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 박사. ⓒ하석수 기자

화쟁문화아카데미가 2월 28일 오후 동 아카데미에서 ‘제1회 종교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기독교·천주교·불교 등 주요 종교 성직자와 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종교에 대해 논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기조강연에 나선 오강남 박사(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0년간 이웃 종교를 배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다. 특히 최근 갤럽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의 경우 이웃 종교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이들이 1997년 62%에서 2004년 53%, 2014년 49%로 매년 떨어지고 있다”며 “이는 종교 간의 화해와 소통이 그 만큼 약화되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오늘날의 종교들은 현실적으로 진리니 깨침이니 변화니 자유니 하는 고매하고 심오한 종교적 측면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현실적 이익과 기복에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며 “현재 한국 종교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비리와 교세확장주의, 물질제일주의, 집단적·개인적 이기주의, 독선적 배타주의 등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깝게도 이런 관찰이 잘못되었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했다.

오 교수는 “세계 모든 종교는 표층과 심층으로 나뉘어 관찰된다”며 표층과 심층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첫째로 “표층종교가 ‘변화하지 않는 지금의 나’, ‘이기적인 나’, 그리스도교 용어로 ‘죄인의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종교라고 한다면, 심층종교는 이런 나를 극복하고 비우고 넘어설 때 찾을 수 있는 ‘새로운 나’인 ‘참 나’를 찾으려고 하는 종교”라고 했다.

오 교수는 “이렇게 ‘참 나’를 찾았을 때, 옛 자신은 죽고 새로운 자신으로 다시 태어났을 때, 해방과 자유를 향유하는 늠름하고 당당한 인격체로 우뚝 설 수 있다”며 “그리스도교 용어로 하면 이것이 부활”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똑같이 교회나 절에 다니고 헌금이나 시주나 기도를 하더라도, 표층종교에 속한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이 세상에서 자기가 복을 받고 잘 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며 “하지만 심층종교에 속한 사람은 이런 종교적 행동이 ‘욕심으로 가득한 지금의 나’, ‘이기적인 나’를 죽이고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한 내면적 훈련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오 교수는 또 “표층종교가 종교 경전의 표층적·문자적 뜻에 매달리는 데 반해, 심층종교는 문자주의를 배격하고 문자의 ‘속내’를 찾아본다”고 했다. 오 교수는 “심층종교는 경전에 나오는 말을 상징적·은유적·유비적으로 이해하고 그것들이 가리키는 종교적 실재를 체험하려고 한다”며 “이는 문자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역할을 할 때 제 기능을 다하는 것이라 본다”고 했다.

오 교수는 “이를 가장 힘 있게 가르친 이는 사도 바울”이라며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고후 3:6, 새 번역)고 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우리의 종교 생활은 대부분 표층에서 시작된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인류 역사 전체를 보아도 그렇다”며 “표층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거기에 안주해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그는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이런 표층신앙에서 심층신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밟는다는 뜻이다”며 “이런 과정을 등한시하거나 거부하면, 이른바 ‘신앙의 발달 장애’를 겪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신학자들이나 종교학자들의 진단에 따르면, 한국 종교인 절대다수가 표층신앙에 머물러 있다. 신앙생활이나 ‘나 중심’ 혹은 ‘우리 중심’으로 맴돌고 있다”며 “이런 개인이나 집단이기주의적인 표층신앙 때문에 현재 종교계에 종교적 배타주의를 비롯해 여러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고 했다.

오 교수는 “21세기에는 이런 표층종교의 자기중심적 관행이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런 표층신앙에 함몰되어 생기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줄어들고, 더욱 많은 사람이 심층종교가 줄 수 있는 생명력과 시원함을 누리게 되기를, 그리하여 한국사회가 한층 더 밝고 아름다워지기를 기원해 본다”고 말했다.

한편 화쟁문화아카데미 종교포럼은 이날 조성택 화쟁문화아카데미 대표의 <오만과 편견: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인가?>라는 주제의 발표를 시작으로, 매주 불교·기독교·천주교의 측에서 각각 자기 종교에 대해 각각 발표하고 토론을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