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한 나라와 사회가 얼마나 건전하가를 알려면,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가정의 건전성을 보면 된다. 성경의 역사도 천지창조라는 거대한 하나님 사역으로 시작되고 있지만, 인간의 실제적 역사는 아담과 하와의 한 가정을 에덴동산에 세움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 가정의 신앙과 질서가 무너지게 될 때 그것은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 지금까지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범죄 여파를 경험하고 있다. 한 가정은 비록 작은 단위에 불과하지만, 거기에서 문제가 생기면 가족 전체는 물론 이웃과 친척들, 더 나아가서는 그 가정이 속해 있는 사회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가정이 건강하게 유지되면, 비록 주변 환경이 아무리 어렵다 하여도 이를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받을 수가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과거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방랑하며 지냈다. 그런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그들이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가정이 신앙으로 건실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가정이 흔들리지 않고 건전하게 유지됨으로 국토, 주권, 언어, 역사 자체가 단절되었던 황무지 같은 역사 속에서도, 거센 풍랑을 넉넉히 헤치고 드디어 새로운 독립국가를 세우는 기적을 꽃피울 수 있었다.

오늘의 본문의 말씀 속에도 사도 바울은 가정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해야 함을 명령하고 있다. 바울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다” 하였는데, 여기에서 ‘옳다’는 헬라어로 ‘디카이오스’다. 바르고 정당하다는 뜻이다. 곧 그렇게 하는 것이 마치 바르고 넓은 길을 가듯이 평탄하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이란 뜻이다.

그리고 ‘순종하다’의 본래 의미는 ‘귀를 기울이다’이다. 순종은 바른 경청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바른 경청을 지혜라고도 한다.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다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라고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라고 받아들이셨다. 곧 왕으로서 재판을 잘할 수 있는 지혜는, 곧 백성들의 송사를 경청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명령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그 계명을 잘 지키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게 된다는 복이 약속으로 주어져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첫 계명이란 첫 번째 계명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약속이 있는 유일한 계명이라는 뜻이다.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계명들인 십계명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마땅히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명령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유일하게 제5계명인 부모 공경에 대해서 만큼은 땅의 복과 장수하는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져 있다. 이것은 부모 공경은 반드시 지켜야 할 그 이상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복의 인센티브를 주면서까지 부모 공경의 계명을 지키도록 강력하게 요구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부모들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하는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통하여 공경을 받게 함으로써, 수고를 보상하시겠다는 것이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자녀들에게는 땅에서 잘 되는 복과 장수의 복을 주시겠다는 것 자체도, 엄밀하게는 부모에게 주어지는 복이기도 하다. 자녀가 잘 되는 것은 모든 부모들이 바라는 제1순위 기도제목이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5월의 두 번째 주일을 어버이주일로 지키고 있다. 어버이주일을 보내면서 한편으로는 자녀들로 하여금 어버이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며 그 은덕을 기리도록 가르쳐야 하겠지만, 동시에 어버이 된 어른들이 스스로 과연 어버이로서 어떤 사명과 직임을 하나님께 받았는가를 점검해 보면서, 하나님과 자녀들을 향하여 어떤 마음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앞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할 성서적 근거와 이유를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자녀들이 부모들을 공경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지적하는 것도 되겠지만, 동시에 부모들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자세로 가정을 이끌며 자녀들을 양육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자화상이기도 하다. 부모는 자녀에게 대접받는 위치이기 이전에, 먼저 어떤 사명을 갖고 있는가를 앞세우는 거룩한 자리이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