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5년 4월 19일
본문: 디모데후서 2:1~13
설교: 이수영 목사(새문안교회 담임)
제목: 죽으면 살고 참으면 왕 노릇 하리라

▲이수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쓴 주목적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딤후1:2)가 자기에게 맡겨진 복음의 사역을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고난을 무릅쓰고 수행하도록 용기를 주며 격려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을 시작하면서도 다시 그를 “내 아들”(본문 1절)이라 부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디모데가 바울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된 때문이기도 하고 누구보다도 그를 믿고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가 하는 일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바울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딤후1:1). 특히 이방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부르심과 세우심을 받은 사도였던 것입니다. 그런 바울을 도와 함께 사역하도록 안수를 받은 디모데였기 때문에 디모데를 사도 바울의 영적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흔히 아들이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영적 아들이 그의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하도록 영적 아버지가 주는 목회적 권면인 것입니다.

본문 1절에서 보듯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먼저 강할 것을 주문합니다. 젊은 디모데가 교회 안팎에서의 반대와 기독교에 대한 로마 제국 안에서 고조되는 박해 때문에 마음이 약해지고 위축되기 쉬운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그에게 강해져야 하고 강해질 수 있는 이유를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어떻게 강해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호의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데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것은 전지전능하신 주권자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절대적인 권능으로 구원받은 우리이기에 우리는 그 안에서 강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절대 강자에 의해 사랑받고 보호받는 사람이 강할 수 없다면 누가 강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에나 강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시며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일의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것을 알라고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디모데에게 강할 것을 주문한 사도 바울은 강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가르칩니다. 본문 2절입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영지주의를 비롯한 비성경적인 사고가 교회에 퍼져 교인들을 미혹하고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해준 순수한 복음과 건전한 교리가 충성된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고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교회 안에서 잘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입니다. 좋은 복음의 사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하면 좋은 사역자가 될 수 있는지를 좋은 병사의 비유를 들어 가르칩니다. 본문 3-4절입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좋은 병사는 자기를 병사로 모집한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병사가 병사로 복무하면서 자기 개인생활에 얽매이거나 고된 훈련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훈련이 힘들다고 기피하거나 개인생활을 자유롭게 즐길 수 없다고 불평하는 자는 군인이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가 되기 위해서는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사생활이 주님의 사역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기쁨이 아니라 주님의 기쁨을 항상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자신도 그렇게 했으니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하면 좋은 사역자가 될 수 있는지를 디모데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좋은 병사에 이어서 좋은 경기선수의 비유도 사용합니다. 본문 5절을 봅니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하는 것입니다. 병사에게는 고된 훈련을 달게 받으며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를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해야 하는 법이 있다면, 경기하는 사람에게도 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법대로 해야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기자의 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역시 고된 훈련을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규칙을 지키며 정정당당하게 경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경기를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사역도 바르게 해야 하고 끝까지 수행해야 하며 그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고난을 이겨내며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중간에 사역을 포기하거나 고난을 피하기 위하여 불법, 편법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사역자가 될 수 있는지를 디모데에게 가르치는 데 사도 바울이 세 번째로 사용하는 비유는 좋은 농부의 비유입니다. 본문 6절입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열심히 일한 농부일수록 당연히 먼저 많이 수확할 수 있듯이 복음의 사역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농부의 수고는 그야말로 피땀을 흘리는 수고입니다. 그런데 땅은 정직해서 피땀을 많이 흘리는 농부에게 그만큼 많은 곡식을 내놓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복음의 사역을 위해 많은 고난을 받으면 그만큼 큰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비유로 설명을 마친 사도 바울은 자기가 한 모든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말들에 대한 이해를 주실 것이고 그 말을 따라 행할 수 있는 지혜도 주실 것이라고 격려합니다. 본문 7절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에베소 교회를 지키며 복음을 전하고 있던 디모데에 대한 사도 바울의 염려의 주된 원인은 거짓 교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거짓 가르침의 핵심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릇된 이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기는 하나 사람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온전히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온전히 사람이시라는 것이 정통교리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8절에서 쓰기를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씨”라는 것은 그가 온전히 사람으로 태어나셨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가 참 하나님이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우리 가운데 오셨으며 당신께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그를 믿는 모든 이들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영원한 생명과 영광에로 살려내셨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 복음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더 이상 바랄 다른 것이 없으며 두려워할 그 어떤 것도 없는 것입니다. 죄인 취급을 당하며 고난을 받는 일도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그 어떤 고난도 무릅쓰고 이 놀라운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왜 자기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온갖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며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는 순간에도 감옥에 갇혀 있는지를 설명함으로써 그를 격려하려 한 것입니다. 본문 9-10절을 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9절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감옥에 갇힐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둘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자들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들의 고난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셔서 당신의 말씀이 자유롭게 널리 퍼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전도자들의 고난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바울 자신처럼 디모데도 용기를 잃지 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그로 인한 고난을 참으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격려하기 위하여 자신의 복음 사역에 힘을 주는 원천으로 제시한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곧 그의 미쁘심입니다. 본문 11-13절을 봅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미쁘신 주님께서 약속하시고 반드시 지키실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 11절에서는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합니다. 우리가 주와 함께 죽으면 그가 다시 사셨듯이 우리도 반드시 살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서 육신적으로 죽었다가 부활하게 되는 약속도 물론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하다가 죽더라도 우리에게는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있으므로 고난도 두려워하지 말고 충성을 다하라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라”는 말은 보다 영적인 의미로도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6:3-11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주님과 함께 죽는 우리에게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시는 약속이 주어져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히 복된 삶을 얻기 위해 먼저 주님과 함께 죽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미쁘신 주님께서 약속하시고 반드시 지키실 것이 또 무엇입니까? 12절을 봅니다: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가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왕 노릇 한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구원과 함께 받을 영원한 영광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28-30)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10:32-33, cf. 눅12:9)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합니다. 우리가 믿을 이는 오직 언제나 신실하신 주님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주님을 믿고 복음의 사역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3:3에서도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합니다. 고전1:9에서도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합니다. 고전10:13에서도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합니다. 살전5:24에서도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합니다. 살후3:3에서도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이 주님을 믿고 복음의 삶에 충성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미쁘신 주님의 약속,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그와 함께 왕 노릇 하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굳게 믿고 그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