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12장 부부상담에서 상담적인 대화법

부부의 대화는 서로의 감정이나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이다. 부부는 대화를 통해 감정을 교류하고 의견이나 견해를 전달한다. 이는 부부간 대화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부부의 대화는 서로에게 정신에너지를 전달하는 결과를 산출하는 수단으로, 중요성이 높다. 다만 이런 대화를 상담적인 방법으로 할 때,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만 다르다.

1. 마음의 전달과 대화

부부의 대화는 마음의 전달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부부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대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바탕이 된다. 서로의 존재를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만 말하면 다투거나 싸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서로의 생각과 마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는 수단적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생각은 특성상 복잡한 논리적 성격을 갖는 측면이 있다. 생각은 이성적 사용을 요구하는 것으로, 대개 맞는가 틀리는가의 답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마음은 대개 정(情)적 측면의 응답으로 가능하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우리는 효과적인 대화를 위해 다음과 같이 마음을 전달하는 대화 유형을 알아야 한다.

1) 사교적 대화

사교적 대화는 단순한 친교에 해당하는 경우로 사귐을 위한 것이다.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을 보면 여러 대화의 유형이 있다. 서로 만나면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어떻습니까?” 이런 방식의 대화를 하는데, 이를 우리는 사교적 대화라고 부른다. 사회생활에서는 사교적 대화를 너무 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는 부부 사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처음 연애 시절에는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사교적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오늘 예쁜 옷 입고 나왔네!” 등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보이는 대화로 시작한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 그런 대화는 많이 줄어드는 편이다. 그럼에도 사교적 대화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여는 효과를 갖는다. 이는 부부의 대화 유형에서 사교적인 대화를 첫 번째 대화 유형으로 분류하는 이유이다.

부부의 대화가 언제나 좋을 수는 없고,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갈등은 서로를 생각하게 하는 어느 때의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불행하게도 서로의 대화 중에 다툼이나 갈등을 경험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부부의 대화란, 비록 갈등이 있어도 어떤 의사를 전달하고 에너지를 교류한다는 점에서는 일정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어떤 이유로든 전혀 말하지 않는 상태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진정 불행한 것은 무관심과 대화가 전혀 없는 것으로, 이는 건조한 부부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부관계는 겉으로는 다툼이 일어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부부는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가장 숨 막히는 상태에 있다. 이는 대화의 부재만큼 부부가 힘든 것은 없다고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원하는 데도 대화가 없는 것은, 답답함을 유발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부부는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화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나음을 의미한다. 물론 서로의 생각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당연히 말다툼도 생기지만, 해결점을 찾는다면 오히려 성숙한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2) 다툼식 대화

다툼식의 대화는 문제를 갖고 있는 부부의 특징이다. 부부는 화가 난다든지 좌절감이 있다든지, 각자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체로 다툼식의 대화를 하게 된다. 물론 다툼도 대화가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나은 경우가 있다. 다툼식 대화에서는 부정적인 말을 전달하기에 잘 통하지는 않지만, 일단 상대방의 의도와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답답하지는 않다. 다만, 불필요한 마음을 드러내 더 상처가 될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다툼식 대화가 위험성을 초래하는 경우 다음의 대화 방식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쉽다. 만약 자녀에게 숙제를 하라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도 숙제를 안했다든지, 방을 제대로 치우지 않았을 때 자녀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얘기할 것이다. “너 왜 방 치우지 않았어?” 하거나 “야, 너 때문에 내가 정말 죽겠다”, 혹 정도가 아주 심해지면 “내가 너를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 라는 후회스런 말도 한다. 이런 방식이 부부에게서는 “내가 어쩌다가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났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혼자서 조용히 사는 편이 더 낫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다툼식 대화는 부부사이에 원하는 대화와는 전혀 대립적이다. 그것은 부부가 원하는 말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쪽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다툼식 대화는 상대방이 원하는 심리를 전혀 읽지 못한 경우와 알고 있는 경우로 구분된다. 이미 그 마음을 알고서도 상응하는 말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서로에게 가장 바라는 대화는 바로 존재를 인정하거나 애정을 표현하는 대화일 것이다. 물론 둘은 겉으로 다른 것 같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 둘은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여자는 애정표현의 대화를, 남자는 자신을 인정하고 알아주는 대화를 원한다.

이처럼 원하는 대화가 있는데도 그것이 쉽지 않은 이유가 뭘까. 서로의 삶에 차이가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은 결혼 초반기에는 대개 남편이 집안에 들어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원하는 편이다. 여성은 결혼을 통해 관계를 구축하기 원하기 때문이다. 남편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서로 친밀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때문에 여성은 관계를 추구하는 편이지만, 남성들은 오히려 밖에서의 성취를 추구한다.

남성은 밖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일하므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자 한다. 이런 상황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지만, 때로는 남편과 아내의 심리 차이 때문에 잘 이해하지 않으면 갈등의 요인이 된다. 그래서 아내에게는 남편의 늦은 귀가, 집안에서 시간을 적게 보내는 것 때문에 부부간의 갈등이 늘어나 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면 부부간에 싸울 때는 어떤 얘기가 오갈까. 결혼 초반기에는 대개 남편이 늦게 들어오면 여성들이 화가 난다. 그러다 화가 쌓이면 “나한테 관심이 있어? 없어?” 하면서 따진다. 아내가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남편은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왔는데 아내가 수고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바가지를 긁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개 남자들은 “나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나 좀 가만히 놔둬!” 하면서 퉁명스럽게 대응한다. 부부는 이런 식으로 대화하다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되면, 그때부터 사태는 심각한 상태로 발전한다.

그러기에 이런 다툼식 대화의 본질은 “당신은 이것 때문에 잘못 했어. 당신같이 형편없는…”하는 식으로 상대방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데 있다. 그것은 잘못이나 허물을 덮어주려는 사랑의 마음이 아니라, 들추어내고 문제로 만들려는 태도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대화하면 아무 문제를 유발시키지 않을 것을, 오해하려는 마음으로 말하기에 문제가 된다. 큰 잘못도 이해하면 작아지지만, 오해하면 작은 문제도 큰 것으로 되고 말기 때문이다.

3) 탐색적 대화

부부는 궁금한 점을 서로에게 질문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대개 남편보다는 아내가 많이 하는 편이다. 궁금한 점을 질문하여 해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바로 탐색적 대화이다. 탐색적 대화는 대응에 따라 관계를 증진시키거나 발전하게 하지만, 더 악화되어 좋지 않는 쪽으로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질문에 잘 대응하면 더 좋은 이해의 폭을 넓히는 쪽으로 발전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더 나쁜 쪽으로 악화된다. 예를 들어 아내가 물건을 사오면 ‘얼마 줬어?’ ‘어디서 샀는데?’ ‘잘 샀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잘못하면 감정에 따라 부정적인 탐색적 대화가 될 수 있다. 이처럼 탐색적인 대화란 상황이 부정확하고 자신이 모르는 상황에서 부부가 흔히 할 수 있는 대화 유형이다.

그런데 탐색적 대화 유형은 너무 많이 사용하면 상당한 불편감을 줄 수 있다. 이와 관련한 예를 우리는 옛날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여자들은 대개 처녀 시절 기차나 버스를 타고 여행하다 옆에 나이 많은 노인들과 함께 앉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때 “처녀 어디까지 가?” 하고 물어서 대답하면 또 “성이 뭐야?” “본(本)이 뭐야?” 거기다 “언제 시집 갈건데?” “애는 몇 낳을 거야?” 하고 물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무척 짜증이 났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탐색적 대화는 바로 그런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는 상대방에게 너무 탐색적인 대화가 그다지 좋지 않은 이유이다.

실제로 부부간 탐색적 대화를 자주 하면, 점차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치기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떠 보려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실한 대화를 원하기보다 겉으로만 대화하려는, 성의 없는 대화로 생각되는 편이다. 특별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인들에 비해 대체로 눈치가 빠른 편이기에, 탐색적 대화를 금방 알아차린다. 그래서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솔직하게 말을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중에 이해하게 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후술할 솔직한 대화이다.

4) 솔직한 대화

솔직한 대화는 부부에게 필수적인 때가 있다. 부부는 갈등이나 어떤 문제가 있을 때는 진솔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면서 얘기해야 한다. 솔직한 대화는 부부의 갈등을 풀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어떻게 하면 갈등 상황에서 솔직하고 진실하게 대화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사랑에 관해 대화하는 것이 일차적이다. 사랑의 대화는 모든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부부는 사랑에 대한 솔직한 대화가 부족하여 갈등이 축적된 것이다.

사랑에 대한 대화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연구자들은 사랑에 대해 성적 흥분을 포함한 열정과 책임을 지고 헌신하는 태도, 그리고 관심에서 오는 친밀감 등 세 가지가 ‘사랑의 필수적 3가지 요소’라고 한다. 개인이 누군가를 사랑했을 때 그 마음을 상대방에게 과연 전달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마음을 전달하는 대화기술이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잘 전달하지 못하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기술이 부족하면 겉과 달리 마음 속에 진정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형태는 남을 조정하는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상대를 배려하는 사랑은 있으나 대화기술이 없다면 많은 경우에 인간 사회에서 오해를 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대화기술이 부족하면 오해의 소지를 초래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사이, 부부사이에는 많은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서, 또는 자녀를 사랑하지 않아서 오해가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데도 불구하고 단순히 대화기술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부부를 위한 상담을 하다보면 서로가 다툼과 싸움을 많이 하는 경우에는 상담의 진행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아내가 얘기하면 남편이 공격하고, 남편이 얘기할 때는 아내가 공격하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 상담자는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묻게 된다. “혹시 아내께서는 남편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예,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한다. 남편에게도 아내를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는 부부간에 다툼은 대개 보면 대화기술이 없어서 그런 경우로 보아야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상대방에게 잘 표현해서, 그 마음을 상대방이 잘 받아들이게 하는 대화기술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4가지 대화를 기술했다. 어느 대화가 더 좋을지, 좋지 않을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편이 안타까울 것이다. 어떤 대화를 주로 하고 있는가에 따라, 부부의 관계와 그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부부의 상태를 알아야 한다는 일정한 기준을 삼으려는 것이다. 치료자는 이를 적용하여 부부관계와 상태를 진단함은 물론, 더 나은 대화의 형태로 유도하여 관계를 진전하는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2. 부부 대화의 일반적인 특성

대화는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형식만이 아니다. 실제로는 마음을 주고 받으며, 이로써 감정교류의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실제로 감정 교류는 정신 에너지를 주고받는 형태가 되는데, 이는 대화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우는 것이다. 부부의 대화에서는 다음의 특성이 주로 발견된다.

1) 감각적 정보의 대화

부부의 대화에서는 감각적 정보의 대화가 가장 많다고 볼 수 있다. 감각은 심리 변화에 일차적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감각은 단순한 느낌의 정도를 넘어 심리를 변화시키는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각기관은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감지한다. 인간은 이 다섯 가지 감각이 있기 때문에 세상과 접촉하며 살 수 있다. 세상과 접촉할 수 있는 창문 역할인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보고 들은 모든 정보는, 어느 하나라도 하찮은 것이 아님을 생각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남편이 전화도 없이 12시 후 들어왔다면, 아내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를 예로 들 수 있다. 첫 번째로 할 수 있는 생각은 ‘혹시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다. 걱정을 하면 아내는 염려와 불안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남편이 바깥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내에게는 ‘화’라는 감정이 뒤따른다. 나아가 ‘혹시 이 남편이 바람을 피우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올 수도 있다. 이처럼 개인은 보고들은 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감정이 변하게 되어 있다.

생각이란 너무나 다양하여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없다. 이런 생각의 종류란 일단 시간적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서부터 나오는 생각, 즉 나름대로의 가치관에 따라 경험되는 것들이다. 반면 현재로부터 비롯되는 생각도 있다. 이는 사고체계에 따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또 미래에 관련된 사고는 대개 부부가 ‘기대한다’는 측면이 작용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기대는 때로 부정적이 되면 마음에 좌절이나 절망감을 갖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개인의 감정은 희로애락과 애욕 등을 기본적인 감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감정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많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감정이란 저절로 주어지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화난 감정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부는 서로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는데, 그 기대에 어긋난다면 서로에 대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런 일로 인해 생기는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과정 속에서 “에이, 난 그 사람을 안 믿어” 이런 식으로 표출한다면, 서로는 기대와는 상반되는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로 생기는 감정을 극복하고 “아하, 내가 기대를 잘못했나?”라고 반성하게 되면, 거기에서 건설적인 방향으로 돌이킬 수도 있을 것이다.

부부의 감정은 이를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매우 다른 행동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는 부부의 감정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감정을 행동적으로 옮기는 과정 속에서 서로가 언어폭력, 신체폭력 또는 기물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되면 상당한 문제로 될 수 있다. 이때 다툼식 대화는 진위 여부를 넘어 그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성을 파악해서인지 부부는 함께 살다보면, 자기의 감정을 환경에 의해 억누르기도 한다. 그러나 연구를 보면 감정은 억누른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무의식에 억압될 뿐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에게서 무엇인가 이루어지지 않는 감정이나 소망은 대개 무의식화해서, 그 사람에게 오래토록 남는다. 감정을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부부는 서로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거기에 대해서 표현하고, 그로 인해 얽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가 필요하다.

2) 기대와 바람의 대화

부부의 대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이 있다. 아마도 기대와 바람일 것이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라면, 서로에게 기대와 바람을 갖기 마련이다. 이때 부부 사이에 존재하는 기대와 바람은 보통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상대방이 나를 위해서 이런 것을 해줬으면 하는 소망이다. 실제로 부부는 서로에게 이렇게 해줬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예를 들어 아내가 남편에게 “나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대해 달라!”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 이때 부드럽고 따뜻하다는 것은 “나의 감정을 알아주고 나를 잘 이해해 준다.”는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경우에 아내의 부드러운 대응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반면 아내는 “나를 알아 달라!”라는 기대를 남편에게 하고 있다. 이는 존재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로 여성들이 배우자에게 많이 갖는 특성으로 나타난다. 이때 아내의 “나를 알아 달라”는 기대는 “내 감정을 알아 달라”는 것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감정이 자신의 삶을 대표해 주는 지수 역할을 하는 이유이다. 부부가 “행복하다”라고 느낄 때의 행복이란 바로 현재의 감정 상태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방이 나를 위해서 해줬으면 하는 바람은 자신을 위한 소망이다. 그러나 부부는 그런 소망이 진정으로 어떤 것인지 정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 배우자를 위한 소망이 분명하게 표현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 뿐 아니라 배우자가 나에게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인식하여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결혼생활 이삼십년이 되어도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부 상담을 하다보면, "나 이 사람하고 삼십년을 살았는데 도대체 저 사람이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서로가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는 한,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3) 이해와 사랑의 대화

이해와 사랑의 대화를 맨 나중에 두었지만, 실제로 가장 마음의 밑바닥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다.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문제일 뿐이다. 이해와 사랑의 대화는 부부만이 아니라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누구나 이해하고 사랑하는 대화를 쉽게 하지 못하고 있다.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와 사랑의 대화를 하려면, 먼저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전제돼야 하는 것이다.

영어에 understand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는 ‘이해한다’라고 번역이 된다. 이 말을 자세히 보면 under-(아래) stand(서다)의 결합 구조이다. 상대방 아래에 서 봐야 그를 이해할 수 있고, 그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상대방을 존경하지 않으면, 즉 무시한다면 상대방의 입장을 알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는 그대로 사랑의 본질을 시사한다. 사랑의 본질은 스스로 "이것이 사랑이니까 받으라!"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과연 뭘 원하는지 알아서 그에 상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부부가 뭔가를 바라고 소망하는 데에는 서로의 관계를 증진하는 기대효과도 있다. 서로를 위한 기대는 부부 사이에 있어 서로의 관계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소망이기 때문이다.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대체적으로 아내들이 남편에게 원하는 소망은 남편이 집에 일찍 들어오고, 애정표현을 잘 해 주고, 자기의 감정을 잘 알아주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아내는 남편이 성적 목적이 없는 상태에서도 사랑 표현을 자주 해 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길을 걸을 때 손도 잡아주고, TV를 보더라도 어깨에 손을 올리는 등 다정한 느낌을 주는 신체 접촉을 원한다.

그런데 남편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손을 한 번 잡으려 하면 ‘탁’ 치면서 더 멀리 가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지 않기에 알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풀리지 않은 감정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기대하는 것에 대해 이해해 주지 않는 것에 서운해,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지 않은 심리이다. 그런 행동을 취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 그런 행동을 취하는 부부라고 해도 서로 원하는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정도의 부부라 해도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나 인간관계를 맺을 때, 상대방이 자신을 위해 주고 싶어 하는 것을 아는데 익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경우 알면서도 모르는 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모든 것은 마음이 문제이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보다 낮은 자세로 상대방을 알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이는 상대방으로부터 뭔가를 받아서 채우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겠다는 마음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부부의 대화에서 말보다 마음이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