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수 목사(꿈너머꿈교회 담임, 한국기독교장례문화연구원 원장, 행복한가정평생교육원 원장).

1984년 12월 9일은 내 삶의 방향을 바꾼 아주 중요한 날이기에 잊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나름 잘 살다가 주의 일을 하겠다고 결단하여, 서울 사당동에 개척을 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20년을 보내면서, 개척교회의 잊을 수 없는 많은 사연들이 있었습니다. 그 눈물들은 모두가 은혜였고 감사였으며 아름다운 간증들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2004년 12월 첫 주, 개척 20년의 교회를 뒤로하고, 안양으로 초빙받아 임지를 옮겼습니다. 거기에서 또 성도들의 회복으로 놀라운 변화와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다시 안타까움과 아쉬움의 눈물들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주의 길, 주님이 가신 길이기에, 억울해도 묵묵히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목회의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온갖 시련과 아픔들이, 목사인 나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성도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2011년 신도시 동탄으로 다시 교회를 개척하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지금 여기에 와 있습니다. 주님의 인도와 일하심을 기대했고, 이곳에서 주님이 예비하신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예비된 그들과 사랑을 나누면서 귀하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꿈이 있어 행복하고, 우리 함께 있어 행복한 꿈의 가족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포기할 수 없는 파란 꿈을 바라보며, 우리의 꿈을 계속 펼쳐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사람들과의 만남이고, 목회란 그 사람들 속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쓰라린 아픔을 나누는 것입니다. 어떤 역경에서도 주님이 계시기에 바울처럼 기쁨으로 사명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어느덧 목회 3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랑하는 교인들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고백하며 편지를 썼고, 또 보내온 메일들을 모았습니다. 하나하나의 일들과 그 순간들을 보니 정말 행복한 목사였던 것을 느끼고 알 수 있었습니다. 이에 책을 만들었고, 그 제목이 ‘나행목’입니다. ‘나는 행복한 목사’라는 말입니다.

얼마 전에는 감리교회 경기연회 부흥단 단장으로 취임을 하였습니다. 이에 그 감회가 더욱 새로웠고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날에 저를 힘들게 했던 목사가 불가피하게 함께 참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은 참 재미있어서 말 그대로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제대로 고개를 들 수 없었던지, 보기에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리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 이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되시어서 이렇게 인도하셨고, 푸른 초장에서 멋지게 목회를 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5) 말씀처럼 엄청난 어려움과 아픔, 중상모략의 고난과 역경, 권모술수로 죽이려는 그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주님은 함께하셨습니다. 또 지키시며 안위로 평안케 하셨고 능히 감당케 하셨던 것입니다.

결정적인 말씀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 말씀 그대로 되었고 이루어졌습니다. 비록 원수(?)들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그의 목전에서 복된 상을 베풀고 있었습니다. 보란 듯이 풍성한 상을 베풀며, 섬기는 신실한 교인들과 멋진 부흥된 교회의 모습을 그들에게 보이는 시간이었습니다. 목사를 신뢰하며, 그 어떤 시련에서도 함께하며, 또 지금도 계속 일하는 그 멋진 광경을 보며, 나 또한 목회의 참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상을 베풀고 또 나행목을 선물로 줄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말씀은 진리이며 그대로 이루어지기에, 오늘도 주의 길을 즐겁게 또 간증하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나행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