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교회에서 세례를 받는 주일에는 찬송가 285장 ‘주의 말씀 받은 그날’을 부릅니다. “주의 말씀 받은 그날 참 기쁘고 복되도다/ 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라가리/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아멘.” 깊은 감동이 마음 중심으로 와 닿는, 아름다운 찬송입니다.

세상에서 살다 뒤늦게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 그분을 영접하고 세례를 베푸는 날은, 세례자들에게는 천국의 열쇠를 선물로 받는 귀한 날입니다. 저 천국으로 들어가는 ‘구원 카드’를 받는 날이므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답습니다. 특히 세례란 예수와 함께 옛 사람은 장사한 바 되고,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며, 예수 안에 그를 일으키심을 받는 일(골 2:12)입니다.

세례를 받은 후부터 성도로서 위로는 영적인 것을 추구하며, 아래로는 육신의 삶을 죽이고 참된 형제애를 발휘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신실한 성도의 삶은 입과 말에 있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안의 구체적 삶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은 그리스도의 생명에서 나오므로, 육신의 본능적 죄성을 억눌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며, 모든 일을 주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땅에 속한 일들을 추구하는 세속적 본능에서 ‘악한 정욕과 탐심’이 나오므로, 성도들은 세례의 진리를 깨달아 실천하는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을 성경에서 봅니다. 당시 수많은 인파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기 위해 요단강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죄를 씻고 용서받기 위한 율법의 조항들이 매우 복잡하고 어려웠기 때문에, 정결예식이나 참회 예식이 늘 큰 부담이었습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복잡한 예식절차와 많은 경제적 비용이 요구되기 때문에, 인간들은 죄 의식을 지우지 못한 채 자학하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달랐습니다. 죄 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진심으로 회개하는 마음을 갖고 세례를 받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당시 요한의 용기 있는 세례는 율법과 죄에 찌든 백성들의 마음을 감화·감동케 하는 획기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각처에서 세례 요한을 만나기 위해 많은 죄인들이 몰려들었고, 거기에 예수님께서도 합류를 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집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를 왜 받으셔야만 했는가?’ 그래서 공관복음인 마태복음을 보면,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께 이를 질문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나아오십니까(마 3:14)?”

예수님께서는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한다”고 답하십니다. 즉 예수님의 세례는 하나님의 의로운 뜻이 이뤄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부족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죄 없으신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낮추셔서 내려오심을, 죄 많은 우리와 하나되어 있음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조건을 가진 연약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겸손한 모습에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기쁜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세례자 요한은 죄의 사함을 위해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예수님의 부활 사건 이후 우리 모두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성도들이 되었습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고, 나 자신은 하나님의 성령이 머무시는 삶을 살게 되었으며, 세례의 참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나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모두가 세례를 받은 자들인데, 세례 받은 자로서의 삶은커녕, 세례를 받기 전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성도들이 많음을 볼 때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내려놓아야 할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붙들어야 할 것을 붙들지 못하고, 포용해야 할 것을 포용하지 못하고, 용서해야 할 것에 용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그렇게 일러 주시고 당부해 주셨는데, 주님께서 애원하시고 부탁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나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사는 모습을 보노라면 너무나 안타깝고 고통스럽습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초신자 시절로 돌아가, 주님께서 주신 성령의 세례를 열망하며, 그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나를 내려놓고 주님을 높이며, 이웃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참 세례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늘 보고 계심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선민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세례 받은 자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시기를 열망합니다.

/이효준 장로(부산 덕천교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