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고로드의 재판

엘리 위젤 | 포이에마 | 216쪽 | 12,000원

“1649년의 유대인 집단학살 이후. 증오가 이기고 죽음이 승리를 거뒀다. 극소수의 생존자들은 자신이 홀로 되었으며, 버림받았음을 안다.”

이 희곡은 17세기 동유럽의 마을 ‘샴고로드’의 한 여관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을 담아냈다. 그 속에는 ‘신(神)’을 피고로 법정에 세우는 ‘연극 속의 연극’이 있다.

부림절은 구약 에스더에 기록된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하만이 제비를 뽑아 날을 정하고 유대인을 몰살시키려던 음모에서 ‘해방’된 날을 기억하며 지키는 날이다. 희곡 속 유대인 음유시인 3인도 이 날을 즐기기 위해 샴고로드의 한 여관에 찾아왔으나, 유대인 공동체 속 여관 주인 베리쉬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얼마 전 일대에서 벌어진 유대인 대량학살로 1백 가정이 대부분 몰살당했기 때문. 살아남은 딸 한나마저 치욕을 당했다.

음유시인들은 부림절을 축하하는 공연을 계획했지만, 관객은 베리쉬 뿐이다. 그 베리쉬마저 ‘희극’ 대신 ‘최고의 심판자’에 대한 모의재판을 요구하면서 긴장이 흐르고, 재판 도중 의문의 손님이 나타나 ‘신의 변호인’을 자처하는데….

저자가 “본 희곡은 비극적 익살극으로 공연되어야 한다”고 지문에서 밝혔던 것처럼, 유쾌하고 소란스러운 분위기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들을 전한다.

저자는 1928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15세에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감됐다가 부모와 여동생을 잃은 엘리 위젤(Elie Wiesel). 경험을 토대로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198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세 명의 저명한 랍비가 ‘신을 기소하고 재판을 벌인’ 경험을 토대로 글을 썼다.

아우슈비츠는 70년 전 닫혔지만, ‘종교’라는 이름으로 극악한 살상을 멈추지 않는 IS의 예에서 보듯 또다른 아우슈비츠가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