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5년 2월 15일
본문: 디모데전서 2:8~3:13
설교: 이수영 목사(새문안교회 담임)
제목: 신자들에게 마땅한 것

▲이수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본문 2:10 하반절에 보면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끝에 바로 이어지는 3:14-15에서는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내용은 신자들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2:8-15이고 둘째는 3:1-13입니다. 첫째 부분에서는 교회 안에서 남자 성도와 여자 성도 각각의 처신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둘째 부분에서는 교회에서 감독과 집사의 직분을 맡을 신자들의 자격요건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볼 때 남녀나 감독이든 집사든 그 직분 여하를 가리지 않고 무릇 신자들이 마땅히 행할 바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2:8을 보면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합니다.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은 고대의 자연스러운 기도자세였습니다.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은 그러므로 이상한 것도 아니고 못할 것도 아닙니다. 찬송 부를 때 박수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박수치며 찬송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경건한 예배분위기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못 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요점은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기도를 드리라는 데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기도하는 사람들이 분노하고 다투며 거룩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2:9-15에서는 집중적으로 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처신문제를 다룹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에베소 교회도 영지주의자 집단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단에서는 여자들이 선교에 있어서 주도적이고 공격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혼인과 성관계와 자녀출산의 포기를 요구하는 등 여성들이 그들의 성적 역할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이에 편승해서 예수를 믿게 되고 교회에 들어왔지만 남을 가르치기에는 아직 경험이나 지식이나 그리스도인의 성숙함이 부족한 여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었다고 믿는 자유를 남용하며 옷차림도 자유분방하게 하고 유대인의 문화적 정서와는 맞지 않게 교회 안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9-15절은 이러한 주장과 현상들에 대한 반응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2:9-10을 봅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땋은 머리나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무조건 금지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그 당시 지나친 사치나 자기과시의 표지로 여겨져 신자들 간에 덕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힘써야 할 단장은 옷차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행에 의해서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비싼 옷으로 자기 몸을 단장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서 선행으로 교회를 단장할 줄은 모른다면 교회가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음 본문 2:11-14입니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우리는 이 말을 그 자체로 영원불변하는 법으로 받아들이려는 데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서도 이미 말했지만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에베소 교회에는 아직 신앙의 경험과 지식과 성숙함이 부족한 여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남용하여 교회 안에서 무분별하게 발언하는가 하면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성경적 가치를 부정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쉽게 속아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여자들의 무분별한 발언의 자제를 권면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한 것은 에베소 교회에서 영지주의적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여자들이 더 잘 속아 넘어가는 것을 안 사도 바울이 하와가 먼저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아담도 같이 죄를 범했던 과거의 일을 예로 들어 여성들의 자제와 신중을 권면한 것입니다. 결코 모든 죄의 근원은 여자에게 있고 남자들은 모두 여자 때문에 억울하게 죄에 빠지게 된 것이며 따라서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다시는 남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논리를 성립시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 2:15도 바로 이해해야 할 말입니다: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여자들이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물론 여자들은 애를 낳아야 구원을 얻는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미혼여성이나 자녀 없는 여성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전혀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출산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것은 영지주의자 집단의 여성 지도자들이 성관계와 혼인과 자녀출산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 데 대한 사도 바울의 대답인 것입니다. 구원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여성성과 그 역할을 거부함으로써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으로 얻는 것이라고 반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1:27-28) 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복입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을 따르지 않고 혼인하며 자녀를 출산하는 등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기만 하면 다 구원을 얻는 것임을 가르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본문 2:11-15의 말은 당대의 교회 안에서 영지주의 이단의 주장을 교정하려 한 것이지 모든 시대에 걸쳐서 동서를 막론하고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법률이 아닌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남녀가 각각 마땅히 해야 할 바를 가르친 사도 바울은 이어서 교회의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들에 관하여 언급합니다. 하지만 이 덕목들은 감독이나 집사의 직분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하고만 상관이 있는 덕목이 아닙니다. 무릇 모든 신자들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힘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감독에 관한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3:2-7을 봅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고 한 데서 “책망할 것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람들 사이에서 지도자로서 요구되는 자격을 두루 갖추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 되는 것”은 법적으로든 은밀하게 행해지든 일부다처제를 분명히 반대하는 표현입니다.
매사에 말이나 행동을 절제하며 신중해야 합니다.
단정해야 합니다.
나그네를 잘 대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잘 가르칠 줄 알아야 합니다.
술을 즐기지 않아야 합니다.
구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질서 있는 가정은 교회공동체의 질서와 생활의 기초가 되고 모형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는 다름 아니라 마귀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어 불순종의 죄를 짓게 만든 죄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명하시기를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6-17)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5) 하며 속여 죄를 범하게 만든 죄입니다.
외인에게서도 선하다고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집사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도 대동소이합니다. 먼저 본문 3:8-9절에서는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합니다. “믿음의 비밀을 가졌다”는 말은 믿음에 관하여 뭔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구원의 진리를 소유했다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전에는 숨겨져 있었다는 뜻으로 비밀이란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계획을 드러내셨고, 사도들이 전해준 대로 복음을 알고 믿으면 구원을 얻게 된다는 진리를 깨달아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3:10-12에서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합니다. 여기서도 사도 바울은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함에 다시 반복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신자들은 교회를 섬기는 일뿐 아니라 가정에도 충실해야 함을 새삼 깨우쳐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으로 본문 3:13에서 교회를 신실하게 섬긴 이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을 언급합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아름다운 지위”란 교회 안에서 칭찬받고 존경받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는다”는 것은 보다 성숙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용기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제직으로 교회를 섬긴 끝에 교인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고 성숙한 믿음의 일꾼이었다고 주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것보다 더 기쁘고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장로가 되고 안수집사나 권사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인들의 마음속에 아름답게 기억되고 훗날 주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다고 인정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