슬리의 교회 개혁과 성령의 역사’를 제목으로 발표한 김영선 박사는 “웨슬리의 신앙과 신학을 소생시키고, 그의 목표를 재설정하도록 한 것은 성령의 역사였으며, 웨슬리의 교회 개혁을 위한 모든 활동도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만일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웨슬리의 개혁 작업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따라서 성령의 역사는 웨슬리의 교회와 사회 개혁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됐고, 이로 인해 교회와 사회 개혁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김성원(논찬)·김영선(발표)·김영한(사회)·황덕형(논찬) 박사. ⓒ류재광 기자 

김 박사는 “웨슬리는 복음의 전 과정이 인간의 능력이나 지혜로 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임을 역설했다”며 “웨슬리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것,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히는 것을 신앙의 본질로 이해했다.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다양한 영적 현상들을 웨슬리가 중시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리를 이성적으로 승인한다 해도, 성령의 역사 없이는 그것을 마음으로 믿고 고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웨슬리의 복음운동은 성령론적 복음운동이라 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의 이웃과 사회가 교회에 대해 냉소적·비판적·부정적·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교회가 개혁의 길을 가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며 “웨슬리의 신학은 ‘교회는 항상 개혁돼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웨슬리의 성화신학의 실천적 면을 새롭게 조명한다면, 한국교회의 자기 변혁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안계정 박사는 ‘20세기 틸리케의 교회 개혁과 성령론: 귀신 들린 세상과 성령의 신학’을 제목으로 발표했다. 안 박사는 “말씀의 선포가 신학적 반성에 우선하다는 것이 틸리케가 말하는 성령의 신학의 근본 입장”이라며 “즉 말씀이 선포를 불러일으키고, 선포는 신앙을 일으킨다. 따라서 말씀과 선포가 없는 신앙이란 원리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안 박사는 “틸리케는 왜 아우슈비츠와 같은 참혹한 대재앙이 왔는가에 대해 분명한 신학적 답변을 제시했다. 그것은 귀신 들린 세상의 극단적 모습”이라며 “그렇다면 이 귀신 들린 세상은 어디서, 어떻게 왔는가? 그것은 계몽의 기획과 그 결과로서 신의 죽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럽은 다시 자신의 근거인 기독교 선포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세속화된 유럽을 향해 틸리케는 ‘다시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외롭게 외쳤다”며 “그 유명한 설교 ‘기다리는 아버지’에서,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바로 유럽 자신의 모습이며 결국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둘째 아들의 모습에서 유럽의 회복을 희망한다”고 했다.

아울러 김 박사는 “틸리케는 20세기 교회와 신학 가운데서 ‘미쳐버린 상태’를 직감했다. 신학 스스로가 성숙한 현대인과의 대화를 명분으로 신화, 전설, 상징, 신의 죽음 같은, 불분명하고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한 개념들을 생산해냈다”며 “여기에 대해 틸리케는, 신학은 인간의 시도가 아닌 하나님의 시도로서, 성령께서 선포하는 것에 근거해야 함을 역설했다. 동시에 그는 한 사람의 설교자로서 힘을 다해 말씀을 전했고, 거기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반응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성령의 역사에 집중하려는 신학이 성령의 신학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라고 역설했다.

한편 발표에 앞서 ‘교회 개혁과 성령’을 제목으로 개회사를 전한 김영한 박사는 “칼빈은 중세 성례전주의에 머물렀던 교회 의식에 성령 역사를 통해 생기를 불어넣었고, 천 년 동안 에스골 골짜기의 마른 뼈 같이 영성이 말라붙은 역사적 교회에 성령의 바람을 일으켰다”며 “그러나 그는 다른 편으로는 구체적으로 역사하는 성령의 은사를 거부하는 표명을 함으로써, 개혁교회 후예들이 성령의 구체적인 은사를 거부하도록 하는 이중성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웨슬리는 초기에 구원의 확신에 관한 깊은 신앙적 절망 속에서, 모라비안 교도들의 집회에서 루터의 로마서 주석의 서문 낭독을 읽으면서 회심을 경험한 후에는, 영국사회를 구원하고 전 세계를 선교의 무대로 다니는 성령의 사람이 됐고, 성공회 내의 부흥과 감리교를 창설하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끝으로 “틸리케는 오늘날 독일 신학자들 가운데 가장 교회정위적이고 성령의 구체적인 역사를 인정하는 신학자로서 성령론적 신학을 전개했고, 함부르크의 대표적 교회인 성 미하엘 교회에서 은퇴 후에도 정기적인 설교를 하는 등 교회의 부흥과 개혁에 힘썼다”며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들의 종교개혁적인 비판정신과 아울러 생동적인 성령 이해를 연구하고 목회와 신학에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