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항기 목사(73)가 최근 담임했던 예음교회에서 은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소 놀랐다. 그가 ‘목사’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벌써 ‘은퇴’할 때가 됐다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 1990년 미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이후 바로 귀국해 목회 일선에 섰으니 올해로 만 25년째다. 여전히 ‘가수’ 윤항기로 더 유명하지만 ‘목사’ 윤항기도 그에 못지 않다.

그가 가수로 걸어온 길은, 이미 알려졌듯, 남달랐다. 지난 1959년 트로트가 대중음악계 주류였던 당시 록밴드 ‘키 보이스’(Key Boys)의 일원으로 데뷔해, 그룹 ‘키 브라더스’(Key Brothers)를 거쳐 1974년 솔로가수가 됐다. 이후 ‘별이 빛나는 밤에’ ‘이거야 정말’ ‘나는 어떡하라고’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고, 그가 작곡한 ‘여러분’은 얼마 전 MBC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가수 임재범 씨가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회심’하게 된 건, 젊은 시절 걸린 ‘폐결핵’ 때문이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동생 윤복희 씨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그 만큼 건강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결국 쓰러졌고,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바로 그때 아내와 동생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게 된 그는, 투병 중 예수님을 영접하고 서원기도를 통해 삶을 결단하게 된다.

그리고 기적처럼 병은 나았다. ‘새 삶’을 얻은 그는 지난 1979년 ’서울국제가요제’에 나가 동생 윤복희 씨가 부른 ‘여러분’이라는 곡으로 대상을 차지한다.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 줄게…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윤항기 목사는 “이사야서 41장 10절을 읽고 기도하면서 만든 곡”이라며 “이 때 성령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윤항기 목사. 최근 신곡을 발표한 그는 “세상에서 노래한다고 목사가 아닌 것은 아니다. 여전히 목사고, 이것 또한 선교”라며 “어차피 인기라는 건 결코 영원한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진영 기자

목사가 된 뒤에도 그의 길은 평범하지 않았다. 재능을 살려 음악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었던 그는, 국내에 생소했던 ‘음악신학원’(現 예음종합예술원)을 설립하고 교단(現 예장 예음)까지 세워 ‘음악목사 양성’이라는 목표를 내건다. 물론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많은 교회들이 보수적이었고, 음악이 설 자리는 그 만큼 적었던 까닭이다. 윤 목사는 “전국의 교회를 다니면서 음악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예배당에서 마음 놓고 악기를 치며 노래할 수 있는 것도 윤 목사와 같은 이들이 있었던 덕분은 아닐까. 그 역시 ‘음악목사’로 걸어온 길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윤 목사는 “하나님께서 내게 음악을 가르치시고 목사가 되게 하신 것은, 찬양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주님을 노래하고 나아가 나와 같은 이들을 더 길러내라는 뜻으로 믿었다”며 “그 사명을 붙들고 지금껏 달려왔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했다.

그렇게 25년을 목사로 살아온 그는, 이제 인생 ‘3막’에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윤 목사는 얼마 전 가수 태진아 씨가 대표로 있는 ‘진아기획’과 손을 잡고 신곡 ‘걱정을 말아요’를 발표했다. 그리고 올해 가을쯤 데뷔 55주년을 기념하는 전국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 70을 넘긴 적지 않은 나이지만, 마치 소풍을 앞둔 소년처럼 설레 보였다.

“이제는 교회 밖, 세상으로 노래를 가지고 나아가 어둠을 밝히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 노래를 듣는 이들은 생각하겠죠. ‘목사가 되더니 은퇴 후 다시 저렇게 활발하게 활동하는구나’ 하고. 그것만으로도 전도의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봐요. 세상에서 노래한다고, 제가 목사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 여전히 목사고, 이것 또한 선교니까요. 어차피 인기라는 건 결코 영원한 게 아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