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오늘 저는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분은 불꽃과 같습니다. 화를 내거나 심히 노를 발한 후에 그 남은 분노가 불꽃같이 마음에 분을 뿜습니다. 분을 삭이지 못해서 계속 품고 있으면 그 영향으로 죄를 짓게 되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고 있으면 그 기회를 쫓아 마귀가 들어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큰 해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살인, 상해, 방화, 폭력 등의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제대학교 스트레스센터가 분노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성인 7천 명을 대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장 많이 나타나는 반응이 무엇인가”를 조사했더니, 1위가 바로 분노였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갖가지 증상이 나타나는데, 외국인의 경우에는 주로 우울이나 불안으로 나타나는데 반해, 한국인의 경우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분노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분노는 단지 부정적인 감정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보여 주듯이, 분노가 범죄나 폭력 사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해 전체 폭력범죄의 약 40%가 욱하는 분노를 참지 못해 일어난 우발적 분노 범죄라고 합니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뚜껑을 덮지 않는 분노입니다. 분노하고 뚜껑을 덮으면 참아질 것인데 다 뿜어내는 것입니다.

<본론>
1. 분을 내면 죄를 짓게 된다

분을 내면 죄를 짓게 된다고 합니다. 요사이 무시무시한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데 그 배후에 보면 분노가 꼭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신문에 크게 회자한 땅콩 회항 사건은 참지 못한 분노가 큰 사고를 저지른 것입니다. 또 보육교사가 어린아이에게 주먹질을 한 사건도 참지 못한 분노가 터뜨린 사건인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먹던 것 다 안 먹는다고 강제로 먹이고 손으로 얼굴 쥐어 박는다. 그것 상식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분노를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분노를 참지 못하고 퍼뜨리는 것입니다.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분노는 뇌졸중, 심장마비 등의 위험을 높인다고 합니다. 하루에 다섯 번 이상 화를 내면 건강상 위험 상태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화를 낸 상태에서 잠을 자면 깨어났을 때 마음에 불행도가 높아지고 부정적인 감정이 더 악화된다고 합니다. 분을 품고 잠을 잘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분을 품고 잠을 자면 치료를 받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마음에 깨어나서 불행한 느낌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로 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저는 에베소서 4장 26절로 27절을 50년이 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와 같이 목회를 했던 존 허스톤 목사님이 그 부인이 굉장히 성격이 까다롭고 자상스럽고 간섭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허스톤 목사님이 부인하고 말다툼을 하고 난 다음에 분기가 올랐어요. 그래서 저하고 같이 만났는데 조목사 내가 분이 머리끝까지 올랐는데 이것을 해질 때까지 가지고 있으면 마귀가 내 마음을 점령한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자기를 간지럽혀서라도 웃겨서 해질 때까지 분노를 품지 말도록 해달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와 함께 운동회에 나가서 제가 웃기려고 굉장히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좀 웃고 난 다음에 집으로 갔는데 그 이튿날 내가 만나서 어떻게 분 풀었느냐고 하니까 당신에게 분을 풀어 달라고 부탁한 내가 하도 부끄러워서 가서 내 집사람에게 회개하고 마음에 평안을 얻었다는 그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이 저에게는 교훈이 되어서 목회 끝나는 오늘날 이 시절까지도 분만 생기면 노를 내서는 안 된다. 마귀가 틈을 탄다. 마귀가 틈을 타면 큰 상처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12장 16절에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잠언 29장 11절에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성경에 보면 제일 먼저 사람을 죽인 사람이 가인입니다. 가인은 논농사, 밭농사 이런 것을 지었고 아벨은 양을 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두 사람에게 분명히 1년에 한 번씩 하나님 만나러 올 때 제사를 드리되 어린 양을 잡아 피를 쏟고 향기로운 제사로 불을 태워 하나님께 올리라고 말씀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1년간 농사를 짓고 난 다음에 가인은 역시 내가 손으로 지은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께 드려야지. 하나님께서 내 손의 열매를 받으십시오 하고 열매 맺은 곡식단을 들고 와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원하는 제사를 지내야지 하나님이 원치 않는 제물을 가인이 자기 원하는 것으로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은 양 한 마리를 잡아서 피를 뿌리고 불을 붙여서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기쁘게 받았습니다.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야훼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창 4:5~8). 제일 첫 살인이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시편 37편 8절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분이 곧 삭여지지 아니하면 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분의 결과로 악을 행하여 살인도 하게 되고 파괴하고 무서운 일들이 생겨날 수 있는 것입니다.

최근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저지르는 범죄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데, 헤어진 애인이 밉다며 자동차로 들이받고, 재산 문제로 불화를 겪다가 엽총을 발사하는가 하면, 연인과 다투고 홧김에 불을 지른 사건도 있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분을 냈다면 끝장을 보고 마는 것입니다. 또 자신의 차에 경적을 울렸다고 그 차 앞에 끼어들어 10여 차례 급정차로 위협하는 사건이 있는가 하면, 주차를 잘못했다고 따지는 행인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중상을 입힌 사건도 있었습니다. 분노를 참지 못하면 이처럼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의 연구 결과는 분노가 우리의 건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분노가 폭발하고 난 뒤 2시간 이내에는 심장마비, 부정맥, 뇌졸중의 위험도가 무려 4배~5배 이상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분노 횟수가 축적되면 심장마비 위험률이 높아지는데, 하루에 다섯 번 이상 화를 내면 위험한 상태에 이른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화를 끼치지 않도록 분노를 살리면 안 됩니다.

2. 화는 고통스러운 결과를 초래한다

분노를 통해서 화를 내면 시야가 좁아져서 자동차 운전을 할 때 사고를 낼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분을 낸 사람에게 사연을 설명해도 이해를 하지 않습니다. 사고가 좁아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화를 낸 상태에서 식사를 하면 소화기능이 떨어져 설사나 변비가 오며 고당분 음식을 선호하게 됨으로 혈당이 높아지고 건강에 지장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욥기 5장 2절에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2005년 “최장수 부부”로 기네스북에 올랐던 부부가 있습니다. 남편인 퍼시 애로스미스와 아내인 플로렌스 애로스미스인데, 남편이 105세이고, 아내가 100세입니다. 그들이 기네스북에 올랐을 때 한 기자가 금슬이 좋고 장수한 비결을 묻자, 아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라고 해서 남들처럼 다투지 않겠어요? 우리도 종종 다투는데 그러나 화가 난 채로 잠자리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항상 화가 나면 그 화를 다 풀고 난 다음에 잠자리에 들어가서 등을 서로 대고 자지 않습니다.” 한평생을 안고 잤다는 것입니다.

표창 받을 만하지요?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 있게 사는 부부에게 장수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잠들 때는 언제나 친구처럼 포옹한 채로 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부가 평생 실천했던 말씀은 에베소서 4장 26∼27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잠을 자면, 자는 동안 부정적인 감정들이 더 강화되기 때문에, 가능한 한 화를 풀고 잠자리에 들어가야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3. 분을 품거나 화를 내지 않기 위하여

분을 품거나 화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신속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보혈로 마음을 씻어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분이 올라서 감당할 수 없는데 그것을 어떻게 합니까? 십자가 밑에 나가서 내 짐을 풀었네. 분과 화의 짐을 풀고 주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미쳐 주님께 도와달라고 할 시간이 없거든 화장실에 들어가서 손을 씻으십시오. 분이 났을 때 화장실에 가서 물로 손을 씻으면 분이 상당히 가라앉는 것입니다. 그러나 손을 씻든지 춤을 추든지 분을 빨리 가라앉혀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를 자백하면 주님은 신속히 그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 맘을 깨끗하게 해주셔서 평안을 얻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62편 8절에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저가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라. 하나님은 여러분의 피난처가 되시는 것은 피난이라는 것은 난을 피해서 숨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새라는 것은 튼튼한 성벽을 쌓아서 도망하지 않고 적이 오면 직접 대결해 서는 곳을 요새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피난처가 될 수도 있고 우리가 단단한 믿음을 가지면 요새가 되게 해서 적군을 마주쳐 싸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일 당할 때 시편 91편은 굉장한 도움이 됩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야훼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시 91:1~12).

얼마나 좋은 약속의 말씀입니까?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시 91:13~16).

우리가 성경 말씀 보면 성경말씀의 처음과 시작이 언제나 좋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시련과 환난을 당하는데 시련을 당할 때 좋으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을 이루어서 나중에 좋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말하기를 형들은 나에게 해를 주려고 애굽의 종으로 팔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이것을 돌이켜 선이 되게 해서 오늘날 수많은 사람을 굶주림에서 건지는 아버지 노릇을 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은 참 맞는 말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분을 내거나 화를 내지 말고 하나님께 엎드려서 모든 일을 하나님께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들어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린 상태에서 그를 조롱하고 침 뱉고 얼굴을 때리며 손에 못을 박는 로마군인과 허리에 창을 찌르는 그들을 향해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철저히 우리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셨냐면 우편강도와 좌편강도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철철 흘리면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예수님을 보고 주여, 주님이 나라에 임하는 날 나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방금 피를 흘리고 죽는데 교회 갈 시간도 없고 예배 드릴 시간도 없고 체면을 차릴 시간도 없는데 주님 나라에 임하시면 나를 기억하소서. 그러니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 말이 이 사람을 건진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이 철저히 주님이 주시는 공짜 선물이지 우리 행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여기에서 뚜렷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라도 해야 구원을 받는다면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죽어가는 흉악한 강도는 무엇을 할 일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데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선한 일을 할 수 없지요. 예수님을 구주로 입으로 시인하시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장차도 아닙니다.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십자가에서 내려와서는 무덤에 들어갔을 때 낙원에 있으리라. 사람이 죽고 난 다음 과연 저 건너편 세상이 있을까 묻는 사람이 있는데 너와 함께 죽어 무덤에 있으리라고 말하지 않고 낙원에 있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죽어서 직행으로 낙원으로 들어가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죽어서 음부로 들어갑니다. 음부, 음부에는 불이 타고 부자가 들어가서 나사로를 보내어서 물 한 방울 쳐서 혀를 서늘케 해달라고 간구하는 곳이 음부입니다. 그러나 낙원은 아브라함의 품이라고도 말하는데 낙원은 진짜 낙원입니다. 우리 육신의 장막 집 벗어버리면 곧장 천사들의 호위를 받아 낙원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두 갈래 길에서 죽음이라는 공통적인 체험에서 한 사람은 낙원으로 가고 한 사람은 음부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죽음을 담당하셔서 음부를 철저히 채운 것입니다. 낙원으로 우리를 데려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들도 낙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예수님이 들어오실 때 만세를 부르고 할렐루야를 하고 얼싸안고 춤을 추며 좋아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겁낼 필요 없습니다. 주님이 예수 믿는 사람은 음부로 못 가도록 막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에 보면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베드로는 이 사건을 회상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도 도망쳤던 베드로가 다시 슬그머니 들어와서 예수님이 죽으신 모습을 십자가에 밑에서 바라보았습니다. 베드로가 배신한 자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바라보니까 그는 욕을 당하고 있으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신 이에게 부탁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형제에게 노하는 것을 살인행위와 동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2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은 형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데 대해서는 굉장히 엄하게 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분냄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이 버려야 할 죄악의 목록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1절로 32절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철저히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 아닙니까? 육신을 쓰고 영원한 하나님이 오셨는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하여 재물이 되고 심판을 받았는데 영원한 예수님이 우리 위하여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영원히 심판을 받았습니다. 영원한 예수님이 우리 재물이 되어서 제사를 드렸으니까 다시는 드릴 제사가 필요 없습니다. 한 제사로써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 든 그대로 주님께 나와서 주님을 구주로 모시면 그 보혈이 여러분 보고 이 제사로써는 너는 영원히 사함을 받았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구원이 얼마나 철저한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 나와서 영원히 용서를 받아 버렸으니 다음에 용서받을 죄가 없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영원히 용서하시고 그 다음에는 성령을 보내 주셔서 보혜사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면서 여러분을 거룩하게 살게 되도록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구원의 터를 다 닦아 놓으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마음의 즐거움은 아주 좋은 약입니다. 요사이 저는 암에 걸려서 죽어가는 사람이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웃고 그래서 암이 나았다는 간증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몸이 약한 사람은 집에서 자꾸 웃어야 돼요. 여러분, 남편은 아내를 웃기십시오. 웃기면 양약이 되는 것입니다. 아주 좋은 약을 대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로 20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로마서 12장 17절로 19절에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직접 원수 갚기를 원하지 아니하시고 원수는 주님이 갚아 줄 테니까 주님께 다 맡기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맡겨 놓으면 주님이 안 갚을 때가 많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내게 맡겨라. 내가 대신 갚아 줄 테니까 맡겨라. 저도 목회하면서 너무 답답하고 괴로운 일이 많아가지고서 주님 원수를 본때를 보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날짜에다가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1년이 지나가도 안 갚아 주세요. 그 다음 2년 지나가도 안 갚아 주세요. 아직도 안 갚아 주세요. 주님은 누구든지 벌 받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용서와 사랑을 베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남에게 원수를 갚아달라고 주님께 부탁해도 안 들어주는 것처럼 남이 우리를 향해서 심판을 베풀어 달라고 하는 것도 역시 주님은 안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분노를 기도와 찬송으로 삭인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들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 하다가 귀신 쫓아내고 나니까 더 이상 점을 치지 못하므로 그 주인이 돈벌이가 없어져서 온 아는 사람을 다 충동해서 바울과 실라를 고소, 고발했습니다. 감옥에 갇혔는데 밤중에 그 사람들이 배도 고프고 몸에 맞은 데가 피가 흐르고 쓰라리기도 한데 불평이나 원한이나 분을 내지 않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둘이가 철고랑을 묶고 있으니까 박수는 못 치고 서로 아마 부딪치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찬송소리가 하나님 듣기에 좋았던지 하늘에서 하나님이 지진을 보냈습니다. 찬송소리에 맞춰서 지진으로 박자를 쳤습니다. 온 빌립보 시가 지진에 울렁거리고 죄수들이 갇혀있는 방문들이 다 열리고 차꼬가 다 풀리고 자유와 해방이 다가온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기쁨과 감사를 가지면 자유와 해방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역사에는 언제나 자유와 해방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저 기독교라는 의식만 가지고 율법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고향땅 나사렛에 돌아와서 이 세상에서 왜 왔느냐 말씀하실 때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나로 하여금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게 하려고 기름을 부으시고 그러니 예수님은 복음을 전할 때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제일 첫째 사명입니다.

가난을 원치 않습니다. 에덴에서 주님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얼마나 준비를 잘해 놓았는데 결국 반역하고 쫓겨났기 때문에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축복을 빼앗겼지 하나님은 여러분을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해방과 자유가 있는데 어떤 해방이냐, 가난에서 해방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가난을 생각하지 말고 생각을 언제나 부요를 생각하십시오. 아브라함의 복이 내게 있다. 아브라함의 형통이 내게 있다. 그것을 늘 생각하십시오.

그 다음에는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할 뿐 아니라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를 마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우울증 같이 포로된 자에게 해방을 주시는 일을 하신다. 그리고 병든 자는 고쳐주는 것은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을 눌러서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주시며 저가 두루 다니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여러분은 병이 들면 마귀가 누르고 있어요. 억누르고 있어요. 그것을 주님께서 자유롭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의 해를 전파함이라. 우리가 율법을 지키므로 고행을 하므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는 선물입니다. 선물로 구원을 주시는 것을 전하러 왔다. 그러면 예수님 보십시오.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지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지요. 눈먼 자에게 보게 해주지요.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지요. 은혜의 해를 전하지요. 우리에게 오면 엄청나게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이 제 설교를 들으면서 여러분 생애 속에 가난 귀신이 물러가고 축복과 형통의 생각이 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리고 성령이 오셔서 영안을 여셔서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해주시고 마음에 포로된 자, 육체에 포로된 자, 생활에 포로된 자,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병들고 고난스러운 것을 주님께서는 갖고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은즉 그러므로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귀의 종, 질병의 종, 고통의 종, 종노릇 하지 말라. 눌린 자를 주님께서 일어서라.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고 우리가 고행을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선물로 구원받는 것으로 구원받는 기쁨으로 즐거워 할 일이지.

그러므로 예수 이야기만 하면 해방과 자유입니다. 우리가 일정 36년에서 해방되고 얼마나 좋아했습니까? 6.25사변 난 이후 공산당에서 해방되고 얼마나 좋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원수 마귀에게 해방과 마귀가 가져온 모든 고통에서 자유를 얻게 되니 그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항상 알아야 될 것은 마음에서 먼저 일어난 일이 여러분 밖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을 받은 것을 마음속에 확실히 알아야 죄에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허물에서 씻음 받은 것을 담대하게 믿을 때 성결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느니라.

마음 속에 생각이 병에서 놓여남을 받은 생각을 하게 되면 바깥에 체험의 치료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서 내가 축복을 받아서 형통하고 아브라함의 부요함이 들어온 것을 능력으로 믿으면 환경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천국 고향이 가득하고 죽음이 겁나지 않는 사람은 죽으면 낙원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생각을 예수님을 통해서 바꾸십시오. 십자가를 바라보고 여러분의 생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새로워질 수 있으니까. 그 다음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꿈꾸십시오. 없는데 있는 것같이 꿈을 꿀 수 있지 않습니까? 꿈이란 내가 소원하고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꿈입니다.

그 마음속에 내 꿈이 이루어진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이 환경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마음에서 나는 믿음으로 산다고 확신을 가지십시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 다음에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창조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 마지막인 것입니다. 즉, 몸이 아픈 사람은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창조적인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하나님 사업을 위해서 돈을 쓰면 그것이 30배, 60배, 100배가 되어서 돌아온다는 것을 마음속에 보고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오는데 마음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밖으로 열매 맺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조목사는 서기만 서면 4차원의 세계 이야기를 한다고 그래요. 고기 잡는 사람이 모이면 그물로써 고기 잡는 것만 이야기하지 나는 여러분이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말해서 그 성과를 거두게 될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의식이나 형식을 집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이 옛날이야기 듣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은 현실 생활에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50년의 목회생활 동안에 그것을 다 체험했지 않습니까? 나만치 빈 손 들고 헐벗은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 판자촌에서 시작해서 주님의 말씀을 살아있는 말씀으로 믿고 난 이후에 얼마나 축복을 받았습니까? 먹고 싶은 것 다 먹어 보았고 입고 싶은 것 다 입어 보았고 세계적으로 가보고 싶은데 다 가보았고 만나보고 싶은 사람 다 만나보고... 하나님 앞에 상상을 초월해서 은총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받은 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는 기어코 전달해 주어야 되겠다.

여러분은 그와 같은 축복이 임하여 역사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 푹 놓으십시오. 감옥에서도 찬송을 부를 때 쇠고랑을 다 끌러버리는 우리 하나님께서 교회 와서 집에서 하나님 앞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4차원의 영성을 쫓아서 신앙을 실천하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아스피린보다 좋은 약이 있습니다. 스티븐 포스트라는 이름의 청년이 있었는데, 그 청년의 할머니는 알츠하이머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를 무척 사랑했던 청년은 나중에 의사가 되어 알츠하이머병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은 참 무서운 병입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구를 진행하면서 환자들의 가족을 통해 “주는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는지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는 사랑”의 효과를 연구하는 연구소를 설립했고, ‘사랑은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에게 더 많은 유익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심장병을 예방하는 아스피린의 효과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서 아스피린보다 두 배나 더 효과가 좋은 약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치료제입니다. 사랑을 캡슐에 넣어 팔 수만 있다면, 제약회사들은 획기적인 신약이 출시되었다고 광고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줄 때 우리 마음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22절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사랑으로 분노를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분노는 자기 마음을 파괴하고 같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파괴하는데 사랑은 받는 사람도 좋고 주는 사람도 좋고... 이 박사님이 말한 것을 보면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해진다. 그러나 사랑은 아스피린보다 더 좋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분노 대신에 사랑을 베푸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5. 3. 22.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