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예수님께서는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당연함이니라(마 10:10)”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와 장로의 길은 복된 길이기도 하지만 고난의 길이기도 합니다. 섬김을 받는 귀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섬겨야 하는 낮은 자리이기도 합니다. 일꾼들이 받는 생활비가 당연한 것은, 성도보다 많은 권위와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혹 하나님의 권위에 누를 끼칠까 봐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기 위함도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에 따라 금이나 은이나 동전이나 허리춤의 ‘돈 주머니’에 넣어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행용 가방도 가지지 말고, 두 벌 옷이나 신발이나 지팡이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배고프던 어린 시절 양말을 몇 번씩 꿰매 신다 보니, 뒤쪽이 항상 볼록했습니다. 추석이나 설 명절이 되어야 새 양말과 새 고무신, 새 운동화를 신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엔 양복이 그리 흔한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목사님들도 단벌 신사로 목회하곤 했습니다.

그 힘든 세월 속에서도 목사님과 장로님들은 어려운 성도를 찾아, 끼니를 굶지는 않는지, 질병으로 고통 당하지 않는지 세심하게 살펴 주셨습니다. 혹 끼니를 거르는 가정이 있으면, 몰래 대문 앞에 쌀이나 보리 한 말을 놓고 오던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큰 교회는 아니지만, 서로 사랑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세상 가운데 빛이 되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목회자나 지도자들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정말 실망스럽고,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목사는 강단에서 말씀을 갈구하는 성도들에게 영의 양식을 먹일 의사 없이, 자신의 신세 타령이나 하고 불만을 터트리거나, 자랑과 교만에 가득 찬 말씀을 내뱉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양들은 그저 ‘아멘’, ‘아멘’ 할 수밖에 없지요. 혹 ‘아멘’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아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시며 아멘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강단에서 늘 ‘한국교회가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하십니다. 목회자들이 회개를 해야 된다고 외치시는데, 왜 정작 본인은 이를 실천하지 않는 걸까요? 이처럼 말과 행동이 함께하지 않는 주의 종들이 얼마나 많은지 근심스럽습니다.

필자는 지도자 분들께, 주일예배에서 말씀을 증거하실 때를 제외하고는 양복을 벗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양복을 늘 입고 계시니, 소외되고 어려운 성도들을 돌아보는 데 지장을 초래하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양복은 제단 앞에 겸손하게 예배드릴 때를 제외하고는 벗으시고, 성도들이나 이웃 주민들과 소통하며 행동으로 함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겉으로는 거룩하고 근엄한 척하시면서, 실상 거짓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주의 종이 되겠다고 결심하던 초심으로 돌아가 소명의식을 갖고 목회하지 않으시려면, 아직 새해인 이 시점에서 깊이 성찰하시고 ‘목사’나 ‘장로’라는 그 직분을 과감하게 내려놓는 것도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즘엔 양복 입은 목사님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거기다 외제차, 고급 차를 구입해 세상 사람 못지 않게 과시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호화로운 마차나 좋은 말을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지 않았음을 기억합시다. 우리 주님은 어린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왜 그런 부분에서는 소홀히 하시는 걸까요?

어떤 목사님은 돈이 많고 권력을 가진 장로나 성도들에게 아부합니다. 분명 교회 일을 잘못 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그들을 두둔합니다. 하지만 힘 없고 연약한 성도들에게는 싸늘하게 대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 비유를 설교하시면서, 왜 정작 자신은 그 의미를 모를까요? 곧 들이닥칠 주님의 재림을 의심이라도 하시는 걸까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라고 설교하시지만, 왜 정작 자신은 제사장이나 레위인이라고 생각해 보진 않을까요? 가난한 이웃과 소외되고 불행한 이들의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어야 할 자들이 그들을 지나치고 외면하는 그 뻔뻔한 모습을 필자는 차마 볼 수 없습니다.

크다 싶은 교회 목사님을 학교에 초빙하여 강의를 맡기기도 합니다. 정작 교회 강단에서 엉터리 설교를 많이 하시는 분인데도, 교회가 크고 도움을 준다고 강의를 부탁합니다. 과연 그 신학교 학생들의 자질은 어떻게 될까요? 이웃 주민들이 자연재해를 당하거나 큰 어려움이 처해도 수수방관하지만, 복지를 한답시고 기관장 자리는 맡고 강의 초빙에는 응합니다. 만찬에 초대되어 지역 유지 노릇은 잘하십니다.

교회 안에서는 아부 잘하고, 선물과 봉투를 잘 주고, 점심·저녁을 잘 대접하는 성도들에게 잘 대해 주십니다. 그렇지 않은 성도들은 오히려 모함하는 진풍경도 연출합니다. 그들은 목사님 앞에서 봉사를 잘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자리에 없으면 하던 일도 안 하고, 목사님을 욕하곤 합니다. 정말 한심하고 우스운 꼴들이 교회 안에서 만연해 있습니다.

목사와 장로라면 교회 안에서는 성도들에게 인정받고, 밖으로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존경받아야 할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제발 양복을 벗으시고, 진실한 모습으로 성도들 속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달리시어 고통 중에 말씀하신, “저들을 사하여 주소서! 자신들이 하는 것을 모르나이다” 부르짖는 음성을 듣고, 새로운 성도의 모습으로 모범을 보이시며 가난한 이웃의 벗이 되어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이효준 장로(부산 덕천교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