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의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속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수 7:16-18)

‘베이트 아브’와 함께 가족관계를 나타내는 성경 용어는 ‘미쉬파하’이다. ‘미쉬파하’는 사용 빈도에 있어서 ‘바이트’보다는 적지만, 이스라엘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는 일에는 중요한 가족 개념이다. 성경에서 이 용어는 ‘바이트’나 ‘베이트 아브’와 뚜렷한 구분 없이 사용되기 때문에 개념상 혼동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점은 우리말 성경에서 자주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베이트 아브’는 셋 내지 네 세대로 이루어진 확대가족을 지칭하며, ‘미쉬파하’는 그러한 확대가족들이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더 큰 가족 개념의 친족, 곧 가문(clan)을 의미한다. ‘바이트’는 동일 지역에 함께 거주한다는 장소성의 개념이 강조되는 용어인 반면, ‘미쉬파하’는 강력한 혈연관계를 강조하는 용어로 이해되기도 한다. ‘미수파하’에 나타난 혈연관계성은 이 단어의 어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쉬파하’는 어원적으로 ‘흘리다’ 혹은 ‘뿌리다’를 의미하는 동사 ‘샤파흐’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뿌리거나 흘리는 내용은 물이나 피가 일반적인데, 남자의 정액과도 무관치 않다.

성경 시대 이스라엘에서 ‘미쉬파하’는 지파를 이루는 하부 구조의 단위로서, 여러 개의 ‘베이트 아브’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아간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아이성 정복에 실패한 여호수아는 제비뽑기를 통하여 참패 원인 제공자를 색출하게 된다(수 7:16-18). 제비뽑기는 다음과 같이 네 과정을 거치면서 진행되었다:

유다 지파(쉐베트)->세리 족속(미쉬파하)->삽디 가족(바이트)->갈미의 아들인 아간

아간을 색출하는 과정을 통하여 세라 족속(미쉬파하)은 유다 지파와 삽디 가족 사이에 위치하는 사회 구성단위로서, 여러 개의 ‘베이트 아브’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아간은 독자적인 ‘베이트 아브’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이 아니라, 삽디의 ‘베이트 아브’에 속하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삽디의 ‘베이트 아브’는 삽디-갈미-아간-익명의 아들과 딸들이라는, 네 세대로 이루어진 가족이었다(수 7:24).

‘베이트 아브’와 ‘미쉬파하’와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결혼제도이다. ‘베이트 아브’는 족외결혼(exogamy)을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미쉬파하’는 같은 ‘미쉬파하’ 내에서의 결혼을 원칙으로 하는 족내혼제도(endogamy)였다. 이것은 각 ‘미쉬파하’에게 할당된 토지제도를 유지하며 보호해야만 하는 당위성과 연관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미쉬파하’는 ‘방어적 성격을 갖고 있는 확대가족들의 연합체’로 규정할 수 있다. 성경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친족구속자제도’는 ‘베이트 아브’가 아닌 ‘미쉬파하’ 내에서의 친족 간의 의무 규정이다. 친족구속자 제도에 근거하여 룻과 결혼한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친족(미쉬파하)에 속한 인물이었다.

성경에서 ‘미쉬파하’와 동의어로 사용하는 용어는 ‘엘레프’이다. ‘엘레프’는 원래 ‘1000’을 나타내는 숫자인데, 여러 경우에 ‘미쉬파하’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엘레프’가 ‘미쉬파하’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경우는 대부분 전쟁과 관련된 문맥인데, 이는 ‘미쉬파하’가 전쟁을 위한 군대 동원 체제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미쉬파하’는 전쟁과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군대 동원의 기본단위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기드온이 모병하는 과정에서 잘 나타나 있다.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을 위하여 우선적으로 자신이 속하고 있는 아비에설 족속(미쉬파하)에서 군대를 모았다. 그 후 기드온은 모병의 범위를 그가 속한 므낫세 지파의 다른 족속들에게로, 그 다음으로 인근 지파인 아셀, 스블론, 납달리 지파에게까지 넓혀 나갔다(삿 6:34-35).

‘미쉬파하’가 모병을 위한 기본 단위로서 역할을 하였다는 점은, 민수기에 기록된 두 번째 인구조사에서도 확인할 수가 있다.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계수”(민 26:2)하기 위한 목적의 두 번째 인구조사는 ‘미쉬파하’ 별로 실시되었다. 이것은 ‘미쉬피하’와 함께 ‘베이트 아브’에 속한 남자들을 계수하였던 첫 번째 인구조사와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미쉬파하’가 군대조직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베이트 아브’와 ‘미쉬파하’는 이스라엘 친족구조의 중요한 하부단위로서, 상위구조인 전체 지파를 형성하는 기본 구성요소들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두 요소 중에서 더 큰 중요성을 ‘베이트 아브’에 두고 있다. 그것은 ‘베이트 아브’가 한 거주지 안에서 한 가장을 중심으로 결속된 최소 단위의 가정이며, 가족원의 일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에 ‘미쉬파하’는 그 용례가 주로 계보와 같은 문맥으로 한정되어 있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