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한국구약학회(회장 차준희 교수) 제98차 춘계학술대회가 17일 서울신학대학교(총장 유석성 박사) 100주년기념관에서 ‘한국의 구약학’을 주제로 개최됐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서명수 교수(협성대)가 ‘한국의 구약학: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주제발표했다. 그는 “자연과학이 아닌 인문학 연구는 불가피하게 어느 정도 문화적·풍토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는 성서학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며 “성서 본문 자체가 넓게는 고대 중동, 작게는 고대 팔레스틴 지역의 정치와 종교, 사회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에 관한 충분한 고려와 고찰이 필수적”이라고 전제했다.

서 교수는 “교회사적·성서해석사적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살펴볼 때, 기독교 교리사는 성서해석사와 궤를 같이한다”며 초대교회 교부들과 종교개혁 당시 개신교 스콜라학파, 이후 주도권을 잡은 유럽 학자들의 성서해석과 최근 미국의 올브라이트학파 등을 언급한 후, “이제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학문적 성서 해석의 역사가 채 100년도 되지 않는 가운데 그 독자성과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는 좀 이를 수 있지만, 한국 성서학자들의 양과 질을 고려해볼 때 이제 논의의 불을 지필 단계는 충분히 됐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이후에는 박종수의 <히브리 설화 연구: 한국인의 문화통전적 성서이해(1995)>, 박정세의 <성서와 한국 민담의 비교 연구(1996)>, 박신배의 <태극신학과 한국 문화(2009)>, 정중호의 <새로운 성경해석 한국적 해석 서론(2010)>, 왕대일의 <기독교 경학과 한국인을 위한 성서해석(2012)> 등 ‘한국적 성서 해석’을 시도했던 기존 연구들에 대해 간략히 개관하면서, “저서 중심으로 살펴본 이상의 연구들 외에도 넓은 의미의 한국적 성서학(구약학) 가능성을 모색한 연구들은 감리교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토착화 신학과 1970-80년대 민중신학, 최근의 문화신학자들 등 다수 존재한다”고 소개했다.

▲서명수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한국적 구약학 연구를 위해 고려해 볼 만한 주제와 영역들’로는 5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원형적 심성의 관점에서 본 고대 이스라엘인과 한국인’이다. 서 교수는 “‘한국적 구약학’의 관심 대상을 질문하기 위해 먼저 ‘한국인의 원형적 심성’을 언급하고 싶다”며 ‘은근과 끈기’, ‘경천애인(敬天愛人)’, ‘한(恨)’, ‘한얼’, ‘원융(圓融)’, ‘포월(包越)’, ‘해학(諧謔)’, ‘정성(精誠)’ 등을 제시했다. 이들 중 ‘경천애인’과 ‘한’ 등은 고대 이스라엘인의 심성과 비교할 수 있고, 이는 한국적 구약학의 심층을 더욱 깊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로 ‘고대 이스라엘인과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을 지배하는 바탕 찾기’이다. 그는 “한국 종교문화의 특징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 중동이나 유럽을 포함한 서구 지역의 종교문화와 사뭇 달리,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전 무속(巫俗)이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며 “이후 무속의 토대 위에 불교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종교문화를 형성했고, 조선시대에는 유교문화가,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기독교가 또 하나의 종교문화층으로 자리잡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종교문화는 이처럼 서양의 ‘대체’가 아니라, 양파와 같은 ‘겹’의 문화로 상호성과 진화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며 “이러한 특징과 전통 위에서, 우리와 사뭇 달라 보이는 히브리 종교문화의 백미인 구약성경을 한국적 또는 한국 기독교적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성서문화 해석학 차원에서 해명하는 것도 한 탐구영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종교문화의 바탕인 샤머니즘과 히브리 종교문화의 바탕인 야위즘(Yahwism)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 포용성과 배타성을 비교하면서 그 사이(between)의 의미를 추구한다면, 그 역시 한국적 구약학의 한 가로축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구약학회에서 해외석학 초청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세 번째는 ‘강대국의 영향과 약소국의 자기정체성 -수용과 저항의 역사’이다. 그는 “둘 다 약소국인 한민족과 고대 히브리민족의 역사는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며 “비슷한 역사의 틀 안에서 지난한 생존의 길을 걸어온 한국인은 그 중심으로 무엇을 형성해냈고 어떤 정신성을 중심으로 삼아왔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간문화적 성찰은 구약 연구자들의 사유의 지평을 넓혀줄 뿐 아니라 한국적 구약학의 가능성을 향한 심층적 탐구의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전했다.

이 외에 넷째로 일제강점기의 성서해석·설교 경향·저항운동과 히브리 예언자들의 저항의 영성을 비교해 보고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제와 분단국가의 현실 및 역사인식 등을 히브리인들의 그것과 대조해 보는 ‘탈식민주의적 연구’와, 다섯째로 넓은 의미의 ‘한국인의 성서해석에 대한 연구’ 등을 제시했다.

서명수 교수는 “다산 정약용은 일찍이 경전 해석에 있어 자국의 정신과 상황에 맞는 연구와 해석보다는 중국인의 그것을 더 중시하는 ‘무원홀근(務遠忽近)’의 풍조에 대해 통탄한 바 있듯, 우리는 그 동안 너무 서구적인 것에 경도된 나머지 한국적인 것의 발견과 개발에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며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적 구약학의 맹아(萌芽)가 몇몇 연구자들의 묘판에서 이미 싹트고 있었던 점이고, 이제 그 싹이 보다 튼실하게 줄기로 자라고 가지를 뻗을 수 있도록 꾸준히 학문적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미하엘 벨커 교수(왼쪽)가 학회에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학술대회에서는 이 외에도 14차례의 논문 발표와 왕대일 교수(감신대)의 ‘한국적 구약학의 가능성을 위한 모색’ 주제발표가 진행됐다. 앞서 해외석학 초청강연으로 마크 해밀턴 교수(美 텍사스 애벌린기독대학교)가 ‘Some Thoughts on Psalms 93-100(시편 93-100편 소고)’를 제목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개회예배에서는 수석부회장 이희학 교수(목원대) 사회로 유석성 총장이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마 5:9)’을 제목으로 설교했으며, 방한 중인 미하엘 벨커 명예교수(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가 인사했다.

이번 한국구약학회 제98차 춘계학술대회는, 2016년 SBL International(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세계성서학회) 서울대회 분과 구성을 위한 준비모임 성격으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