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우리의 일상은 별 생각이나 느낌 없이 익숙해진 채 반복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상처와 그로 인한 감정은 느끼지 못하게 적당히 마비시킨 채 시간은 무심히 흐른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오래되어 익숙해진 감정들이 우리의 내면을 사막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람이 실은 더욱 외로운 것이다. 외로움과 슬픔이 내면을 가득 채워도 느끼지 못하며 사는 동안 마음의 병은 커진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심해져서 상담실을 찾아왔던 한 여성이 이렇게 말했다.

“제 외로움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됐어요. 나름대로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을 터득했죠. 그래서 외롭다는 느낌은 별로 없어요. 재미있는 소설책을 읽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그렇게 한 이십 년 살다보니 익숙해진 것 같아요. 때때로 내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살 만해요. 이젠…….”

외로움이 익숙해진 상태를 조심해야 한다. 좋은 징조가 아니다. 무의식의 저편에서는 외롭지 않으려는 노력을 중단하고 자포자기하는 의미가 크게 자리잡았을 것이다. 혼자 밥을 먹어도, 혼자 잠을 자도, 감정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심한 심리적인 억압이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누르고 있을 것이다. 무덤 속에 들어가버린 외로움의 감정이 실제로 죽음을 부른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나의 부모님은 나이가 많으셨고 동생들은 터울이 심했다. 내성적이었던 나는 마음을 터놓을 친구도 없었다. 그래서 늘 외로웠었다. 외로움이 죽을 만큼 심해지자, 나도 모르게 살기 위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감정을 마비시켰던 것 같다. 그러자 문득 문득 불행감은 더 심해졌고, 더 무기력해졌고, 더 죽고 싶어졌었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그렇게 커져 가는 병이다. 

게다가 너무 오래되어 익숙해진 외로움은 잦은 병치레를 하게 했다. 심리적인 병이 신체화 증상을 부르기 때문이었다. 편도선염이나 심한 감기는 봄날에도 이어질 정도로 늘 몸이 아팠다.

어느 날 고열에 시달리며 누워 있었던 작은 방 안에 햇살 한 줌이 흘러들자, 그 햇살은 따스함 대신에 작고 뾰족한 칼날처럼 내 몸과 마음을 찔러댔었다. 그 날카로운 경험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햇살조차도 아프게 하는 경험이 우울증이라는 병이었다.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은 외로움 속에서 오래도록 아픔을 앓았다. 그 후 억압된 감정을 풀어내고 외롭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서서히 치유될 수 있었다. 

만약 당신이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무심히 지나가는 익숙한 외로움을 붙잡아 펼치고 탐색해 봐야 한다. 그 속에 무슨 의미와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 외로움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내면의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할 수 있다. 

느끼지 못한 채 무디어지고, 무디어진 감정들이 심리적인 수많은 문제를 만든다. 어린 자녀의 외로움을 모른 채 지나가면 작은 아이들도 심한 우울증이 생긴다. 숨겨진 외로움의 감정을 누르고 살아온 여성들은 결혼 후나 출산 후에 우울증이 크게 터져나와 문제가 된다. 

심리적 문제를 가진 여성은 모성애가 파괴되기 때문에 좋은 엄마가 되지도 못한다. 남성들은 아내에게 사랑을 주지도 못하게 되고, 차갑고 날카로운 내면을 키우게 된다. 수십 년 묵은 외로움의 문제들은 감정을 마비시켜 자신의 심리 상태를 더욱 모르게 만들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햇살조차 칼날이 되어버리는 지독한 외로움이 내면에 연기처럼 피어오르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봄햇살 앞에 자신의 내면을 펼쳐놓고 살펴보아야 한다.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알아야 낫고자 하는 마음도 생긴다.  

주님은 아픈 우리에게 늘 이렇게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아프다는 사실을 모르는데 어떻게 낫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오랜 외로움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느낀 후에, 깊은 치유가 일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외로움 병을 치유하고 진정으로 행복해지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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