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5년 4월 12일
본문: 딤후1:1~14
설교: 이수영 목사(새문안교회 담임)
제목: 복음과 함께 받을 고난

▲이수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그의 젊은 동역자이고 보조자였던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의 머리 부분입니다. 디모데후서는 신약성경에 실린 순서로는 바울서신들 중 마지막이 아니지만 실제로 그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두 번째로 투옥되었을 때 옥중에서 쓴 것입니다. 그는 거기서 아직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가 머지않아 처형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편지 속에서 마지막으로 디모데에게 목회의 권면과 격려를 한 것입니다. 유언과 같은 마지막 서신이었기에 사도 바울은 그 한 마디 한 마디 글에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 대한 그의 애정을 담아 썼을 것입니다. 그리고 디모데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깊은 의미를 담아 읽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 개인에게 한 편지이기는 하나 그것이 목회서신이라는 것은 결국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신앙의 가르침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가장 위대했던 사도가 훗날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남긴 글로 이 편지를 받아들이며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담긴 깊은 의미를 깨달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 1-2절은 사도 바울이 편지 쓸 때 일반적으로 앞에 붙이는 인사말로 쓴 글이지만 우리가 유의해볼 만합니다. 그는 먼저 1절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이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사도로서의 자의식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가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가 사도가 된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선포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2절에서는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이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며, 그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공히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참되고 영원한 생명이 있음과,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베푸심을 알고 믿고 모든 사람에게 전하며 증언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에게 생명보다 더 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평강이 없는 생명은 생명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평강이란 안팎으로 싸움이 없고 불안과 근심이 없으며 사랑과 만족과 기쁨이 있는 지속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그런 평강을 우리의 힘으로는 만들 수도 누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에 살게 하시며 그런 평강을 누리게 하셨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범함으로써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평강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평강의 근원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인데 그것이 깨졌고 연이어 사람들 사이의 올바른 관계도 파괴됨으로써 평강은 사람에게서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생명도 영원한 생명도 없는 삶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과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우리 인간에게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사실을, 그 진리를 우리는 널리, 모든 사람에게 알려야 합니다. 디모데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한 사도 바울의 기원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다시 편지한 주목적은 그가 복음의 사역을 수행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를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 세우실 때 주신 은사를 최대한 발휘하여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고난을 무릅쓰고 그가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도록 용기를 주며 격려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6절에서 사도 바울은 쓰기를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합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가 안수 받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은사를 더욱 크게 발휘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그를 격려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에서 안팎으로 반대와 도전에 부딪칠 때 두려워하거나 위축되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이 글을 썼을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이단적 교리가 파급되는 것도 염려되고 로마에서 점점 더 격해지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끼칠 영향도 걱정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복음의 일꾼으로 세우실 때는 그 일을 감당할 능력을 그에게 주셨음을 상기시키며 그 은사의 불이 약해지지 않도록 불을 활활 붙이라고 충고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본문 7-8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7절에서는 디모데가 목회하면서 사용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은사가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능력”이라 한 것은 에베소 교회에서 부딪치는 반대자들을 두려움 없이 대할 수 있는 담대함을 말합니다. “사랑”은 아주 고약한 반대자들까지도 참고 견딜 수 있음을 말합니다. “절제하는 마음”이란 반대자들을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단호하게 대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잘 통제할 수 있는 지혜를 가리킵니다. 디모데가 그런 은사들을 받았으니 그 은사들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권고한 것입니다.
8절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다 단호한 권면을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셨으니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디모데후서를 쓴 때는 네로가 로마제국의 황제였을 때이며 기독교에 대한 그의 박해가 절정에 이르렀을 즈음입니다. 복음을 따르는 것은 고난을 초래하는 일이었을 때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르는 디모데에게 사도 바울이 가르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음으로 구원하실 때는 그 복음을 전하고 증언하는 거룩한 사명을 함께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는 일은 우리의 뜻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가지신 뜻에 따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런 뜻으로 쓴 것이 본문 9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자신의 소명에 대한 이해를 밝히고 있음을 봅니다. 첫째는,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소명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기에 거룩한 소명인 것입니다. 둘째는, 자기가 소명을 받은 것은 자기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가 될 만한 무슨 자격이나 공로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복음을 전하며 고난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 안에 있었던 뜻대로 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 또한 우리가 죄를 범하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책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즉 사람을 창조하시기도 전에 이미 갖고 계셨던 뜻이고 계획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 자신이나 디모데에게 있어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거룩한 소명에 두려움 없이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디모데를 그가 받은 소명에로 강하게 내몬 사도 바울은 그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말을 씁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사망을 폐하셨다”는 것은 사망의 권세를 폐하셨다는 뜻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승리를 거두셨으니 그의 일을 하며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봅니다. 본문 11-14절입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과 그로 인한 고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이단적인 교리에 맞서 바른 교리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끝까지 함께하시며 지켜주실 것을 굳게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에게 복음을 알려주시고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받은 우리는 또한 그로 인한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복음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하고 이 세상은 악해서 그를 미워하며 그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며 거부할 뿐 아니라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도 미워하고 거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간다는 것은 그처럼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 시대의 박해와 같은 박해를 당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곧 쉬운 일로 여겨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크고 작은 고난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갈수록 더 악해지고 불의해지며 부정부패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부전부패가 고위공직자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편만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선하고 정의롭고 깨끗하게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경제상황이 안 좋으니까 부정부패는 더 뿌리가 깊어지며 일반화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정직하고 청렴하게 살기가 어려워집니다. 정직하고 정의롭게 정도를 지키며 살려고 하면 되는 일이 없고 비아냥거림과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중상모략과 부당한 불이익을 받기도 합니다. 그것을 끝까지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 고난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세상의 압력에 굴복하거나 적당히 타협할 수 없으니 마음고생이 큽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을 받은 이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세상의 제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 백성이 세상 사람들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일찍이 디모데에게 권면하기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했고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지키라 했으며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줄을 확실히 믿으라 했습니다. 그 권면을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것으로 들어야 하겠습니다. 복음을 받은 우리가 바른 믿음의 삶 때문에 겪게 되는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붙잡히시기에 앞서 마지막 긴 기도(요한복음 17장 전체)를 드리시기 바로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그리고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의와 진리의 필연적인 승리를 확증해주셨습니다. 부활신앙으로 복음을 위한 우리의 삶에서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내며 날마다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