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5년 1월 25일
본문: 디모데후서 3:16~17
설교: 김병삼 목사(만나교회 담임)
제목: 묵상(Quiet Time)이 주는 유익

▲김병삼 목사(만나교회)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16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17 so that the man of God may be thoroughly equipped for every good work.


페리 노블의 책 [삶의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열심히 살지만,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보기 위한 시간을 내지 않는 탓에 그분과의 친밀함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늘 일정에 쫓겨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산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보여 주셔도 보지 못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 내 삶의 속도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루는 우리 딸을 목욕시키다가 딸이 목욕에 집중하지 않고 장난감에 한눈을 팔자 나는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 “이럴 시간이 없어. 서둘러야 해.”
그러자 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빠, 왜 시간이 없어요? 왜 서둘러야 해요?”
갑자기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위험천만한 속도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나도 모르게 딸에게도 똑같은 속도를 전염시키려 했던 것이다.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칠 당시 한 믿음의 친구가 이렇게 조언했다.
“자네의 속도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어. 너무 빨라.”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은 명백한 잘못을 지적하는 말에도 쉽게 화를 낸다. 솔직히 나는 속도를 조정하고 싶지 않았다. 변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니라 나 외에 모든 사람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를 이해하고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사람이 절실했다.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마귀는 하루도 쉬지 않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꼭 마귀를 본보기로 삼아야 하겠는가?”
지독히 바쁘단 시절에는 ‘쉼’이란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다.
마침내 상담 치료사는 내게 이렇게까지 말했다.
“성경은 일하지 않는 사람을 게으르다고 말하지만 쉬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불순종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사명에 충실한 교회가 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헌신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묵상이 주는 유익은 아주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교회가 쓰임 받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흔히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듣는 것 (Hear) (로마서 10: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 읽는 것 (Read) (요한 계시록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3. 연구하는 것 (Study) (사도행전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4. 암송하는 것 (Memorize) (시편 119: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5. 묵상하는 것 (Meditate) (시편 1:1-3)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묵상’이라는 것은 듣고, 읽고, 연구하고, 암송하는 것과 함께 완성됩니다. 이런 비유를 들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두꺼운 성경을 한 손가락으로 잡을 수 있나요? 두 손가락으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태롭게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다섯 손가락 모두를 사용한다면 훨씬 더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묵상의 단계를 통해 우리가 배운 말씀을 적용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묵상은 우리가 배운 말씀들을 되새기고 삶으로 살아가도록 도움을 줍니다.


말씀의 적용
말씀을 적용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묵상하는 것은 ‘묵상’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서 현실화되고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묵상이라는 것은 말씀을 기다리는 것이죠.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에서 이러한 것을 훈련할 수 있을까요?

만나 교회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가 “나무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미리 준비된 설교와 본문으로 묵상집을 만든다는 것이죠. 좀 더 생각한다면, 설교가 그냥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 해를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며 정해지고, 그 말씀은 3개월 전에 원고가 나옵니다. 그래서 두 달 동안 매주 설교 본문과 함께 묵상하도록 하죠.
우리 성도들의 삶이 주일의 말씀과 유리되지 않고 연관성을 가지게 한 것이 나무 생각입니다. 나무 생각은 매일 새벽예배, 나무모임, 혹은 홈페이지를 통해 계속 나눔을 가지고 적용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서 이런 묵상이 이루어진다면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오늘 우리는 묵상이란 의미와 그 묵상이 주는 유익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때로 절망감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참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게 예배를 많이 드리는데 왜 예배자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게 많이 듣는데 왜 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결국, 예배의 문제는 일방적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리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가장 은혜롭지 못한 교회의 첫 번째는, “예배와 기도보다는 회의가 긴 교회”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저의 모습과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보니까, 때로 회의를 하기 위해 잠깐 기도하고 긴 회의로 들어갈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사실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회의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함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는 “형식적인 예배와 기도를 마치고” 우리의 생각을 나누는 회의로 들어갈 때가 많다는 것이지요.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적용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먼저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지난해 하용조 목사님 3주기를 기념해 [믿음은 기다림으로 완성됩니다]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죽은 자를 통해 믿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믿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보았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부르심의 장면이 나옵니다. 이 부르심의 사건을 통해 우리가 구별해야 할 진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약속의 믿음 vs. 희망의 믿음”입니다.
흔히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우리의 ‘희망”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용조 목사님 글에서 참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바로 창세기 12장 1절의 해석이었습니다.
첫째는,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노력이나 그가 도통했기 때문에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이라는 것.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다! 이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오늘 나누는 ‘묵상’과 연관이 있는데,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 말씀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믿음이 없습니다. 말씀 없이 믿음을 갖는 것은 허공을 치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것인데 믿음은 내 비전이나 내 묵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묵상은 “생각한다”와 더불어 “기다린다”는 것이 아닐까요?
아주 재미있는 비유인데, 아이를 배면 엄마는 열 달 동안 기다려야 합니다. 급하다고 5개월 만에 출산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인내하는 이유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올 때 믿음이 시작됩니다.
사실 우리는 믿음이 들어오면 믿음을 ‘가지려’ 하는데, 믿음이 들어오면 ‘집착을 버리게’ 됩니다. 집착을 버리면 자유로워집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평안과 자유를 누리는 이유입니다.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들어왔습니다. ‘가라’는 명령이 있었고, ‘떠나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믿음은 맹목적으로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방황이 아닙니다. 믿음은 갑자기 찾아오는 로또가 아니라 약속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는 순간 소위 말하는 횡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길을 가기 위해 인내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묵상의 유익이며, 묵상으로 믿음이 자라는 이유입니다.”

셋째는,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약속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루어질 것에 대한 기대이고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보고 죽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는 것은 약속을 보고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25년의 세월을 통해 약속을 보았고, 죽을 때까지 약속을 보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묵상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는다면…
먼저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인정하지 않고는 오늘 말씀의 진도를 나갈 수 없습니다.
성경이란 말뜻은 영어로는 ‘canon’ 즉 ‘척도’가 된다는 뜻입니다. 척도란 ‘정확하게 재는 자’라는 뜻인데, 고대 이집트에서는 갈대로 자를 대신했습니다. 갈대는 곧게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를 대면, 잘못되어 삐뚤어진 것이 드러나게 되고, 잘못된 것이 드러나면 고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에서 디모데후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교정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는 능력이 있음을 말입니다.

M-school을 통해 구약성경공부를 배우는 분들은 첫 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성경이 1,500년이란 시간 간격을 두고 써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한 사람이 아닌 40명의 선지자와 사도들에 의해 쓰였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66권의 내용이 창조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완벽하게 일관성을 가지는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위에 보내셔서 구원하실 수밖에 없었는지를, “구속사”라는 주제로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디모데후서 기자는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도저히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늘날 성경이 문자로 기록된 후 2,000년이 지난 후에도 우리의 손에 이렇게 완벽하게 전달되고, 2,000년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베스트셀러로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인정할 때, 성경은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바꾸어 놓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되는 순간에, 우리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의 삶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예전에 구약성경공부가 끝나는 마지막 시간에 늘 공부한 사람들과 함께 주안감리교회에 있는 성서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거기에는 수만 가지가 넘는 성경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많은 성경 중에 교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성경이 있습니다.
인천지역에 사는 어떤 경찰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손으로 쓴 성경입니다.
그분은 어느 날 암이라는 선고를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분이 생각한 것은 자신이 죽기 전에 자녀들에게 성경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성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한참 쓰다가 생각을 해보니까 죽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죽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 보았더니, 성경을 쓰다가 암이 완전하게 치료를 받은 것입니다. 바로 그 성경이 진열되어 있고, 그리고 그분이 두 번째 성경을 또 쓰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에, 우리의 육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또 성경공부를 시작하면서, 6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유명한 살인마로 알려진 고재붕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군대에서 대대장 당번병으로 있었는데, 어느 날 면회 온 애인을 만나러 가기 위해 대대장의 군화를 몰래 신고 나갔다 들켰습니다. 그런데 한번 용서해주면 될 일을 그 일로 감방에 가게 되었고, 이를 갈게 되었습니다. 나오면 그 대대장을 죽여 버리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나오던 날, 담을 넘어가 대대장 가족을 다 도끼로 찍어서 죽였습니다. 그런데 더욱 비참한 것은 그가 죽인 대대장 가족은 당시에 자신을 감옥에 보냈던 사람이 아니고, 후임자로 왔던 가족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짐승과 같은 취급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분노와 억울함 복수심, 살인 질투의 마음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형을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전달된 것입니다. 사형을 기다리던,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되어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고 용서를 빌며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제 죽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한, 그것이 목사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강단은 목회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 강단에서 주시는 도전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말씀을 묵상할 때, 역사적으로 쓰인 한 사건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말씀이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려져야 합니다. 그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는 친숙해야 합니다.
같은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도 많이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옵니다. 제가 처음 담임목사가 되고 나서 많은 사람이 불평을 했습니다. “목사님 말이 너무 빨라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이제 다른 교회 가면 힘들어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는 말투에 아주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묵상을 시작하지만, 그 말씀이 우리에게 익숙하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듣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면 삶을 교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심방을 하면서, 부끄러워하는 중직들의 얼굴을 일부러 외면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 어디를 찾습니다.”라고 하면 찾지 못해 당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말입니다.
때로 찾다가 아무 곳이나 열어놓고 있으면, 제가 모를 줄 압니까? 두께를 보면 잘 아는데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무안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겠다는, 알아야겠다는 열망이 생기시기를 바랍니다.

Billy Graham says: "Long ago I decided to accept the Bible by faith. This should not be difficult for anyone to do. Most of us do not understand nuclear fission, but we accept it. I don't understand television, but I accept it. Why is it so easy to accept all these man-made miracles and so difficult to accept the miracles of the Bible?"
빌리 그래함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래전 나는 신앙으로 성경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 중 대부분은 핵분열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해도 받아들인다. 나는 텔레비전에 대해 다 이해하지 못해도 받아들인다. 왜 사람들이 만든 기적과 같은 일들은 쉽게 받아들이면서 성경의 기적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워하는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이해하고 우리 삶에 적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우리의 삶에 기준으로 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성경이 여러분의 삶에서 역사할 것입니다.
성경을 묵상하기 시작할 때, 성경이 여러분의 삶에 진리의 영으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만나 교회가 추구하는 사명이 무엇인가요?
교회가 이 땅의 소망이 되는 것이고, 그 소망을 이루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훈련된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동안 성경은 우리에게 사용설명서와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수없이 변하는 이 세상 가운데 말씀은 그때그때 정확하게 우리의 삶에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이…
오늘 본문 말씀에 보니까,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우리의 인생이 교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만이 우리를 복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거짓은 잠시는 우리를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곧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진리만이 영존(永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을 배우는 것보다 무엇이 참인지를 바로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단론을 연구하면서, 늘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을 배우면, 늘 인생이 부정적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리인지를 확실하게 배우는 것입니다. 진짜를 배우면 가짜는, 거짓은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캐나다 왕립 기마 경찰은 위조지폐를 방지하는 훈련을 합니다.
경찰국에서는 경관들에게 절대로 위조지폐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한 종류의 진짜 10불짜리 지폐가 존재함을 알 따름입니다. 그들은 너무나 철저하게 진짜 지폐에 대해서 연구하기 때문에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위조지폐입니다.
사람들이 위조지폐를 만드는 방법을 다 상상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마 경찰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위조지폐를 만드는가를 연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진짜만을 연구합니다. 진짜에 못 미치는 것은 다 가짜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아주 철저히 알아서, 하나님의 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것에서 돌이키십시오.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셨을 때 바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의논하지 않으셨습니다. 절대로 그것을 분석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사탄이 “즉각적인 성공”을 위해 예수님을 다른 길로 가게 하려고 했을 때,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자기를 부르신 목적을 명심하고 잘못된 조언을 거부하셨습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명심하여야 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5절입니다.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양은 목자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습니다.
주변이 시끄럽다고요? 들으려 하면 그 음성은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그분이 나의 목자냐 하는 것입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목소리가 안 들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목소리 중에 목자의 목소리를 구별하는 훈련 말입니다.
“묵상훈련”은 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구별하는 훈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부분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근미 작가가 쓴 [대한민국 최고들은 왜 잘하는 것에 미쳤을까]라는 책에서 동화작가 고정욱 씨에 대하여 말합니다.
강의하러 가서 청중들에게 “내가 아는 소설가가 동화공부를 하기 위해 동화책을 많이 읽고 큰 성과를 냈는데 몇 권이나 읽었을까요?”라고 질문하면 대개 100권, 200권, 500권이라고 말한다. 정답은 2,000권이다. 고정욱 작가는 그해 여름 동화책 2,000권을 읽고 나자 눈이 밝아지면서 이야기가 마구 떠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쓴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 ‘내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등 많은 작품이 공전의 히트를 했다. 고정욱 작가의 작품 주인공은 거의 장애인이다. 자신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1급 장애인이어서 누구보다 장애인들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를 공략하는 것이 성과를 내는 지름길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화를 쓰기 위해 2,000권의 동화를 읽고 났더니 눈이 밝아지면서 이야기가 마구 떠올랐다는 것이죠.

우리가 온전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귀에도 또렷하게 들려져야 말씀대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이때 우리의 삶의 교정이 일어납니다. 옳은 길을 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라는 책에 보면, 클라우드라는 사람이 시편 37편을 읽다가 경험한 간증이 나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매일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날은 바로 시편 37편을 읽을 차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날 그 사람에게 유독 21절에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라는 구절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다음 봉급을 받으면 꼭 갚겠다고 약속하고 부모님께 꾼 500불을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그 돈이 부모님의 것이었기에 그는 몇 달 동안을 잊어버리고 지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악인은 꾸고 갚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클라우드에게 명백하게 가르쳐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그는 주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고는 부모님께 500불짜리 수표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방금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고 말입니다.
그 순간 그는 진리이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책망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의 인생이 교정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그는 빚을 갚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눈에는 악인이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 명백하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의 인생에서는 이제 “조정” 작업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순종”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경험”됩니다.

오늘은 마지막 저의 간증으로 끝을 맺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에도 이런 간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년 전 제가 한동대학에 설교를 부탁받고 갔을 때입니다.
전날 신입생을 위한 전도 집회를 하고, 다음 날 전교생을 위한 예배를 인도할 때였습니다. 나름대로 설교 준비를 열심히 하고 갔는데, 강사로 소개를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마음속에서 그 준비한 말씀이 적절하지 않다는 음성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그때가,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의 책을 읽다가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입니까? 행하는 자입니까?”라는 말씀으로 도전을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고민을 하다가 순종하기로 마음을 먹고 강단에서 준비한 원고를 덮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대로, 인도하심을 따라 설교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시작했는데, 저는 속에서부터 아주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순간 아주 강력하게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아주 강력하게 도전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고 마음을 먹으십시오.
먼저 말씀을 통해서 말입니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어떻게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까?
저는 지난주에 감신 동문회 세미나에 가서도 그런 강의를 했습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만나 교회의 성도들이 주일에 모이면 여기저기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을 간증하는 꿈” 말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여러분의 인생을 조정할 용기만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여러분의 삶에서 경험되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간증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이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이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이런 간증을 가지고 모입시다. 이곳저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하고, 내가 이렇게 바뀌었노라고,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어 주셨노라고 간증하는 사람들로 이 예배당이 꽉 찼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말씀을 묵상하는 실천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삶에서 말씀을 묵상하기에 적절한 시간은 언제인가요?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일까요?
하루를 시작하기 전, 컴퓨터를 켰을 때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런데 이 묵상을 방해하는 가장 치명적인 적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이 묵상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Q.T 세미나, 나무 공동체, 새벽예배, 말씀 받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