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이민교 선교사. ⓒ손짓사랑 제공

뿌리 깊은 원불교 가정에서 태어나 법당에서 목탁을 두드리던 이민교 선교사. 뼛속까지 불교의 교리로 꽉 차 있었던 그는 염불하는 대신 찬양을 부르고, 축구공 하나로 온 세상에 복음의 슛을 쏘는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되었다.

최근 출간된 이 선교사의 <하나님이 보낸 사람>에는 소록도에서 부처를 전하던 ‘원불교 신자’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농아축구팀 국가대표 감독으로 활동하며 스포츠 선교사로 사역한, 그의 독특한 신앙 여정이 담겨 있다. 현재 북한 농아축구단의 감독을 맡고 있는 이 선교사는, 17일 오전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농아인들이 축구로 교류하면서 남북 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민교 선교사. ⓒ손짓사랑 제공

이민교 선교사는 원불교 정녀(貞女)인 누나의 권유로 소록도를 방문하게 된다. 그는 소록도에서 ‘원불교 전도사’를 자임하며 한센병 환자들에게 “전생의 죄 때문에 병에 걸린 것”이라며 “다음 생에 건강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부처의 가르침을 잘 따라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예수를 모르는 그를 불쌍히 여겼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행복합니다. 스님, 예수 믿으세요.”

그리고 7년 후, 평소처럼 새벽 4시에 일어나 소록도 법당에서 염불하던 그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염불을 외던 그의 입에서 한센인의 장례식 때마다 들었던 ‘며칠 후…’ 찬송이 방언과 함께 터져 나온 것. 멈추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한두 시간이 넘도록 몸부림을 치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얼굴이 콧물과 침으로 범벅이 돼 엉망이었다. 강권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것이다.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러 간 소록도에서, 오히려 한센병자들이 나에게 예수를 전염시켜 주었습니다. 한센병은 보통 7년의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저는 소록도에 첫발을 내디딘 지 7년이 되던 어느 날 임신(姙神), 즉 신이 임했습니다. 하늘의 신인 성령님이 나에게 찾아와 주신 거죠.”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된 그는, 광야 훈련을 거쳐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다. 그는 목사(牧師)를 ‘목사’(木死)로 해석한다. 

“목사(牧師)는 원래 양을 치는 사람, 즉 사람을 양육하고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저는 나무 목(木)자를 써서 십자가(十)를 사람(人)이 짊어지고 가는 형상을 상상했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는 자가 ‘목사’(木死)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목자는 계급장이 아닌 양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삶이 살아 있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이 선교사는 이후 1997년 GP선교회 선교사로, 약사였던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농아(聾啞)들을 상대로 선교하며 교회를 개척했다. 그는 농아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해결의 실마리를 축구공에서 찾았고, 그들과 함께 공을 차고 놀다 아마추어에 불과한 축구 경험을 살려 농아축구팀을 조직했다. 

그는 3년 만에 30여 명의 선수를 길러 2000년 농아인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까지 따는 실력을 보여줬으며, 2005년 카자흐스탄으로 임지를 옮긴 뒤 역시 농아인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아 2008년 농아인 아시안게임에서도 동메달을 땄다. 카자흐스탄 감독으로서의 그의 임기는 2015년까지다.

북한 농아축구팀 감독이기도 한 그는 2012년 12월 3일 푸른나무 해외협력본부장 자격으로 세계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게 된 이후로, 북한 농아축구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북한을 다녀오며 ‘북위 38도선으로 남과 북이 나뉘어 단절된 우리나라가 바로 그 38년 된 병자가 아닐까’하는 의문이 그를 따라다녔다.

“저는 대한민국이 38선이라는 허리신경이 마비된 장애 국가라고, 땅덩어리 자체를 장애인처럼 인식했어요. 중풍병자는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사람이지요. 그렇게 소통이 안 되는데 한의사의 침을 맞으면 혈이 뚫려서 건강이 회복되는 것처럼,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신 예수님 말씀과 같이 장애인들이 통일을 향해서 침과 같은 도구로 사용된다면 제가 그렇게 쓰임받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 | 이민교 | 넥서스CROSS.

그리고 1년 후, 이 선교사는 2013년 10월 18일 평양에서 조선장애자보호연맹중앙위원회 장애인체육협회 관계자들과 만나 북한 최초의 농아축구팀을 만들기로 합의했고, 2016년까지 3년 동안 북한 농아축구팀 감독을 맡게 됐다. 북한 내 장애인은 약 175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는 “통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다섯 가지(통일금식, 통일예배, 통일성경, 통일저금통, 통일독립군) 실천사항을 제시하기도 했다.

“38선으로 나뉜 장애 국가를 건강한 나라, 하나된 나라로 회복시키는 일에 쓰임받고 싶습니다. 장애인들과 함께 ‘용서의 사람 요셉’의 마음을 품고,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던지며 통일 한국을 이루고 싶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막힌 동맥을 뚫어, 북한에 두고 온 반쪽 심장 때문에 거친 숨을 몰아쉬지 않고 위에서 오는 평안의 하늘 숨을 쉬는 그 날이 통일한국의 때임을 가슴에서 느낄 수 있도록,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행동하는 통일연습을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