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하석수 기자

한국교회사학회와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가 28일 오전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내게 천 개의 목숨이 있다면: 양화진 선교사들의 삶과 사상”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상규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이날 세미나에서 ‘근대선교운동과 내한 선교사들’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이상규 교수(고신대)는 “알렌에 이어 1885년 4월 5일에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5월 1일에는 북감리회의 스크랜턴, 6월 21일에는 북장로교의 헤론 의사 등 장·감(장로교·감리교) 선교사들이 내한하게 되는데, 초기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한 교회는 미국의 북장로교(1884)와 북감리회(1885), 호주장로교(1889), 침례교(1889), 성공회(1890), 미국 남장로교(1892)와 남감리교(1896), 캐나다 장로교회(1898) 등이었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장로교와 감리교 외에도 미국 침례교 계통의 엘라딩기념선교회(Ella Thing MemorialMission)는 폴링(E. C. Pauling), 가들라인(A. Gadelinre) 등을 파송하여 부산·공주 등지에서 활동했으나, 재정난으로 1900년 중단하였다”며 “이 선교회의 사업은 1889년부터 독립선교사로 활동하던 캐나다 출신 펜윅(Fenwick)에게 이양되었고, 펜윅은 1906년 대한기독교회라는 독자적인 교회 조직을 갖추고 선교사역을 계속하였다. 대한기독교회는 후일 동아기독교(東亞基督敎)로 개칭되었고, 해방 후 침례교회의 모체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성결교는 1907년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한국성결교회의 모체는 카우만(Charles E. Cowman)과 길보른(Ernest A. Kilbourne)에 의해 창립된 동양선교회(東洋宣敎會, Oriental Missionary Society)였다”며 “이들에 의해 동양선교회가 1905년 11월 일본에 조직되었고, 동경에 성서학원을 설립하여 전도자를 양성했다. 여기서 교육받은 한국인 김상준(金相濬)·정빈(鄭彬)이 1907년 귀국하여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설립했는데 이것이 성결교회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또 “구세군은 1908년 10월 1일 호가드(R. Hoggard)의 내한으로 시작되었다”며 “그 외에도 여러 교파가 한국에서 선교사업을 개시하였고, 선교사들이 입국하게 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해방 전 내한 선교사 중, 교파적으로는 장로교가 652명으로 전체의 44.5%에 해당하고, 국적별로는 미국이 69.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미국교회, 그 중에서도 장로교회가 한국선교에 주도적인 교파였음을 보여준다”며 “이 점은 미국 선교사들이 한말 혹은 개항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 한미관계의 형성, 미국의 대한정책, 독립운동, 혹은 미국적 가치의 전수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 교수는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의 선교활동, 각종 보고서나 사진·영상자료 등 기록물은 미국을 비롯한 외부인들의 한국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며 “이런 점에서 내한 선교사들은 한미관계 형성의 가교자 역할을 감당했고, 선교사들의 전도·교육·의료활동, 선교사들을 매개로 한 서구적 가치의 전파는 근대한국의 형성에도 적지 않는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주목할 사실은 다수의 내한 선교사들은 19세기 이후 국제적인 복음주의 부흥운동과 함께 학생운동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라는 점”이라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학생자원운동(SVM)과 그 유관 학생단체의 영향으로 내한했다는 점이다. 1880년대 말 북미의 대학생 사이에서 학생자원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해외선교에 대한 책임이 강조되었다”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온 대부분의 북미·호주 선교사들은 SVM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해외선교라는 과제를 배경을 설립된 메코믹신학교 출신 선교사들이나 게일 등이 대표적인 경우”라며 “학생자원운동은 캐나다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1887년에는 학생자원운동의 지도자들이 캐나다를 방문하기도 했는데, 게일은 이런 선교운동의 영향 하에서 토론토대학 청년연합회(YMCA)에 해외 선교를 지원하였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호주의 경우도 동일했다. SVM은 호주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학생운동 출신 선교 헌신자들이 한국선교에 기여하였다”며 “이 점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연구가 수행되었다. 이렇게 볼 때 무디(D. L.Moody), 아더 피어슨(Arthur Pierson), 존 모트(John Mott) 등은 북미와 호주 등 젊은 청년들의 선교 자원 및 내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상규 교수 외에도 이은선 교수(안양대)가 ‘언더우드의 선교사역: 에큐메니즘을 중심으로’를, 오진원 교수(침신대)가 ‘아펜젤러의 생애와 사상: 그의 삶의 전환점을 중심으로’를, 이영식 교수(총신대)가 ‘올리버 알 에비슨의 삶과 한국에서의 선교활동’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총평은 안교성 교수(장신대)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