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봉독>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빌립보서 4장 11절로 13절 말씀을 가지고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은 문제가 생겨나면 흔히 남의 얘기를 합니다. “저는 부모님을 잘못 만났어요. 내 어린 시절에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배우자를 잘못 만났습니다. 눈에 뭐가 씌웠는지 내가 그때는 참 좋은 사람인줄 알고 만났는데 그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내가 친구를 잘못만나서 이렇게 됐습니다.”, “학교에서 내가 선생님 미움을 받아서 이렇게 됐습니다.”, “내가 믿었던 동업자한테 모든 것을 날려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됐습니다.”.

이렇게 누구 때문에 내 모습이 오늘날 이렇게 되었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와 같은 문제와 어려움을 만났다고 할지라도 그 상처에 붙잡혀 있는 한, 결국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상처로 얼룩진 자화상에 붙잡혀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 24절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러분 남 탓을 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의 죄와 허물 나의 연약한 모습 나의 고집, 교만, 내 속에 뒤틀려있는 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눈을 들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모든 절망에서 고통에서 괴로움에서 벗어나 주님 안에서 기쁨과 평안함을 누리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누구 때문에’라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정말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삶 가운데서도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과거를 돌아보면서 상처 입은 과거 때문에 낙심하며 살아가는 그러한 옛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러한 모습을 다 벗어버리고 변화된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희 교회에 와서 간증했던 닉 부이치치 씨는 두 팔과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났는데도 정말 우리 교회 와서 간증을 하는데 얼마나 기쁨이 충만하고 감사가 충만한지 제가 은혜를 받았어요. 제가 은혜를 받았어요. 여러분, 여러분, 저렇게 고통스럽고 힘든 모습이 아니잖아요. 저분은 저렇게 기쁨이 충만한데 우리는 가질 것 다 가지고 누릴 것 다 누리면서도 조금한 것도 내게 어려움이 다가오고 상처가 된 것이 있고 손해 본 것이 있으면 그렇게 난리를 하고 힘들고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자화상에 붙잡힌 과거의 모습을 과감히 내던져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할렐루야.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이전에 망가진 나의 모습은 다 지나가버렸습니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 과거의 상처가 여러분을 붙잡고 있는 한은 여러분은 새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과감하게 다 내던져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가 여러분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오늘 예수님 안에서 주님을 믿는 믿음이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여러분의 미래를 찬란한 미래, 영광스러운 미래로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겠는가?

1. 절대 긍정의 신앙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볼 첫 번째는 절대긍정의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1절에 이와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자족이란 무엇입니까? 스스로 모든 일에 만족하고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려워도 힘들어도 고통스러워도 입을 열면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나를 복주십니다. 이와 같은 절대긍정의 믿음이 그의 삶을 축복의 삶으로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몸이 아프다고 늘 아픈 얘기만 하면 안 됩니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도 많고 주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주셔서 남보다도 회복시켜주시니 감사하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 약한 몸이 강건해지고 병든 몸이 치료함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그 삶 가운데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많은 연단과정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던 다윗은 참 연단을 많이 받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어릴 때 집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했어요. 사실 막내 면은 굉장히 사랑받을 위치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눈에는 별로 그 다윗이 맘에 들지 않았어요. 사무엘 선지자가 연락이 왔습니다. 당신 자녀들 가운데 하나님이 한 사람을 기름 부어 세우려고 합니다. 그러니 내가 어느 날 찾아갈 터이니 아들을 다 준비하여 대기 시켜 놓으십시오. 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자기 아들 중에 한 사람이 왕이 된다고 하니 그래서 아들들을 다 그냥 목욕재계 시키고 좋은 옷을 입히고 요즘말로 하면, 압구정으로 가서 머리도 드라이해서 딱 고치고. 그래가지고 준비를 시켰는데 무려 아들이 여덟이에요. 근데 일곱 아들만 준비를 시키고, “막내야, 넌 저기 가서 귀한 손님이 오시니까 넌 가서 양치고 있어라.”.

그래서 막내 다윗은 집에 머물러 있지 않고 나가서 양을 치고 있었어요. 성경을 보면, 사무엘이 왔을 때 아들을 이제 들어오라고 합니다. 첫 아들 딱 들어오는 거 보고, 너무 잘났어요. ‘야, 이 아들인가 보구나.’ 하나님이 ‘아니다’, 이 아들이 아니랍니다. 둘째가 들어옵니다. ‘야, 둘째인가 보구나?’ 하나님이 ‘아니다.’ 성경을 보면 일곱 아들이 다 잘났어요. 하나님은 ‘아니다. 아니다.’ 일곱이 다 지나갔습니다. 아니 아들 더 없습니까?

그 아버지가 글쎄 그 저. 집에 별 볼 일 없는 아들 하나가 있긴 하는데 지금 나가서 양을 치고 있습니다. 그 아이도 오라 하시오. 그래서 그 양을 치던 다윗이 뛰어 들어오는데 어디 단장 할 틈이 있습니까? 막 뛰어 들어오니까 머리는 헝클어지고 땀은 젖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탁 들어오는데 하나님이 ‘저 아이다.’, ‘나는 외모를 보지 아니하고 중심을 보느니라.’. 근데 집에서도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잖아요. 이러한 자화상을 가질 수가 있어요. 나는 집에서 늘 인정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가 골리앗 장군을 무너뜨린 다음에 민족의 영웅이 되었는데, 그로 말미암아 사울왕의 미움을 받아가지고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는데, 적국인 블레셋에 가서 1년 3개월 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막 침을 흘리고 미친 척도 하기도 하고, 십 몇 년 동안 도망 다녔어요. 왕이 된 다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왕이 된 후에도 사울왕의 일가하고 7년 동안 전쟁을 했어요, 7년간. 왕이 되고 나서 그가 안정되고 이제 나라가 부강해지는가 했는데, 그의 말년에는 아들 압살롬이 대적을 해가지고 왕국을 버리고 도망가는 그러한 연단도 겪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겪은 후에 그가 그의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고백합니다.

시편 23편 1편에,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할렐루야.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게 되길 바랍니다. 고난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오고, 슬픔이 다가와도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삶의 근거가 바로, 주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 영광 가운데 나를 사용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무장하고 믿음의 전진을 해나가야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다가오고, 자녀가 속을 썩이고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도 절대 낙심하지 마세요.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세요,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축복을 받을 때 탐욕을 가지면 안 됩니다. 축복을 받을 때 그것을 하나님께서 잘 관리하고 베풀며 쓰라고 주신 것이지 움켜쥐고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탐욕입니다. 평생 쌓아놓고 있다가 쓰지도 못하고 죽으면 자녀들끼리 유산싸움해요. 그래서 우리가 축복받을 때 아낌없이 베풀어 주고, 나누어 주는 그러한 여유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더욱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6절과 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먹을것과 입을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탐욕을 버리고 내가 있는 현 상황 속에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살아가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초대 교회에 ‘황금의 입’으로 불린 요한 크리소스톰 목사님은 얼마나 설교가 은혜가 충만했는지, 설교 중에 성도들이 박수치고 회개 눈물을 흘리고 하는 이런 일로 설교가 자주 끊어졌다고 합니다. 그가 한 설교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탐욕을 절제하고 자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사람이다.’.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이유가 뭐냐, 먹을 것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이 이미 충분히 다 가진 것이에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고 했는데, 내가 오늘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고 이렇게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으니 우리는 이미 넘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살아 숨 쉬는 동안 여러분의 입에서 감사가 끊임없이 주님 앞에 드려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8절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범사에 감사해야 됩니다. 힘들어도 고통스러워도 좋은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이 있어도 무조건 감사를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사람들은 잘될 때 감사할 수 있지만 어려울 때는 감사를 잘 못합니다.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는 것이 연약한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동방의 큰 부자였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재벌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전 재산이 다 날라 갔습니다.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짐으로 7남 3녀, 10자녀가 다 죽었습니다. 그 몸에 악성 피부병이 걸려서 기와로 온 몸을 긁어야 되는 그러한 고통 속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얼마나 처참했던지, 부인이 지켜보다 못해 이런 말을 합니다.

욥기서 2장 9절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좀 너무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지금 이렇게 고통당하는데, ‘여보 힘내, 우리 손 붙잡고 같이 기도합시다.’ 그래야 되는데,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시오’. 사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그런데 욥은 그 상황 속에서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욥기 2장 10절에,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바꿔 말하면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입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주시는 입입니다, 감사하라고 주신 입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입을 잘 지켜야 됩니다. 우리가 쏟아내지 않아야 될 말을 쏟아냄으로 말미암아 상대편에 상처를 주고 분노를 가져오고 큰 다툼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남을 살리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칭찬하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격려하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여러분의 입술로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고 남을 탓하고 비난하고 원망과 불평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 가리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남이 극한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격려해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 사람을 더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믿고 나서 우리 입술의 고백이 늘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감사가 넘쳐나야 합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다 멸망당했느냐, 40년 동안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동안에 여러분은 고난의 광야에 둘 수밖에 없습니다. 주여 우리 입술이 감사하고 찬양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입술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목사님, 프로도프 공동체 목사님이신데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주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한다.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날들을 값지게 사용하는 비결은 따로 있다. 지난날을 후회하는 대신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노년의 사전에 끝까지 남아야 할 말은 “고맙습니다” 이다.’

할렐루야. 마지막까지 여러분이 고백해야 될 그 고백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이와 같은 절대 긍정의 신앙으로 무장해서 우린 나아가야 합니다.

2. 주님의 은혜로 사는 신앙

둘째로, 주님의 은혜로 사는 그러한 신앙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라. 따라하세요,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삽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주님의 은혜만 있으면 우리는 넉넉히 이깁니다. 모든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감당할 뿐 아니라,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2절은 말씀합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여러분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없습니다. 때때로 어려운 일도 생겨나고 문제도 생겨납니다. 특별히 사업하시는 분들을 보면 사업이 잘됐다 안됐다, 기복이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 그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의 처음과 마지막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길 바랍니다.

빌립보서 1장 2절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빌립보서 4장 23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할렐루야. 누구에게 이 은혜가 임합니까,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는 자에게 은혜가 임합니다. 시편 86편 3절에,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부르짖어 기도해야 돼요. 주여 내개 은혜를 주시옵소서. 은혜를 주시옵소서,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님의 은혜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올 한 해 동안 주님께서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은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또한, 정직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잠언서 14장 9절에,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힘쓰고 겸손과 온유로 옷 입고 정직하게 살고자 원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세요. 세상은 자꾸 우리를 죄로 유혹합니다. 어떤 자리에 가면 물질의 유혹이 오는 자리가 있어요, 한번만 눈감아 달라고 돈을 갖고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모르고 덜커덕 돈을 받았다가는 나중에 큰 어려움을 당하고 뉴스에 오르내리게 되고 감옥에도 가게 됩니다.

여러분 정직하게 그 자리를 지켰더라면 절대 그런 어려움이 안 다가올 텐데, 그 위치에서 자기가 정직하지 못하고 적당히 죄와 타협했기 때문에 나중에 그가 큰 문제와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늘 정직하게 온유와 겸손을 옷 입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어떤 은혜가 임하느냐?

빌립보서 4장 19절에, 은혜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채우시리라, 채우시리라, 누가, 우리 하나님이. 우리가 우리 힘으로 못 채웁니다. 불가능합니다. 주님이 채워주셔야 합니다. 주님이 내 마음에 평안함을 주시고 주님 채워주실 때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몸에 병을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할 때, 내가 연약할 때, 주님의 능력이 내게 머물러 있어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주님의 놀라운 일을 이룬다고 하는 축복의 말씀인 것입니다. 문제는 뭔지 아세요? 내가, 내가, 내가.

여러분 스스로 나라고 하는 바벨탑을 쌓으면 안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부족하고 연약해서 이 교회를 잘 이끌어갈 능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은혜로 이 교회가 안정되고 부흥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 말씀이 얼마나 감사한지.

여러분 때때로 기도가 응답이 안 되어도 감사하세요. 기도가 응답이 안 될 때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을 때, 또 하나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때 응답이 안 올 수가 있습니다. 응답하지 않은 것도 감사할 내용입니다. 그래서 복음성가에 이런 가사가 있지 않습니까?

(복음성가)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 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할렐루야. 할렐루야.

송용필 목사님이 작년 11월 달에『갚을 길 없는 은혜』라는 책을 내셨어요.『갚을 길 없는 은혜』. 수원 역전에서 구두 닦기를 하시던 분이 미국의 공인회계사가 되고 대학의 부총장까지 된 아주 입지전적인 인물인데.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6.25때 함경남도에서 피난 와서 공주에 머물렀었다가 중학교를 못 가게 되자 돈 벌어 공부하겠다며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온다는 것이 그만 잘못 내려서 수원역에 내렸어요.

근데 먹을 것을 준다고 해서 따라가 보니까 소매치기 소굴이에요. 그래서 겨우 도망쳐 나온 다음 수원역 대합실에서 먹고 자면서 구두를 닦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중등 검정고시를 통과했는데 철도고등학교를 가려고 하니까 나이가 많다고 안 받아줬어요. 당시 철도고등학교에 입학하면 거기서 공부도 시켜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는 길이 열려있기에 갔는데 입학이 거절된 것입니다.

절망에 처해 정처 없이 발길을 옮기는데 어디서 작은 불빛이 비춰서 가보니까 그것이 바로 교회 십자가입니다. 예수를 믿게 되니까 얼마나 하나님 은혜 감사한지. 예수를 믿고 나서 감사하니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사정을 알게 된 담임목사님이 ‘너, 교회에서 아르바이트 안 할래? 교회 종 치는 아르바이트해라.’ 그래서 그때부터 교회 종을 치면서 교회 쪽방에서 자면서, 종탑 방에서 자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김장환 목사님을 알게 되서 오산 미군부대에 일자리를 소개해준다고 윌리엄 대니라고 하는 군인을 소개받았습니다. 이 분은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이 분을 도와서 열심히 이일 저일 했는데 그만 정식으로 일자리를 마련해주지 않고 미국으로 가버리셨어요. 그분을 믿고 의지했는데 너무나 마음이 낙심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을 주셨어요.

잠언서 3장 5절로 6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훼 하나님을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미국 간 대령이 교회에서 간증을 하면서 자기가 이런 소년을 돌봤다고 하니까 거기 할머니 한 분이 ‘내가 그 아이를 후원하겠다’고. 그래서 대학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미국 유학까지 가게 됩니다. 할머니의 유언이 ‘그 아이를 끝까지 도와줘라.’ 그래서 자녀들도 그 아이의 후견인이 되가지고 미국의 밥존스 대학에 가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공인회계사가 되고 그 다음 미국의 신학교를 나와서 목사가 되었어요.

그리고 북한선교 비전을 갖고 한국에 돌아와서 극동방송 부사장을 하고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횃불 트리니티 대학교 부총장으로, 어와나 코리아 총재로 사역합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 같은 인생에도 좋은 날이 올까?’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게 된 후로 ‘제 인생에 대한 의심과 비관적인 생각들’이 어느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 같은 은인 분들 덕분에 제 인생에 ‘좋은 날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절벽 앞’에 서 있을 때, ‘사다리’를 만들어 주시고, 계속 ‘걷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독하게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을 보냈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갚을 길이 없는 하나님의 큰 은혜 덕분’입니다!” 할렐루야.

3. 주님께만 영광 돌리는 신앙

우리는 절대 긍정의 신앙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마지막으로 범사에 주님께만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주시니까.’

빌립보서 4장 13절은 말씀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누구 안에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그 일을 하게 만들어 주신다.’ 그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내가 낳은 자녀도 내 마음대로 못해요. 평생 사랑하며 살자고 결혼한 배우자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겁니다. 성격 뜯어고치려고 하다가 오히려 부부싸움만 더 심해지는 거예요. 그냥 맞춰 살아야지, 고치려고 그러지 마세요. 그러면 어떻게 삽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사는 거예요.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가정이 평안하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자녀가 바로 되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하는 모든 일이 잘 되기 때문에 모든 영광 하나님께. 모든 영광 하나님께.

내게 힘들고 어렵게 하는 그러한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가는 여러분 되십시오. 시편 56편 4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여러분, 사람을 의지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의 약속 안에 거할 때 우리에게 큰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주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말씀 안에 거하면서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님의 것이로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든은 1791년에 삶의 큰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 성당에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듣고 큰 감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1795년 대본을 갖고 3년 동안 기도하면서 작곡한 것이 바로 불후의 명작 ‘천지창조’입니다. 그래서 오라토리오 가운데 헨델의 메시아. 멘델스존의 ‘엘리야’, 그리고 하이든의 ‘천지창조’, 셋을 꼽는데 그가 작곡할 때 친구에게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천지창조를 쓰고 있을 때만큼 ‘경건한 마음’으로 작곡에 임한 적이 없었네. 나는 매일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이 작품을 성공적으로 완성할 때까지 밀고 나갈 힘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네.”

아주 기도하면서 이 곡을 작곡을 했는데 초연 때 얼마나 큰 감동이 임했는지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하고 리허설 때부터 감동이 전해져서 초연할 때는 사람들이 너무 몰려와서 경찰들이 그 청중을 정리해야만 했습니다. 십 년 후에 그의 나이 76세 때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콘서트가 빈 대학에서 열렸습니다. 그때 빈 대학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살리에리가 천지창조를 지휘했고 그때에 그의 제자인 베토벤이 그의 옆에 앉아있었는데 얼마나 큰 감동을 주었는지 전 청중이 기립박수를 하는데 박수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베토벤이 스승의 손에 입을 맞추면서 ‘선생님,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선생님을 칭찬할 때 그가 손을 저으면서 박수를 그치게 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작품은 내 것이 아니라, ‘위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두 달 뒤 그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조용히 천국에 갔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큰일을 할 때, 우리가 마지막으로 고백해야 될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저 위에 계신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는 모든 작곡을 하고나서 맨 끝에 라틴 말로 ‘Laus Deo(라우스 데오)’라고 하는 말을 썼어요. 이 ‘Laus Deo(라우스 데오)’라고 하는 말은 뭐냐 하면 ''Praise God''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하나님께 찬양한다. 하나님을 찬양한다. 할렐루야. 꼭 끝에다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그 서명을 하고, 사인을 하고. 그 악보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음악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여러분, 한 번 뿐인 인생입니다. 이렇게 삶의 모든 순간순간마다 우리가 하는 삶의 모든 순간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모든 영광 하나님께.’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큰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우리 절대 신앙으로 무장해서 한 평생 주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러있으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다가 주님께서 오라‘ 부르실 때 기쁨으로 주님 맞이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 찬송 존귀 영광을 우리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우리가 살아 숨 쉬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 감사하게 하여주시고 절대 긍정의 신앙으로 무장하여 범사에 주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영광을 주님께 돌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15. 1. 25. 주일설교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