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

곽혜원 | 새물결플러스 | 504쪽 | 22,000원

“특별히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죽음을 성찰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죽음의 문제를 도외시하고서는 우리 삶이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죽음을 통해 삶을 바라보지 않으면,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 삶이 총체적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우리는 매사에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지난해 한국 사회에서는 갖가지 사건사고로 인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심지어 반기독교인까지도 ‘죽음’ 또는 ‘상실’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됐다. 이러한 가운데 출간된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은 죽음에 대한 몰이해와 성숙한 죽음 의식의 결여, 죽음·생사 교육 부재 상태의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삶과 죽음에 관해 연구하는 ‘기독교 생사학’을 정립하려는 목적으로 쓰였다.

책은 ‘메멘토 모리’를 시작으로, 성서의 생명 이해와 죽음을 넘어서는 기독교의 희망, 여러 종교들의 생사관, 여러 종류의 ‘죽음’ 등 다양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특히 뇌사와 안락사·존엄사, 호스피스 케어와 고통 완화 의료, 고독사·무연사, 자살 등 기독교 윤리와 관련된 문제를 고찰하고 있으며, 부록에서는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쓴 셸리 케이건의 ‘사후 세계도, 영혼도 없다’는 식의 죽음 이해를 기독교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부터 ‘부활’하신 예수님, ‘살리는 영’이신 성령님까지, 성경은 ‘생명’에 대한 강한 긍정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죽음’은 ‘극복의 대상’이었고, 한국교회도 ‘죽음’을 금기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통로가 됐다.

이후 기독교 역사는 ‘좋은 죽음’이라는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왔다. 임종의 자리는 십자가의 길을 실천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자리로 인식됐고, 오랜 기간 죽음을 준비했으며 평소에도 자주 묵상했다. 이런 마음의 준비는 ‘아르스 모리엔디(Ars Moriedni·죽음의 기술)’로 나타났고, 임종 시 ‘영적 체험’이 일어나는 일도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임종의 무대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죽음 준비’는 갖가지 ‘생명 연장장치’들로 오염됐다.

저자는 이렇듯 ‘투병(鬪病)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죽음이 ‘세속화’된 현대 기독교를 향해, ‘노인’을 중요한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그들을 교회 생활에 적극 참여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의 참된 의미를 배우고자 한다면, 예수님 탄생 당시의 ‘시므온과 안나처럼’ 이들을 의도적으로 교회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신앙인으로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앙적으로 ‘잘 죽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평소에 죽음을 신앙의 관점에서 분명히 정리하고 좋은 죽음을 맞이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아르스 모리엔디’의 회복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생애 말기 적극적 연명치료에 대한 재고 가능성을 지적한다.

“인간은 인생에 정해진 한계점이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은 유익한 섭리 가운데 있는 것이다.”

‘희망의 신학’을 주창한 위르겐 몰트만 박사(J. Moltmann) 지도로 독일 튀빙겐대학교에서 조직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성공회대와 숭실대, 연세대 대학원, 장신대 등에서 신학을 가르쳤으며, 지금은 ‘21세기 교회와 신학포럼’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