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5년 1월 18일
본문: 디모데전서 1:1~11
설교: 이수영 목사(새문안교회 담임)
제목: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

▲이수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사도 바울의 서신 중에는 <로마서>로부터 <데살로니가후서>까지의 편지들처럼 교회공동체에 보낸 것도 아니고, <빌레몬서>처럼 사사로운 개인에게 보낸 편지도 아니며, 교회의 책임 있는 직책 담당자에게 보낸 편지들이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보낸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 그리고 디도에게 보낸 <디도서>가 그런 편지들입니다. 이들 편지에서 사도 바울이 다루는 전체적인 주제는 기독교공동체에서의 지도력입니다. 이 지도력과 관련하여 바울은 교회 안에서 거짓 교사들이 그릇된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해야 함을 말하고, 교회의 조직과 행정, 그리고 예배에 관해 말하며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성품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한 그리스도의 훌륭한 종이 되는 방법과 그 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디모데나 디도 같은 자기의 동역자들이 자기에게서 위탁받은 교회들을 잘 돌보게 하기 위해서 쓴 일종의 목회지침서 같은 편지들이기에 그것들을 한 데 묶어서 <목회서신>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소아시아 출신의 젊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유대계 어머니와 그리스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때 그의 선교사역에 동반자와 보조자의 역할을 하도록 발탁되었습니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여러 서신에서 공동발신인으로 언급될 정도로 그의 가장 절친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참 아들”(본문 2절)이라고까지 불렀습니다. 그것은 그가 바울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신실성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고전4:17에서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라고 쓴 것으로 봅니다. 그 디모데를 바울은 자기의 선교활동으로 생긴 신생 교회를 방문하도록 자주 파송했습니다.
본문 2절에서 사도 바울이 쓰기를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한 것처럼 <디모데전서>는 교회에 보낸 편지가 아니라 개인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본문 3절에서 사도 바울이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이라 쓴 것은 이 디모데전서가 사도 바울이 디모데로 하여금 에베소 교회를 목회적으로 잘 돌보게 하기 위해서 쓴 목회지침서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그의 제3차 전도여행의 초기에 거의 3년 간이나 에베소에 머물며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은 그의 제3차 전도여행의 끝 무렵에 거짓 교사들의 출현이 에베소 교회를 병들게 할 것을 예감하고 그 교회 장로들을 불러 경고한 바 있습니다(행20:17-30). 그때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행20:29-30) 그가 마게도냐로 가면서 디모데를 데리고 가지 않고 에베소에 머물게 한 것은 그곳 교인들이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하며 경계하라 한 에베소 교회에서의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1세기에 교회를 위협했던 영지주의 운동과 관련이 있고 유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율법 규정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교회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편지의 첫 머리에서 의례히 쓰는 인사말인 1-2절에서 우리가 먼저 주목할 말은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소망이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은혜의 언약의 중보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에게 유일하게 참된 길이시고 진리이시며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문이시고, 그의 재림이 우리의 구원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우리에게도 이 세상에게도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연달아 일어나는 방화사건, 가족 살인사건, 아동폭행사건 등을 보며 소망이 있다고 여겨집니까? 정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소망을 줍니까? 그 어떤 여건 속에서도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는 용서와 구원과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악하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천국과 복된 삶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에나 어떤 여건 속에서도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2절 하반절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하는 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동일하게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우리에게 임할 것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소망이 되시는 것은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와 동등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3-4절에서는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로 갈 때 디모데는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면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에베소는 오늘날의 터키에 해당하는 소아시아의 수도로서 로마 제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습니다. 마게도냐는 오늘날의 북 그리스에 해당하는 로마의 점령지였습니다. 데살로니가가 그 수도였으며 빌립보도 마게도냐에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봅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영지주의적 체계에서는 신화와 신들의 족보와 구약성경의 인물들에 대한 사변적 해석을 자세하게 늘어놓는 것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고 교인들이 거기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게 했다는 말입니다. 교인들이 만일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다른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따르면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어 그의 뜻을 충실하게 받드는 일보다는 쓸데없는 사변과 논쟁만을 일으킬 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신자들이 자기가 전해준 교훈만을 따르게 할 것을 디모데에게 지시하며 그 이유를 제시합니다. 본문 5절에서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하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다른 교훈이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인 반면에 사도 바울의 교훈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이 말은 우리에게 우리의 신앙생활의 중요한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게 합니다. 그것은 곧 사랑입니다. 믿음의 본질은 신학적 사변과 논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에 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냥 아무런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받아들임으로써 회복해야 할 것이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이며 그것들을 가지고 이루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자리 잡아야 하지만 참된 사랑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명심하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런 마음과 양심과 믿음을 주시기를 날마다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기가 가르친 교훈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밝힌 후 이를 따르지 않는 자들의 행태를 지적합니다. 본문 6-7절입니다: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복음을 바로 알지 못하고 그 바른 교훈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계속해서 율법을 들먹거리며 그것을 멋대로 해석하고 자의적으로 적용하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말하고 확증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조차도 모르며 헛소리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안의 거짓 교사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사용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율법을 오용하고 있다고 선언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새로운 계명을 세우려고 하면서 율법을 제멋대로 오용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율법은 범법자들을 고소하는 것이지 복음을 따르는 이들을 고소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거짓 교사들이 말하는 어떤 새로운 계명에 미혹되지 말고 복되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영광의 복음에서 나오는 바른 교훈만을 따를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본문 8절 이하를 봅니다: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율법의 행위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그렇다고 율법이 폐기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주신 선물이고 하나님의 백성의 표지입니다.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율법을 적법하게 쓰는 것이겠습니까? 먼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참된 의도와 그 바른 의미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조명되어야 율법의 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두 가지 사랑으로 요약하셨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 사랑을 모를 때, 사랑이 없이 율법을 대하고 율법대로 행할 때 위선과 온갖 범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 9-10절에서 언급한 온갖 종류의 사람들 즉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와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 하는 자들”은 모두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을 모르거나 사랑이 없는 자들입니다.
10절의 “남색하는 자”란 요즈음 흔히 하는 말로 “동성애자들”을 가리켜서 한 말입니다. 동성애자들이 분명하게 불법하는 자들 명단에 들어있음을 똑똑히 보아야 합니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그들은 강변할지 몰라도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참된 사랑을 모르거나 참된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날이 갈수록 이 세상에는 온갖 요사스러운 말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미혹되기 쉬운 세상입니다. 사탄의 궤계는 교묘한 말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변질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그 꾀와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가 해석해주시고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사도들이 받아 전해준 바른 교훈을 충실히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마지막 절에서 쓰기를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했습니다. 그가 가르친 교훈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복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복음의 교훈을 따르면 복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입니다. 그 복음을 따르며 그 교훈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영광을 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각종 이단의 침투에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스스로 보수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교단일수록 이단들의 온상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연합기구가 분열되어 있고 그 사업도 좌초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성경적 복음의 순수성과 사도적 신앙의 전통을 바르게 지켜나가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 안에서 말씀 위에 바로 서고 건강한 신앙인으로 날마다 더욱 성숙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