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 소장(선교신학연구소). ⓒ크리스천투데이 DB

서론

이 논문 ‘한국인의 생사관’은 생물학적 또는 과학적 입장에서 다룬 것이 아니라, 한국 전통문화의 핵심이었던 샤머니즘과, 과거 1000년간 국가 종교였던 불교, 조선의 유교사상과, 현재 약 25%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 사상 가운데 발견한 것이다. 이를 위해 필연적으로 이들의 세계관과 인간관도 논해야 한다.

샤머니즘의 생사관은 먼저 고대신화에 간직된, 민족의 전통적 사상을 분석함으로써 얻게 된다. 샤머니즘 안에는 가장 오래된 동양의 종교철학인 주역 사상과, 건국 신화들이 지니고 있는 세계관 또는 인간관이 들어 있다.

무교에는 고차원적 세계관은 없지만, 고대부터 주역이 설명하는 것처럼 음양결합 또는 양성(남녀)합일의 원리를 따라 천지와 인간 또는 국왕이 출생됨을 설명한다. 즉, 한국인의 가장 오래된 생사관은 혼인하고 출산하는 원리에 의해 설명된 출산신앙적 건국신화, 사령숭배나 단군신화 등에서 나타나는 무속적 ‘영혼불멸신앙’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영혼불멸신앙과 사후귀신신앙이 기독교 이단들의 핵심사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서, 전통사상의 강력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한국 기독교 이단으로 국제화되고 가장 문서가 많이 공개된 통일교의 교리를 분석해, 자칭 기독교라고 주장하는 혼합주의 이단 속에 남아 있는 전통적인 생사관을 꺼내고자 한다.

가장 장기간 한국인의 국가 종교로 머물러 있던 불교의 목표는 해탈과 무심(無心)이며, 다시는 생명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도달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신자들은 대승불교의 현세적 기복신앙과 극락환생에 더 관심을 갖는다. 그들의 생사관은 무속문화와 혼합된 불교의 윤회론적 영혼불멸신앙에서 발견하게 된다.

조선시대 유교의 생사관에 관한 분명한 이해를 위해서는, 유교의 세계관과 신관을 아울러 파악해야 한다. 유교의 세계관은 경전인 역경의 설명과 같이 음양합일의 원리에 기초한다. 공자의 역경 주석에 의하면 만물은 태극에서 생(生)했다고 한다. 유가는 창조물을 절대자에게서 출산된(生한) “자녀들”로 설명하고 있다.

조선을 지배한 신유교인 성리학(性理學)은 태극을 이(理)라고, 음과 양을 기(氣)라고 생각했다. 기는 확장되기도 축소되기도 하며, 뭉치면 만물이 살아나고, 흩어지면 만물이 사라진다고 여겼다. 즉 인간은 기의 형체이거나 변형물이라는 말이다.

성리학은 일단 흩어진 기는 다시 모여 사물(귀신)이 되지 못한다는, 무신론 내지 반영혼불멸론의 입장을 취한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천(天)으로 돌아가고 백은 지(地)로 돌아가 혼백이 산화되어 일원기(一元氣)로 돌아감으로써, 고유성이나 개체성은 더 이상 존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산화론은 무속신앙과 결합되어, 산화된 기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조상 제사를 통해 죽은 자의 현재를 경험하는 강신신앙(spiritism)으로 발전하였다. 유자들은 원한이 맺혀 죽거나 흉사의 경우엔 혼이 산화되지 않고 한동안 요괴가 되어 ‘신적 작용’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성리학은 사령(死靈)이 근원자로 돌아가 원기(元氣)가 되고, 기(氣)가 산화될지라도 오히려 이(理)는 없어지지 않으므로 지성으로 제사를 지내면 그 제물을 흠향할 수 있다는 무속신앙(spiritism)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이 신유교적 ‘영혼산화론’은 샤머니즘의 귀신신앙과 혼합되어 그들의 상·제례에서 귀신이 숭배되고, 조상 제사를 효(孝)라 하여 국민윤리의 원천이 되게 하였다.

기독교 복음이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에 전달된 후, 삼위일체 신(神) 개념으로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 개념으로 ‘聖靈’이 토착화되었다. 그러나 한국 재래 종교들의 개념으로는 성령이 상제, 신, 천(天), 영(靈), 귀신, 신령, 마음 등으로 혼동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은 이단 사상에 의해 무교적 귀신 또는 신령으로 왜곡되기 쉽고, 사탄의 졸개인 마귀들은 ‘귀신들’로 번역되면서 죽은 사람의 혼으로 오해되기 쉽다.

이러한 전통에 의해 기독교의 인간관과 생사관이 이단적으로 왜곡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왜곡 속에 재래적 인간관과 생사관이 잠재해 있는 것이다.

I. 샤머니즘의 생사관

전통적으로 가장 원시적 종교인 샤머니즘은 다신신앙과 최고신앙은 있었으나,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관해서는 추상해 보거나 전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샤머니즘은 한국에서 건국 신화들을 만들었지만, 창조신화 같은 것은 만들어 내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재래 고등종교들 사상에도 창조주와 피조물의 전제가 없거니와, 구원하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현재적·종말적 통치에 대한 개념도 없다. 그러므로 샤머니즘의 생사관은 사령숭배와 관련된 영혼불멸신앙과 불가지론적 내세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단군신화의 생사관

한국인의 가장 오래된 생사관은 단군신화에서 발견된다. 단군신화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에 최초로 기록된 ‘한국 민족의 건국 신화’로서, 한국 고대의 생사관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한국의 원시종교는 중국의 원시종교처럼 무교였고, 단군신화는 한국의 고유한 사상과 신앙에 의하여 형성된 신화로서, 불교와 유교의 종교철학적 영향을 받기 전 교리가 서지 못했던 원시적 신앙을 그대고 보존하고 있다.

고대 한국의 생사관은 신관과 연결해 이해되는데, 무교가 고대부터 시조를 신적 존재로 숭배하였기 때문이다. 단군신화는 이 땅에 하강한 하나의 신적 존재와 인간 내지 짐승의 결합에 의해 태어난 한 시조의 신적인 혈통과, 민족이 신적인 후예임을 설명하고 있다.

땅의 존재와 결합하여 자녀를 번식하는, 하늘에서 하강한 신에 대한 관념은 고대 중국의 무교사회에서 형성된 주역의 음양조화사상과 병행되는 신관과 인간관을 내포하고 있다. 이 단군신화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특징은, 신이 인간이나 짐승처럼 결혼하고 출산하는 모티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혼인-출산’ 모티브는 고대의 출산신앙(Fertility Cult)의 본질이다.

또 단군 신화는 시조 단군이 영원한 산신이 됐다고 전한다. 이렇게 단군신화는 단군의 불사(不死) 내지 신선 신앙으로 오늘날까지 단군숭배, 산신숭배, 조상숭배 등의 무교적 원시 종교 신앙을 고수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단군신화에서 나타나는 무교의 인간관은, 혈통적인 관계로서의 신인동격사상을 나타낸다(analogia entis). 단군신화는 현세에서 불로불사를 추구하는 생사관을 보이고 있다.

2. 샤머니즘의 종교적 체험과 생사관

샤머니즘의 생사관은 무교의 종교체험에서 형성됐다. 무교는 단순한 이론도 교리도 체계화하지 못했으나 종교체험에 근거한 활력 있는 종교이며, 죽은 영혼들이 귀신이 됨을 전제한다. 무교의 종교적 체험으로는 먼저 무당의 입무 과정에서 경험되는 신비체험을 간과할 수 없다.

유동식 교수가 연구한 것처럼 신비체험 없는 ‘배운 무당’ 또는 ‘습득 무당’은 진실한 무당이라 볼 수 없고, 참 무당이란 무병을 앓고 나서 강신을 체험하고 그 후 자유롭게 강신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입무 과정에서 나타나는 무병과 의례(굿) 행사에서 나타나는 무당의 접신 형태에는 두 가지 신비 현상이 있다. 하나는 엘리아데(Mircea Eliade)가 북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도처의 샤머니즘을 연구하며 수집한 신비체험으로, 사람의 영혼이 타계하게 되는 것과 또 하나는 한국 무당들이 흔히 체험하는 강신 현상이다.

마찬가지로 유동식·최길성 박사 같은 무속 연구가들은, 무당이 되는 첫 단계가 그 소명을 증명하는 무병임을 밝혔다. 이 병의 증세는 엘리아데가 지적한 것처럼 정신병이나 히스테리 내지 간질병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데 무병이 정신병이나 간질병과 다른 점은 굿을 하고 무업을 시작하면 그 병이 치료되는 점이며, 또 계획적으로 실신 상태 내지 접신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무당들의 신비체험은 공포와 혼돈과 함께 겪는 죽음의 상태와 재생의 체험이다. 신과의 교제가 그리스도인들이 체험하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롬 14:17)이 아니라, 귀신에게 사로잡히고 짓밟히는 무서운 고통이다.

무당은 이러한 무병을 통해서 성립되며, 귀신이 그에게 내려 강요함으로 두려워 무당이 되게 하는 것이다. 무당은 귀신을 초청하고 귀신과 교제하며 굿을 하고 공수를 주며 귀신을 찬양하는 타령을 부른다. 샤머니즘은 이러한 무속신앙적 체험으로 말미암아 전통적으로 확고한 영혼불멸신앙과 귀신신앙을 전승하게 되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