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오늘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옛날 우리가 일제 강점기 때, 그 후 6.25전쟁으로 피난민 생활할 때는 누더기 옷을 입고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찢어지고 구멍 뚫린 옷을 몇 번이고 기워 입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그런 옷을 입고 학교를 가거나 친구들 집에 가면 우리 자녀들이 울고불고 야단을 칠 것입니다. 그때는 옷 한번 입으면 찢어져서 못 입을 때까지 입는다 말입니다.

나는 오늘 이 설교를 하려고 앉아있다가 작년에 세상 뜬 내 짝꿍 생각이 납니다. 내 짝꿍이 옷을 입고 오면 내가 시간만 나면 그 찢어진데를 잡아서 더 찢어지게 해서 옷 물어내라고 울고불고 하던 그 옛날이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멋을 내려면 내찌께 라고 해서 이렇게 방바닥에 옷을 싹 깔아놓고 요를 살짝 덮어놓고 그 위에서 누워잡니다. 잘 내찌께가 되면 앞에 옷의 줄도 서고 제법 멋있는 옷을 입을 수 있는데 잘못 뒹굴어 놓으면 줄이 수십가지가 나와서 옷이 망쳐지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형제간이 많으니까 형제들 중에 옷을 깨끗이 그렇게 입으려고 했으나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옷이 더 망가져서 울면서 학교를 안 가고 옷 바로 세워 달라고 한 것이 오늘같이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새 사람이 되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우리 신앙생활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전도서 1장 9절은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다 있던 그것이 또 있고 또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일상적으로 되풀이될 뿐, 질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기에 새것이라는 헬라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시간적 의미에서의 새로움은 네오스입니다. 옛날것입니다. 세월이 흘러가서 오늘 것이 새로워지고 이것은 네오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질적인 새로움, 완전히 속이 달라져 다른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은 카이노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생활이란 네오스, 세월이 흘러가서 어린 사람이 나이 먹은 사람으로 변하여 자랐다. 그런 크리스챤의 체험을 새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카이노스라고 질적으로 새로워 예수를 믿고 속이 달라져 버리는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할 때 카이노스를 사용합니다. 이는 우리가 질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냥 예수 믿고 교회 등록해서 종교인이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들어와서 확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나라가 바뀌듯 인격이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을 입게 되며, 그냥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원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는데 죄를 짓고 하나님께 쫓겨나갈 때는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냥 사람이 되었어요.

그냥 사람이 되어서 세상에 쫓겨나오니까 마귀가 덥썩 잡았습니다. 그래서 마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은 다 마귀 사람인 것입니다. 마귀의 죄악을 그대로 옮겨놓고 마귀를 따라 사는 마귀 사람이 되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우리 죄를 청산하시고 우리를 끌어안아 주시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마귀가 쫓겨나가고 다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되므로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그냥 사람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있어서 예수님이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

그리스도와 똑같은 능력을 행하는 4차원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냥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서 4차원이 그들 속에 들어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3차원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와서 앉아있어도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람입니다. 여보, 잠을 깨어나세요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그래요? 하나님의 사람이면 다른가요? 다르고 말고요. 하나님의 사람은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사람으로 환경을 다스리고 변화시키고 기적을 행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은 그런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론>
1.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패와 부정으로 도덕적으로 누더기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그냥 사람으로 세상에 나가서 세상 사람들을 본받아 삶으로 누더기 인생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질적 발전이 도덕적 뒷받침이 없으면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놀라운 발전을 하지요. 우리 대한민국은 올해는 평균 국민 소득 3만 달러가 된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깜짝 놀랄 만큼 잘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변화되느냐. 더 변화되지 않고 더 부정하고 부패하고 거짓된 것이 사회에 꽉 들어 차 있습니다. 일본에서 더 사용하지 못해서 내버리는 고철덩어리를 사와서 정부의 허락을 받아 그 배로써 제주도로 거제도로 왔다갔다 하다가 물에 빠져서 그 많은 희생을 가져왔지 않습니까?

이것은 도덕적으로 부정과 부패가 들어왔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누더기를 입은 잘사는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누더기 기워 입듯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땜질하듯이 사회를 고쳐서는 새롭게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살아나도 통째 새로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되어서 그것이 우리 가정과 사회와 우리 생활에 행해질 때 비로소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9절로 10절에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예수 믿는 것은 새사람을 입었다.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까지 새롭게 되었다. 엄청난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냥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좋은 일하는 것이 예수 믿는 신앙생활이 아니다. 전적으로 새롭게 되었다. 생각이 새로워지고 꿈이 새로워지고 믿음이 새로워지고 말이 새로워지고 온통 새로워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를 갖다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근본적인 변화를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변화되느냐’하면, 애벌레가 이전보다 더 잘 기어가는 정도가 아닌 것입니다. 꿈틀꿈틀 기어가는 애벌레가 어떻게 자극을 받아서 꿈틀꿈틀 조금 빨리 걷는다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새벽기도 안 나오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기도 나가는 것 보면 참 용한 일이다. 그래도 생각하는 것 보면 변화 안 되고 말하는 것 보면 욕지거리하고 거짓말하고 믿음의 생활을 하지 못하고 의심 투성이고 거짓말하는 그러한 새것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새롭게 되느냐면 예수 믿는 사람은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지 않으며,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않는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새로 믿은 우리 신앙생활을 옛날 생활에 짜깁기하는 그것 아니고 낡은 포도주 바구니에 그것 바구니라고 합니까? 포도주를 담아놓는 가죽 주머니에 새 포도주를 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새 포도주가 확산하면 가죽이 다 터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누더기를 기워 입듯,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땜질하듯 해서는 새롭게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범죄한 인간의 생각은 항상 악할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 5절에 “야훼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야만, 이전 것이 지나가고 새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다고 해서 그럼 때려 잡아 죽이자. 그래서 새 사람이 되어서 부활하기를 기다리자. 그것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고 장사지내고 사흘 만에 부활한 그 모든 극적인 행동이 우리를 대신해서 하신 행동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상상하고 꿈꾸고 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 내가 바로 저를 통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당하고 피 흘려 죽고 내가 장사지내서 무덤에 들어가고 내가 예수를 통해서 부활하고 내가 승천했다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꿈꿔 보고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무덤 내 무덤,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나와 하나가 되는 이러한 꿈과 신앙이 일체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 속에 깨달아 알고 그것을 꿈꾸고 예수님과 내가 하나가 되어서 죽고 장사지낸 것을 꿈꾸고 그것을 믿고 여러분이 늘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장사 지낸 바 되고 함께 부활하고 승천해서 하나가 되었다고 그것을 바라보고 믿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그 때문에 여러분은 내적 상상이 대단히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을 늘 생각해야 돼요. 십자가에 예수님이 죽은 것은 날 위하여 죽으셨다. 예수 죽음 내 죽음, 그 다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 탁월하게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는 이것이 따라야 예수 믿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냥 가난한 사람에게 음식 좀 나눠주고 한푼 달라는 사람에게 천원 짜리 한 장 주고 아침 일찍 배고픈 사람에게 밥 먹여줬다. 그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될 선한 행위이지 그 자체가 예수 믿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은 여러분이 십자가를 쳐다보고 저기에 달린 저 예수님이 바로 나다. 내가 예수님을 통해서 달려있다. 무덤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내가 장례식에 예수님과 함께 들어간다. 내가 함께 부활해서 내가 함께 승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당한 고난 전체가 여러분을 위한 하나의 극적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상상하지 못하면 신앙이 발전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생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음에 바라봐야 돼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서 죽음에서 부활한 것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 믿고 말해야 돼요. 나는 예수와 같이 죽고 같이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해서 함께 승천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잘 이해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이해가 되어야 해요.

2.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성경에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누더기 옷을 대신 받아 입으신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삶 그 자체가 탐욕에 젖은 누더기 옷인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 모든 누더기를 예수님이 받아 입었습니다. 자기의 의롭고 깨끗한 옷은 여러분에게 내어 주시고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의 누더기 옷을 대신 입고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아담을 통해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기독교 신앙은 대표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아담 안에 우리가 다 죽었고 아담 안에 버림을 당했는데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 처음 아담이 아니고 마지막 아담, 둘째 아담이라고도 하고 마지막 인류의 조상으로서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은 처음 아담이 가지고 온 죄와 죽음을 마지막 아담으로서 다 인수 인계해서 당신이 죽고 당신을 통해서 용서와 의와 거룩함을 받고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깨달아 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돼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와서 자기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나의 누더기 인생을 인계 받아가지고서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로 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죄에 빠져서 탐욕의 누더기 옷을 입고서 자기 힘으로는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집에서 농주를 담그곤 했습니다. 메주 같은 것을 쑤고 쌀을 쪄서 그 속에 넣어 두면, 누룩이 퍼져서 완전히 발효되어 술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라는 누룩이 그 안에 있어서 가만히 있어도 부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 아담의 죄의 누룩이 어머니 뱃속에서 생겨나는 자식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하기 전에 벌써 누룩이 기다리고 있어요. 응아하고 태어나자마자 발효해서 온갖 죄를 짓습니다. 선은 가르쳐도 잘 안하는데 죄는 안 가르쳐 줘도 전부 짓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누룩이 그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가르쳐 주지 않아도 죄를 짓습니다. 먹을 것을 주면, 하나는 입에 넣고 또 하나는 손에 쥐고 좀 달라고 해도 안 나눠주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탐욕에 젖은 누더기를 입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들은 도덕적으로 훌륭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죽어서 좋은데 간다. 그런 말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어린 아기 뱃속에서 떨어져서 응아~ 우는 그때부터 죄인입니다. 아담의 자손들은 아담의 핏줄을 통해서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되어서 죄의 값은 사망이라. 사망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 행위를 해서는 구원을 못 받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우리를 끌어안고 우리의 누더기 옷을 당신이 갈아입고 대신 죽어주므로 말미암아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자랑할 자가 없느니라. 여러분 오늘 마음에 죄 값으로 말미암아 괴롭고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적은 죄나 큰 죄나 할 것 없이 전부 끌어안고 십자가에서 못을 박아 내가 다 이루었다 하셨는데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죄를 백년, 천년 용서해 버린 것이 아니라 영원히 용서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의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은 영원합니다. 여러분 영원히 죄가 씻음을 받았어요. 영원히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참 이것 얼마나 좋은 구원인지 말로 다할 수가 없어요. 우리의 죄를 낱낱이 다 청산했을 뿐 아니라 영원히 청산해 주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입은 누더기는 죄의 누더기, 허물의 누더기, 질병의 누더기, 저주의 누더기, 죽음과 음부의 누더기. 이 휘황찬란한 누더기를 주님이 다 덮어쓴 것입니다. 다 짊어졌어요.

오늘날 우리는 세상에서 나 때문에 그렇지 않고 너 때문에 그렇다고 상대에게 죄를 덮어 씌우지만 예수님은 내가 다 짊어질테니까 내게 맡겨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주님께서 하나도 없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 때문에 다가온 죄악의 결과를 청산한 것입니다. 그가 처참하게 대못에 찔렸습니다. 양손과 양발에 대못을 쳤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입니다.

그런 소리 마세요. 내가 언제 십자가에 못 박았노? 여러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깨달아 알면 그것이 진짜 여러분 신앙인 것입니다. 나 때문에 그런 것 아니요. 아니요. 그러면 안돼요. 어머니 물침례 받을 때 목사님이 누구 죄를 위하여 예수님이 죽었습니까 그러면 나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그렇게 말하세요. 알았다 알았다. 목사님이 할머니, 예수님이 누구 때문에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었지요? 그것 모를 턱이 있어요? 우리 며느리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 그러면 안돼요. 그것은 잘못 깨달았습니다.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나 때문에 내가 지은 죄를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53장 5절은 예수님 오시기 칠백년 전에 이미 예언한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로마서 5장 15절과 18절처럼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한 사람 아담 때문에 모든 세계인들이 죄인이 된 것처럼 한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때문에 은혜가 넘쳐흐르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영원히 청산했으니까 은혜도 영원한 은혜인 것입니다. 아담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람으로서 아담은 죄를 지었으나 예수님은 하나님 사람,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 죄를 받아 가지고서 온 세상 인류의 죄를 청산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은혜는 말로다 할 수 없이 풍성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죄는 한사람을 통해서 온 인류를 휘어잡았지만 그러나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선물을 넘치게 받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죄를 다스리고 허물을 다스리고 거룩하게 되며 병을 다스리고 귀신을 쫓아내고 가난을 다스리고 헐벗은 저주를 다스리고 죽음을 다스려서 부활 영생 소망을 갖고 이 넘치는 은혜와 축복은 한번 예수님만 모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러한 은혜가 있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 알고 그것을 꿈꿔 보고 믿고 입술로 시인하면 이 은혜가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3.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보고 옛날 것은 지나갔다는 것을 알고 완전히 새롭게 된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회개로 누더기 옷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이 주신 새 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아이구 나는 아직 새것이 되지 못했는데요. 못해도 여러분이 새것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성령이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한다는 것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살아가면서 1년 동안에 어려운 문제가 당해서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으려고 할 때도 언제나 예수님이 이미 이루어 놓았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여러분이 축복을 받는 모습을 보고 믿고 맡기고 나는 복을 받았다고 입술로 고백을 하고 시인을 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면 옛다 떡 먹어라 하고 주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절로 27절에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이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지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다는 그 역사적인 사실을 뼛속까지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침례 안 받았다고해서 구원 못 받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다 구원을 받는데 왜 침례는 구태여 받느냐. 침례를 받으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물속으로 빠져 들어간 것은 죽고 지낸바 되고 예수와 함께 부활해서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체험하므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더 뚜렷하게 새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새 옷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중복음의 옷이지요. 용서와 의의 옷을 받아 입고 성결과 성령충만의 옷을 받아 입고 치료와 건강의 옷을 받아 입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의 옷을 받아 입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옷을 받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눈에 안 보이는데 어떻게 받아 입느냐. 역시 4차원의 영성을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옷을 받아 입는 것이라. 여러분이 예수님 옷을 받아 입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꿈꿔 보고 그것을 믿고 입술로 말하면 말이 나가서 그것을 이루어주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로운 옷을 입은 사람이다. 나는 거룩한 옷을 입었다. 나는 치료의 옷을 입었다. 나는 축복과 형통의 옷을 입었다. 나는 부활 영생의 옷을 입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은 새 옷을 받아 입었기 때문이다. 입술로써 고백하면 성령이 와서 네 말한 대로 될지어다. 여러분이 생활에 새로운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삼중축복의 두루마기를 입고 이제는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3절로 5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 것입니까? 여러분, 이 은총과 축복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여러분의 모든 병을 고치시고 청춘을 독수리같이 활달하게 만들어 주시는 좋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루 생활할 때 짜증나고 귀찮은 일이 있더라도 말을 하십시오. 나는 독수리같이 새롭게 될 축복을 받았다. 죄가 다 용서받고 나는 의롭게 되었다. 나는 형통함을 입었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적은 목소리로 여러분 자꾸 말하십시오. 여러분 말이라는 것은 속에 있을 때는 내가 콘트롤합니다. 그 말을 내가 다스리지만 그러나 일단 입 밖으로 나오면 그 말은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환경과 생활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결국 말하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멋도 모르고 여러 가지 말을 하지만 그 말이 다 나가서 에너지가 되어서 나중에 여러분에게 책임지게끔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에 보통 사람들은 오만가지 말을 한다고 합니다. 오만가지 말 중에 여러분이 긍정적인 말을 얼마나 하는 것입니까? 지극히 적게 합니다. 오만가지 말은 전부 비난하고 비평하고 욕하고 탄식하고 한탄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데 이것이 나가서는 에너지가 되어서 여러분에게 다가와서 여러분을 물고 찢고 짓밟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심해서 입술을 지키면 여러분의 많은 불행과 슬픔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로 해야 되고 꿈을 바로 꿔야 되고 믿음을 바로 믿어야 되고 자꾸 믿음을 의심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뭘 믿느냐. 예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지요?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믿지요? 그런 그 예수님에게 내 문제를 맡겨 버려야 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내가 믿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을 내가 믿고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를 예수님께 맡겨버리고 랄랄라 휘파람 불고 나가면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 맡겼다.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해주겠다. 내게 짐을 맡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맡겼다는 것을 입술로 자꾸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다 맡겼다. 나는 예수님께서 다 맡겼으므로 무겁지 않다. 나는 좋다. 말이 나가서 에너지가 되어서 여러분 짐을 다 주님께 맡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의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와서 종교적인 의식을 집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 와서 여러분 자유와 해방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에 속박에서 해방되고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떠나가고 의와 평강과 희락이 마음에 다가오고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므로 이와 같은 변화가 다가와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교회 오는 것이 정말 즐겁고 하나님의 신성한 능력이 여러분 속에 들어오는 것을 체험하고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주시듯이 은혜의 생수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러한 산 체험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교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이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천년 전에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못 박혀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하셔서 손을 내밀고 내게 오너라. 내가 너에게 새로운 옷을 입혀주마. 의로운 옷을 입혀 주고 있습니다. 거룩한 옷을 입혀 주고 있고 치료의 옷을 입혀 주고 있고 축복과 형통의 옷을 입혀주고 있고 영생복락의 옷을 입혀주어서 내 아들, 딸들 참 좋다. 옷 입혀 놓으니 기쁘다. 자, 속옷 입었으니 겉옷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전인구원의 옷을 입어라.

주님이 여러분에게 옷을 입혀 놓고 좋아하고 아이고 내 아들, 내 딸 좋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상상으로 그 옷을 생각하고 그 옷 입은 여러분의 모습을 바라보고 저 옷이 내 옷이라고 믿고 그 입술로 고백합니다. 그러면 주님하고 딱 맞아떨어져서 그 모든 옷들이 여러분의 옷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이 옷을 다 입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새 옷을 입으라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생각이 새로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와~ 저 십자가 주님 고통이 나를 변화시키는구나. 마음을 새롭게 하고 꿈을 새롭게 하고 내가 언제나 마음속에 상상한 꿈입니다. 나는 못났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구박받는다 하지 말고 나는 주님 때문에 새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이 나와 같이 계시고 저주가 다 물러갔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된 모습을 항상 바라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리고 믿음으로 산다고 입술로 고백하고 나는 믿음으로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니 행복하다고 입술로 고백하고 그렇게 나가면 십자가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은혜가 넘쳐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축복은 십자가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 축복은 없습니다. 아담의 죄악은 예수님이 짊어지고 갈보리산에서 다 청산할 때 마지막에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주님은 영원히 여러분이 잘 살 수 있도록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하고 끊임없이 싸워서 결국은 이기는 영원히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결국은 이기는 것입니다. 허물도 결국은 다 벗어놓게 되는 것입니다 병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내 병을 대신 짊어지셨다는 것을 끝까지 믿고 참고 견디며 입술로 주장하면 병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축복도 내 것이라고 자꾸 주장하면 축복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은 말할 필요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므로 여러분 새 인생, 새 옷을 입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 속에 온 이후로는 누더기 옷을 다시 입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고 성경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 재산을 가지고 다 방탕해 써버리고 기근이 들어서 굶어죽게 되니까 다 떨어진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올 때 아버지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 아들이 아버지께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범하였으니 다시는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겠습니다. 종의 한사람으로 여겨 주소서. 아버지가 그 아들 목을 감싸고 환영을 하고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냄새나고 구역질나는 옷을 벗기고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그게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예수 믿고 나오면 제일 좋은 옷을 입혀라. 죄가 하나도 안 지은 사람처럼 깨끗한 옷을 입혀라. 그만큼 주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철저히 십자가에서 대신 고통당한 것입니다. 머리카락 하나만한 죄도 예수님이 다 청산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보시기에 지극히 의로운 사람이다. 제일 좋은 옷을 입혔으니까. 그리고 성령이 같이 계실 정도로 거룩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성령이 같이 계시면서 여러분에게 보혜사가 되셔서 도와주시고 그리고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절대로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이미 일생 살 것을 준비해 놓은 것입니다.

요사이 백세를 살면 육십세 은퇴를 하면 나머지 40년을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 태산인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걱정하지 말고 내게 맡겨라. 우리 주님 섬기고 주님께 십일조 심고 주님을 기뻐하면 필요할 때 다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병이어로 오천명 먹이고 열두 바구니 남긴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에 희한한 방법으로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교도소에 갇혀있던 죄수가 임기가 다 끝나면 교도소에서 나오면 사복을 가져와서 입힙니다. 죄수복을 입고 집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 죄인의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보혈로써 값주고 산 옷을 입혀서 우리를 돌려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의식을 집행하므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한분 때문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불러 주셔서 내가 예수님 앞에 나가서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드리면 예수님이 여러분과 나의 영과 혼과 육의 모든 죄와 병을 다 책임지는 것입니다. 다 내게 내놓아라. 다 내게 내놓아라. 걱정하지 말라. 내가 대신 짊어졌다. 그리고 주님께서 여러분 보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찔림은 네 죄 때문이요 내가 상함도 네 죄 때문이다. 내가 징계를 받은 것도 너에게 평안을 주기 위해서 내가 채찍에 맞아. 보아라. 내 등허리, 채찍에 맞은 것은 너 고치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것은 너를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 매달렸다.

그러므로 너는 내 안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사람이 된다고 깨닫고 그 꿈을 꾸고 그렇게 믿고 그렇게 말하라. 여러분 금년도에는 꼭 그렇게 하십시오. 생각이 변화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생각이 변화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옛사람이 아닙니다. 저주가 다 청산되었습니다. 이제는 새사람으로써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요사이 핸드폰이 카메라 역할을 해서 가는 곳마다 핸드폰을 가지고 자기 사진도 찍고 남의 사진도 찍는데 그 핸드폰을 영적인 핸드폰을 가지고 자기 모습을 찍으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변화된 축복받은 모습을 마음속에 찍어서 걸어놓고 보십시오. 그리고 믿고 그리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사람도 여기에서 못난 사람 없습니다. 한사람도 버림받은 사람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9~10). 내가 말한 것은 성령의 말씀을 듣고 여러분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여러분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 놓을 정도로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면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맡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 필하고 나갈 때 여러분의 모든 짐을 다 여기에서 하나님 앞에 맡기고 나가십시오. 아멘.  

/2015. 1. 18. 주일설교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