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사랑하는 내 가족을 찾아서 유가족이 되고 싶다”고 외치는 그 마음을 누가 알아줄 것입니까? 세월호 사건으로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습니다. 온 국민이 함께 울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녀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무슨 말로 위로가 되겠습니까?

1년 전 세월호 사건 다음 날 한국재난구호 몇몇 임원들과 자원봉사를 위해 팽목항을 찾았습니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을 차마 볼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실종자 가족 분들은 가슴을 찢으며 울다 울다 지쳐서 탈진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어떤 말로도 위로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한 마디 “힘내세요”가 전부였습니다.

실종자 가족이 임시숙소로 쓰고 있던 텐트 앞에 간이식당을 세우고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봉사 3일째 되는 날, 한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은 너무나 지쳐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손을 붙들고 “힘내세요! 이렇게 먹지도 않고 계시면 쓰러지게 됩니다”라고, 순두부 한 그릇을 드리면서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저는 자원봉사를 위해 서울에서 온 목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어미니께서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시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럴 수가 없습니다. 저도 안산에 있는 교회의 집사입니다. 자식을 위해 40일 동안 작정기도를 했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저는 말문이 막혀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그 어머니의 모습에 당황을 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어머니께서 말을 시작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40일 작정 기도가 끝나는 날 세월호 사고가 생겼습니다. 제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 말을 듣고 저 역시도 말문이 막혀 위로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리고는 자녀의 학교생활과 가정생활 등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무랄 데 없이 아주 모범생이었고, 효자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분의 손을 붙들고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그 후 그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저를 찾아와 마음속에 있는 고통과 아픔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어느 날 제 손을 붙들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실종자 가족들과 마지막까지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약속을 해 주세요!” 울먹이며 말씀하시는 그분의 손을 붙들고, “제가 함께하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팽목항에서 5개월 동안 가족식당을 운영하면서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자녀를 확인하기 위해 시신이 인양됐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가 돌아오면서 또 울다가 지쳐 실신하는 분들은 물론, 선착장에 서서 멍하니 바다를 쳐다보는 그 부모의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새벽 2시쯤 도저히 견디다 못해 자녀가 있는 바다로 뛰어 들기 위해 달려가는 분을 붙들고 함께 울면서 가슴 아파했던 것이 벌써 1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한국재난구호의 팽목항 현장 봉사 모습. ⓒ한국재난구호 제공

정부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많은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지 않았습니다.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들이 단식을 하고, 삭발을 하며, 국토순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왜 정부는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느냐”는 항의라고 생각합니다.

1년 전에도 당국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실종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하였습니다. 단 하루도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매일 싸움으로 끝이 났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쌓여, 어떤 말도 신뢰하지 않는 상태까지 되었습니다. 그 광경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봉사자들의 마음은, 하루하루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약속을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 언약(약속)은 죽을지라도 지켜야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즉각 실행하는 의지가 필요할 것입니다.

팽목항에는 하루에도 수천 명씩 방문객들이 찾아왔습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크고 작은 교회 차량을 이용해 팽목항을 찾았습니다. 항(현장)까지는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00교회(대형버스) 차량은 실종자 가족들과 대책본부가 있는 현장까지 들어왔습니다. 차량에서 내리는 교인들의 모습이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양산을 쓰고, 미니스커트에, 화려한 화장까지…….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차림을 한 교인들이 무리를 지어서 현장을 방문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종자 가족들과 기자들이, 귀가하려고 차량에 탑승하려는 교인들 손에 실종자 가족들과 기타 봉사자들을 위해 현장에서 배급하는 각종 물품들이 들려 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란스러운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여기가 놀러 다니는 관광지입니까?” 몇몇 사람이 제게 찾아와 “교회가 다 그렇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진심으로 사죄를 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참 믿음이란 양심이 살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참 신앙이란 종합인격이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보여줘야 할 모습이다’라고.

목사로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재난 현장에서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천주교나 불교는 참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외부에 보여줬습니다. 반면 하루에도 수없는 교회와 교인들이 현장을 찾아왔지만 안 좋은 모습만 보여주었고, 주님의 참 사랑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괴로워하는 실종자 가족들(기독교인들)의 손목을 붙들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공간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공간도 없었습니다. 반면에 천주교와 불교는 좋은 자리에 기도처와 예배처를 만들어 놓고 실시간으로 예배를 드리고 불공을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인들(실종자 가족들과 봉사자들)은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가족을 잃은 한 집사님은 매일 4km나 떨어진 시골 예배당에 찾아가 기도를 하였습니다.

실종자 가족인 한 권사님은 “목사님 매일 돌아가면서 현장에서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교회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까? 다른 종교단체는 저렇게 정성을 쏟으면서 신자들을 돌봐 주는데, 기독교는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우리들에게 물품을 후원하고 돈을 기부하는 것보다, 함께 기도할 수 있고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목사로서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한국교회가 하나가 되어 이럴 때 한 창구를 만들어, 흩어져 있는 교회의 힘을 모아 한국교회를 세워갈 수 있도록 화합의 힘을 주십시오!’

세월호 사건은 1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아쉬움을 남긴 사건이었습니다. 이제는 교회도 대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섬겨 주신 것처럼, 아낌없이 섬기는 자세를 통해 복음이 전달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참 사랑이 전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