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5년 3월 22일
본문: 고린도전서 2:1~5
설교: 김병삼 목사(만나교회 담임)
제목: 선교가 주는 유익-하나님의 소원을 아는 것

▲김병삼 목사(만나교회)

[고린도전서 2장 1-5절]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하나님의 소원
오늘 말씀의 주제는 ‘선교’입니다. 그리고 이 주제에 알맞은 제목을 찾다 보니 ‘하나님의 소원’이라고 적어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선교를 제대로 하느냐 아니냐의 기준은 아주 간단하고 명확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하는가?”라는 점이지요.

지난해 10월 말에 영국에 있는 선교사들을 위한 집회와 한인 연합집회를 인도하고 왔습니다. 특별히 아는 사람이 있어서도 아니고, 지난 몇 년 동안 제 페이스북에 너무나 열심히 사역하는 한 선교사님의 글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저렇게 영국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열심히 사역할 수 있을까?’ 그것이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제는 전체 친구의 3% 미만이 크리스천이라고 합니다. 학교에서 매주 교회를 다닌다고 말하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슬렘이 더 많은 나라, 그런데 그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제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습니다. 바로 웨일즈에 있는 모리아 교회였습니다. 그 작은 교회에서 일어난 기도 운동이 어떻게 세계 선교 지도를 바꾸어 놓았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제가 본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뜨겁게 기도하던 아주 소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위해 일어났다는 것이고,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소원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고 일어났을 때, 하나님의 소원이 지구촌 반대쪽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잘 사는 나라이고, 힘이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그곳에서 사역한다는 것이 참 우습게 보일 수 있는 곳입니다.

몇 해 전 장로님들과 함께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잠깐의 회의를 마치고 함께 쉬자는 의도였기에 여기저기 관광을 다녔습니다. 가이드를 통해 듣는 일본은 경제 대국이라는 생각보다는 참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살고, 예의 바르고 깨끗한 나라. 하지만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나라의 어린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예절 교육을 철저하게 받는답니다. 왜냐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배우기 때문이지요.
목조로 된 작은 집에서 살았던 일본 아이들은 늘 조그맣게 속삭이는 것이 버릇이 되었고, 누구 집에 가든지 들어갈 때는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들어가는 예의도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전후에 “정직을 팔아 신용을 산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경제를 일으킨 나라입니다. ‘일제’ 하면 신용 하나는 대단하지 않습니까?
우스갯소리로 중국 사람에게 일을 시키고 감시를 안 하면 생산이 안 되고, 한국 사람에게 일을 시키면 빨리 끝내는 대신 꼭 문제가 생기는데 일본 사람에게 일을 시키면 틀림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까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일본 사람들이 우리보다 정직하고 예의도 바르고, 잘 삽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복음을 모르는 그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겁니다. 일본사회가 미신으로 인해 묶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있다면, 그들에게 당한 우리의 많은 아픔이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동경 만나 교회에 있는 김광현 선교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일본에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줄 아십니까?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묶고 푸는 권세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크리스천들이 미움과 한으로 인해 일본을 묶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자유롭게 축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풀어 줘야 합니다. 그들을 축복하고, 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그런 생각을 해보시지 않았나요?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아픔을 가져다준 그 일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소원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요나를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보내시려고 했지만 얼마나 그가 거부했나요? 왜냐하면, 그 땅은 이스라엘의 원수였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이방신을 섬기는 족속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땅을 향한 아픈 마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바로 그 마음을 회복하기를 원하셨던 것이지요.

오늘 우리에게 주는 도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소원을 가지고 선교적 지경을 넓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속한 사람들을 바라볼 때, 타 종교인도, 우리가 용납할 수 없었던 사람들도 이 범주에 들지 않을까요?

저는 ‘선교’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소원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나의 소원으로 세상을 보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선교입니다.

우리가 흔히 선교지에서 만나는 사람들, 원주민들, 그들의 삶을 바라보세요. 그들의 삶의 양식 속에 우리가 들어간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상상할 수 없는 냄새, 비위생적인 일들.
저도 선교학을 전공하고, 청년들과 함께 선교지에 다녀 본 경험이 매우 있습니다. 그 흔한 콜라 하나도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없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먹는 것과 배설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구한말 우리나라에 들어와 선교하며, 평생을 함께한 미국과 호주 캐나다의 선교사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들어왔을 때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땅 조선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올 수 있었을까? 온갖 멸시를 받으며, 조롱을 받으며,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그 순간들을 어떻게 견뎌 낼 수 있었을까?
우리는 조그만 모욕도, 불이익도 참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아니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많은 매를 맞고, 배척을 당하며, 그가 가지고 있었던 기득권과 학벌을 배설물로 여기며 목숨을 내놓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불러주셨던 것처럼, 자신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그 누군가를 위해 같은 마음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셨던 것처럼, 이 땅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소원 앞에서 사도 바울이 결심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떤 것을 알지 않기로 작정하노라고 말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미소를 지으셨던, 그 하나님의 기쁨을 찾아 드리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은 이념을 초월합니다.
종교를 초월합니다.
인종을 초월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이기심을 초월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각하는 그 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우리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데 있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 4절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능력 있는 순간이 언제이며, 무엇을 할 때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주 간단하지요. 가장 힘 있고 권위 있는 사람의 명령을 대신하여 행할 때입니다.

우리가 많이 쓰는 예화이지요. 학창시절 선생님의 명령을 따라 떠든 아이의 이름을 칠판에 적는 그 직책이 얼마나 자랑스러웠습니까?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제 여동생이 1학년이었습니다. 그 당시 주번 완장을 차고, 여동생 반에 들어가 큰소리쳤던 그 유치한 자랑스러움이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교회학교 수련회 장소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수련회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들은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이 아니라 갓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간 1학년 선배들이었답니다. 선생님을 대신하여 얼마나 아이들을 잘 다루는지 모릅니다.

‘delegation’
누군가의 능력을 대신하는 일은 굉장한 권위가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삶과 우리 교회 사역의 가장 큰 능력은 바로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라는 말이 굉장하지 않나요?
하나님의 일을 능력 있게 하는 것은 지혜나 수단과 방법 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임재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라는 말이 영어 성경에는 좀 더 명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with a demonstration of the Spirit's power”라는 말입니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볼까요?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신유의 능력을 믿지 않던 목사님이 인도네시아 선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선교팀들과 함께 오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 원주민들에게 목사님을 본다는 것이 너무나 귀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나와 병을 고쳐 달라고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이 목사님이 난감해졌습니다. 자신은 신유의 능력도 믿지 않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몰려오니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그 지역의 선교사가 강권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그런데 놀라운 일은 기도를 받고 난 후에 환자들이 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가서도 역시 같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내가 믿지 않아도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납니다.”

선교지에서는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제가 오래전에 신천 권사님들에게 선물한 책이 있습니다. 안찬호 선교사의 [들어쓰심]이라는 간증 서적입니다. 그 책에 보면 안찬호 선교사가 마사이족 선교를 위해 선교지에 들어가서 일어났던 일을 적고 있습니다.
처음 아프리카 땅을 밟고 선교를 위해 정탐하던 중 무쿠타니 지역에 이르러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원주민이 다가와 묻습니다.
“당신은 선교사입니까?”
그렇다고 대답하자 원주민은 할렐루야를 외치며 주님께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선교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획에도 없이 이 원주민의 안내를 따라 마사이 족이 있는 마을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얼마 쯤 가다가 동행하던 전도사는 이것이 너무 무서운 지역이라 같이 갈 수 없다며 돌아가고 혼자 들어가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칼과 창으로 무장한 마사이 족 무사들을 만나게 되었고 창으로 위협하며 마을로 데려갔습니다. 그때 안찬호 선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일뿐이었답니다. ‘주님! 뜻대로 하소서.’
그때 추장이 무어라고 묻는 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난 후에 무조건 “예스! 예스!”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리고 났더니 추장이 화를 내면서 또 무어라고 묻기에 두려운 마음에 더 괴롭히지 말라고 “노! 노!”라고 대답을 했답니다. 그러자 자기들끼리 조용히 의논하더니 묻더랍니다.
그래서 이제는 죽든지 살든지 주님 뜻대로 해달라고 “오케이! 오케이!”라고 대답하자 그들의 표정이 환하게 변하더랍니다.
나중에 그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인데, 그들이 처음으로 물었던 것은, “이곳에 들어오면 죽인다. 그래도 들어올 텐가?”라는 물음이었답니다. 만약에 그 말을 알아들었더라면 분명히 “노”라고 했을 텐데 말입니다.
두 번째 물은 물음은, 하도 당당하게 대답을 하니까 다시 물었답니다. “돌아갈 것인가?” 그런데 너무나 확실하게 “노”라고 대답을 한 것이지요.
세 번째 질문은 “그렇다면 마사이 마을에서 우리와 같이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었고 안찬호 선교사가 “오케이!”라고 대답을 하자, 이들이 만족하여 데려간 것이지요.

그리고 그곳에서 선교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추장이 자신에게 침을 뱉더랍니다.
기분도 나쁘고 이들이 맘이 변했나 생각이 들었지만, 자존심이 꺾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자신도 추장의 얼굴에 침을 뱉었답니다. 그런데 추장이 무척 좋아하더라는 것이지요.
그곳은 물이 없는 곳이기에 상대방에게 수분을 준다는 것이 최대의 경의였던 것입니다. 침을 잔뜩 뱉은 선교사를 믿고 신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는 일이지요. 선교의 현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 받기 시작할 때 위대한 크리스천들이 됩니다.


하나님의 기쁨
자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무엇을 제일 기뻐하실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의 말씀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순종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들어서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 말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이 되는 사건을 아시지요?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이 아멜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겨 놓았지요. 그때 사무엘이 질책하자 사울 왕이 궁색하게 변명을 합니다. 여호와께 제사하기 위해 남겨 놓았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무엘 상 15장 22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은 사울 왕을 버리셨습니다. 아무리 전쟁에 능하고 재능이 많아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사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사건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는 일들이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이라면, 지금 우리 교회에서 하는 많은 사역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 아니라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버리실 수도 있다는 두려운 마음으로 서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온 천하에 다니며”라는 말에 주목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비전과 지경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릭 워렌 목사는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구분을 합니다.
크리스천은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적인 (worldly) 크리스천이 될 수도 있으며 세계적인 (World-Class) 크리스천이 될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세상적인 크리스천이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들이기는 하나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입니다. 교회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모임에는 참석하지만,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하고 선교해야 하는 일에는 얼굴을 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크리스천임에는 분명하지만, 지극히 세상적인 관점에 서 있는 크리스천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자신이 우선’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함’만을 추구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섬김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은 세계적인 크리스천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하나님께 불림을 받고 구원을 받은 목적이 누군가를 섬기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불림을 받았다는 것을 압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포장하거나 과장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불림을 받은 후 내세운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절에서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 고백합니까?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세계적인 크리스천은 사명을 구하며 쓰임 받음에 기꺼이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얼마나 편안하며, 내가 얼마나 인정을 받으며, 누가 나를 얼마나 알아주는가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고 계심에’ 흥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온전히 사명자로 살아가며, 성령의 능력이 드러날 때 세상이 이들의 삶에 영향을 받습니다. 감동을 받습니다. 변화를 받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세계적인 크리스천, 온 천하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 중심적 교회와 교인이 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다음은 [목적이 이끄는 삶에 나오는 세 가지 방법입니다]

1.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타인 중심적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 중에 이런 말이 있지요. “내가 이제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어린아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기만을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만족이 채워지지 않으면 계속 칭얼댄다는 것이지요. 교회 안에서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교인이 매우 있습니다.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불평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인격적이고,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신앙적인 성숙의 첫 번째는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4절의 말씀을 보세요.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느끼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성장하면 할수록, 여유가 생기면 생길수록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슴을 세상을 향해 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묵상하는 삶을 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우리의 사고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사고의 전환입니다.

2. 지역적인 사고에서 세계를 품는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분임을 인정하고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고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인정할 때, 우주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세상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의 지경이 넓혀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시편 2편 8절의 말씀을 보세요.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그렇습니다. 세계적인 사고를 하면 세계적인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우리나라 구한말 복음을 접한 사람들이 세계적인 사고를 하고 공부하고 근대사에서 지도자가 되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크리스천의 위대함은 이 세계를 품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위해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저희 교회가 BTD를 통해 많은 선교를 합니다. 사할린, 중국, 뉴질랜드, 청년, 청소년, 제주도, 그리고 유럽 등을 말입니다. 이 영성 훈련에는 전국 방방곡곡 세계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참여합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들이 이런 영성 훈련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과연 그 백성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섬길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까맣게 잊힌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말입니다. 다음의 내용은 만나 해외선교부에서 지난해 M-vision project를 하며 발표한 내용 중의 일부입니다.

A. 만나의 선교기지 기본구조
만나 교회의 선교가 자립과 지속이 가능한 총체적 선교가 되기 위한 기본 구조는 선교지 교회를 한 축으로 하고, 비즈니스선교를 포함한 전문인선교를 다른 한 축으로 하는 협력 선교의 기본 틀을 만들고, 여기에 네트워크 구조를 통해 재능기부자원, 단기선교자원을 담아내도록 하게 한다. 또한, 선교 현지에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없는 경우 만나 교회 교역자들이 선교지를 일정 기간 사역하는 순환사역구조도 고려할 만한 것으로 생각된다.

B. 만나의 선교기지 모델-국내
한국교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지속 가능한 선교를 위해서는 선교본부 역할을 하면서 자립할 수 있도록 국내에 선교센터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으로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가능한 모델은 인근 경기도 광주지역에서 진행해 오는 이주민사역을 기반으로 구축할 수 있겠다.
광주지역 이주민사역은 2011년 이주민 대상으로 무료검진을 시행하면서, 연결되는 방글라데시 종족이 나타났고, 이들에게 한글교실을 열어주고 위로회 등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렇게 연결된 이주근로자가 방글라데시로 귀국했다.
지난주에 다녀온 방글라데시 단기선교팀은 귀국한 이주근로자의 고향으로 찾아갔다. 그 마을로 들어가서 진료해 주고 잔치를 벌여주었다. 이를 통해 현지 선교사가 지속해서 그 마을을 방문하고 사역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주고자 한 것이다. 98%가 모슬렘인 방글라데시에서 선교사가 마을을 방문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꼭꼭 잠겨 있던 복음 전도의 기회의 문을 여는 것과 같다. 

국내에 세워지는 선교센터에는 만나 교회의 선교지와 연관된 나라들과 국내에 들어와 있는 다양한 민족만의 예배처소가 세워질 계획이며, 선교병원 등 비즈니스 선교를 접목하여 자립 가능한 선교센터의 기능을 담당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C. 만나의 해외 선교기지 구상
이와 동시에 현재 만나 사역지마다 자립 가능한 선교기지를 세우는 것을 구상해 볼 수 있겠다.
1) 아프리카권역
나이로비 한인교회를 주축으로 선교센터를 건립하고, 케냐 기독의사회, 나이로비 의대와 MOU 가능성을 타진해서 보건의료 사업부터 시작해 볼 수 있겠다. 농업 부분의 사역이 가능할 것이며, 한류열풍을 타고 교육/문화 콘텐츠 사업이 가능할 것이다. 이후 적응 기간을 거쳐 검진을 기본으로 하는 선교클리닉을 세워 자립 구조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2) 아시아권역
방콕에는 현지인 교회인 레인보우교회를 중심으로 문화사역이 가능한 선교센터를 건립하고, 현지에 맞는 비즈니스모델을 찾아 자립 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올 6월 태국 단기선교 기간에 선교센터 건립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자 한다.

3) 이슬람권역
그동안 후원했던 카자크의 김성수 선교사는 이미 태권도사업으로 자립구조를 만들었고, 현지인 교회의 부흥과 신학교 사역을 통해 이슬람선교의 중심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는 이슬람선교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공식적으로 허용된 선교부지에 선교센터를 건축하고 여러 민족교회의 예배 터를 세우기 위해 계획을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이현주 선교사를 아부다비로 지난 12월 파송했다. 국내에 세워지는 선교센터와 연계해서 만나 교회 이슬람 선교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4) 북방권역
자립이 어려운 구조다. 그러나 반드시 지속해야 할 사명이다. 북한선교는 백두 TD로 세워진 연길 셀 교회를 중심으로 조선족을 통한 북한 사역이 진행되며, 국내 탈북민 교회를 선교센터 개념으로 집중 지원하여 자립 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통일선교를 위해 통일선교아카데미를 지원하며, 1년 과정을 마친 수료생들을 중심으로 통일기도회가 시작되었다. 기도와 더불어 북한선교를 담당할 NGO를 설립하여 통일선교를 앞당기고, 남북한의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이러한 것은 꿈이 아니라 만나 교회가 반드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
만나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선교가 지속되는 것,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기도 하다.


3. 지금 ‘여기’만을 바라보는 사고에서 영원한 ‘저기’를 바라보는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우주적인 시각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62절에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 일시적인 것 때문에 영원한 것을 놓치지 않습니다. 지금 일시적으로 살아가는 ‘여기’ 때문에 영원히 살아가야 할 ‘거기’를 놓치지 않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가끔 이런 충고를 합니다.
“네가 지금 공부하며 고생하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을 바라보기 때문이란다. 지금 즐겁게 살아가면 앞으로 고생스럽게 살아가야 하는 더 많은 날이 있단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믿으십니까?
영존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우리가 영원히 거하게 됨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에서 영원한 가치, ‘거기’는 어디입니까?

마태복음 6장 20절에서,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놓는 것일까요? 우리가 빈손으로 떠나는 인생이라는 것을 아시지요? 여러분이 투자해야 하는 재물은 그곳에 가야 할 사람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여러분에게 가장 현명한 투자를 제안합니다. 선교를 위하여 아직 구원받지 못한 영원을 위하여 투자하십시오. 이것이 세계적인 크리스천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Action Plan 만들기
이제 여러분에게 구체적으로 참여하고, 가슴에 품고 기도하고, 경제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사역을 소개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세계 중심적 사고로 전환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물질의 헌신과 시간의 헌신 기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제 이 그룹에 들어가면 여러분이 원하는 정보를 얻게 될 것이고 필요한 사역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