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봉독>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달려갈 길"입니다. "달려갈 길" 사도행전 20장 22절로 24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달려갈 길"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달려갈 길" "달려갈 길".

이 세상 사는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삽니다. 우리가 한 번 뿐인 인생을 살아가는데 우리의 삶에 언젠가 마지막은 다가옵니다. 그 때에 나의 살아온 삶을 이렇게 뒤돌아보면서 정말 나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참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끄럽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그러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하루 24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할 때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이고 어떤 말을 남길 것인가?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바울이 마지막 순교를 향해 떠나가는 그 길목에서 주의 종들을 초청하여 그들에게 전한 고별설교의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인 사람이라 이제 자기가 이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면 그 가는 길이 마지막 길이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불러서 주의 종들을 불러서 마지막으로 저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한 후 예루살렘에 갔다가 붙잡혀서 로마로 후송되어가고 그곳에서 순교하게 됩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교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성령에 매인 삶
첫째로 사도바울은 성령에 매인 삶을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무언가에 매여 삽니다. 늘 물질에 대한 염려 때문에 물질에 매여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은 그런 제도가 아직 안 들어왔지만 미국에서는 보통 집을 살 때 30년 월부로 삽니다. 모기지라고 해서 집을 살 때 한 10퍼센트만 내고 나머지는 30년동안 매달 지불해야 되는데 자기 월급 받는데서 한 분의 1 이상이 다 그 비용으로 나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집을 사놓고 30년을 걱정해요. ''아이고 다음 달 또 그 돈을 내나? 또 어떻게 갚아야 하나?'' 돈 걱정에 30년을 매여 사는 거예요. 어차피 매달 그 돈이 빠져나가는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가서 큰 집을 사갖고 무리하게 모기지를 내다 못 내가지고 중간에 집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물질에 매여 사는 사람.

자기 자랑에 매여 사는 사람. 어떤 사람은 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어르신은 조선시대 조선총독부에서 높은 지위를 지냈어요. 만나기만 하면 그 얘기를 합니다. 옛날 소싯적 얘기인데도 안기만하면 그 얘기 시작하면 2시간이에요. 다음에 가면 또 그 얘기하세요.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십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자랑거리도 아닌데. 늘 그 얘기만 하세요.

누군가 무엇에 매여 사는데 사도바울은 예수를 만난 다음 성령에 매여 살았습니다. 여러분, 이왕이면 성령에 매여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에 붙잡혀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잡혀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것에 붙잡혀 살지 말고 주님의 은혜에 붙잡혀 살고 성령에 붙잡혀 살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붙잡혀 살 때 은혜가 임합니다. 축복이 임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늘 함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기 전에 예수님을 핍박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그 열정이 있었는데 그가 자기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겼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로 알고 착각하고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 지켜서서 잘 죽는다고 생각을 했고 또 예수 믿는 사람을 붙잡아 감옥에 집어넣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가다가 강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서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눈이 멀었습니다. 3일 동안 금식하며 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을 때 아나니아라고 하는 주의 종을 보내서 그에게 안수하게 합니다. 안수할 때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고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지고 다시 눈을 뜨게 됩니다.

사도행전 9장 17절로 19절에 설명이 나옵니다.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성경학자들이 이때 청년 사울의 나이를 한 30세로 봅니다. 그러니까 처음 30년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 열심을 갖고 자기의 의로움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늘 자기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가 거꾸러진 뒤에 완전히 바뀌어져서 나머지 30년은 온전히 예수님 한분만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로마 네로황제시대에 이 참수형을 당해 순교할 때까지 후반부 30년은 성령에 매여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의 남은여생을 바쳤던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만 듣고 성령의 지시만 따르고 어딜 가든지 성령충만의 놀라운 역사를 선포하고 큰 부흥의 역사를 일으킨 하나님의 귀한 종이 되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선교사로 파송 받고 나간 것도 안디옥 교회에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파송을 받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과 3절에,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선교사를 보낼 때 성령께서 안디옥 교회에서 가장 뛰어난 두 명의 주의 종을 택하여서 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선교사역에 내보내라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바울과 바나바 그 교회 가장 뛰어난 주의 종 두 분을 택하여서 금식하고 안수하고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특별히 주님의 일을 할 때는 주님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실 때 우리가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가라 하면 가고 멈춰라 하면 멈춰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2차 선교여행에 그 길을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도바울은 아시아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터키지역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막으셔서 어디로 보내시느냐? 유럽으로 보내셨습니다. 16장 6절로 9절에 설명이 나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마게도냐 즉 지금으로 말하면 그리스 사람이 나타나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그 환상을 보고 거기서 배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가 유럽이 복음화 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제3차 선교여행 때는 에베소를 중심으로 한 2년 동안 말씀을 전했는데 열두 명의 제자들이 성령 충만을 받고 그곳에 큰 부흥이 일어나서 2년 만에 온 아시아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다 듣게 되었습니다. 19장 10절에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여러분, 성령이 시키시는 일을 하면 이와 같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그 마음 가운데 다시 꿈과 비전을 주시는데 “이제는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 19장 21절에 설명합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그는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붙잡혀서 로마로 가서 결국 로마에서 순교합니다. 왜 로마로 가기를 원했느냐? 그가 로마에 가기 전에 보낸 편지 로마서 1장 14절로 15절에 보면,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이미 복음이 로마로 미리 들어가 전해져서 로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내가 가서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리라 하는 불타는 그 선교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마지막 로마로 가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이렇게 살아갑니다. 성령께서 시키는 대로, 인도하는 대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마음에 꿈과 소원을 주시는 대로 결단하고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에 사로잡히면 예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합니다. 할렐루야.

1958년 우리교회가 불광동에서 시작해서 1963년 서대문으로 넘어올 때에 약 500명 성도가 되었고요. 제가 64년도 4월 달에 순복음교회에 처음 나왔을 때 약 2000명이었고요. 그해 말에 3000명 정도로 교인이 늘어났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지 그 때에는 예배 끝나고 나가면 서대문 로터리가 마비가 되어가지고 서대문 경찰서에서 사고가 날까봐 부탁도 안했는데 대여섯 명씩 늘 교통을 정리해주던 기억이 납니다. 막 사람들이 몰려오는데요. 성령의 은혜가 막 여름철 장맛비같이 팍 쏟아지는데 들어오기만 하면 다 불을 받는 거예요. 은혜를 받는 거예요. 그때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순복음교회에 와서 들은 얘기는 성령 받으라는 얘기 밖에 들은 기억이 없어요.

그땐. 저는 4대째 장로교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인데 우리 증조부께서 120여 년 전에 평양에서 선교사님들한테 처음 예수 믿으시고 저희 할아버님이 평양교회에서 장로를 지내시고 그리고 북한이 공산화 된 다음에 48년도에 황해도 해주로 내려와서 배를 하나 빌려가지고 그 배 밑창에 다 들어가서 통통배로 38선을 넘었거든요. 그런데 집이 서대문으로 이사 오게 된 것이 1964년 초입니다. 저희 집 바로 앞에 순복음교회가 5분 거리에 있는데 우리 할아버님이 새벽기도를 한 석 달 다녀오셨어요. 딱 저희 가족을 모이라 하시더니 이번 주일부터 우리 전부 이 앞에 있는 순복음교회에 나간다. 젊은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시는데 성령 충만하고 얼마나 그 말씀에 파워가 있는지 모르겠다. 조용기 목사님 29세 총각 목사님의 시절입니다.

그때 발걸음을 제가 순복음교회에 들이게 되었는데 하여간 완전히 성령의 용광로였어요.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는데,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통성기도를 하면요, 얼마나 간절하게 하는지 통성기도가 안 끝나요. 이 종을 마이크에 대고 막 쳐야만 끝납니다. 그렇게 은혜를 받았어요. 그렇게 사람들이 성령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그 힘들고 어려운 시대, 얼마나 우리가 어려웠느냐하면요, 1969년에 여의도로 이사 오기로 결정하고 건축헌금 작정을 시작했을 때에 성도들이 다 걱정을 했습니다. 월 걱정을 했느냐? 여의도가 멀어서 버스비를 어떻게 하지? 정말이에요. 그렇게 어려웠어요. 버스비 걱정을 했다고요. 여의도 이사 가는 것을 버스비 때문에 어떻게 교회가지?

그런데 요즘은 지금 차 세울 데가 없어서 고민이예요. 11시 예배는 와서 20~30분은 돌아야 된대요. 그런데도 성도들이 오시는 것을 보면 너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여 이 같은 성령의 놀라운 은혜가 오늘 이 자리에, 우리 교회에 다시 일어나게 하여주시옵소서. 새해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주셔서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 성령에 사로잡힌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심으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계속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힘써 구제하고 선교해서 한국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세계 선교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는 우리교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햇수로 51년째 순복음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 첫째도 주님의 은혜요, 둘째도 주님의 은혜요, 마지막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때 제가 여기 와서 성령을 받았기에 여기 서서 여러분을 섬길 수 있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데 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예요.

우리 할아버님께서 9남매를 두셨거든요. 그런데 9대독자인 우리 할아버님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나서 아홉 남매를 두셨는데 고모님 한 분은 그때 이미 출가하셔서 월남하지 못하셔서 지금 평양에 계신데 가족이 한 50명이 있습니다. 제 가족이. 여덟 자녀들 중에 저희 가정만 순복음교회로 옮기고 나머지 모든 자녀들은 우리 큰아버님, 작은 아버님, 고모님들은 다 장로교 목사님, 사모님 다 그렇거든요. 순복음교회로 옮겨주셔서 이렇게 큰 은혜를 받게 해주신 것을 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하나님의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성령 받고 나니까 영적인 눈이 떠졌어요.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성령 받고 나니까 예수님 생각밖에 안 나요. 주님 은혜 얼마나 감사한지. 늘 한 평생 주님 위해 살겠습니다. 할렐루야. 사도바울이 성령으로 충만함 받은 다음 그의 일생을, 주님께 받은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그 삶을 바쳤습니다.

2. 주 예수님께 받은 사명
둘째로, 주 예수님께 받은 사명에 대해서 함께 우리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사명감에 불타서 그의 남은 인생 다 바쳤는데 순교의 자리까지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믿음의 전진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23절, 24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지금 그 가는 길이 험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 가는 길이 험할 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합니다.” 하는 이런 결단과 각오로 그 길을 나아간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16절에 그가 고백합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여러분 삶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꿈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여러분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업을 하는 분은 사업을 하는 목적이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이 음악을 하고 찬양하고 예술을 전공을 하는 그 목적이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이 원래 서양 음악이 교회 음악에서 발전된 거예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에서 클래식 음악이 이렇게 발전된 겁니다. 원래 찬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할렐루야!

하나님은 찬양 중에 거하시니까. 내가 직장인으로 직장에서 일을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의사로서 환자를 돌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 원하오니 주님,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여러분이 거룩한 꿈과 소원을 갖고 나아가야 합니다. 나 혼자 잘 살기 위해서, 나 혼자 높아지기 위해서, 그것이 목적이 되면 그것은 그처럼 허무한 것이 없습니다.

옛말에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십년 가는 권세가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정치에 한 번 빠진 분들은 다른 것이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여러 번 안 되고 또 안 되도 또 그 길을 갑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셔서 그 길을 가면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실 건데 그것이 목적이 되다보면 권세를 잡고 난 다음 여러 가지 인간적인 실수가 나와서 그 다음에 정권이 바뀌면 또 문제가 생기고 또 문제가 생기고 또 문제가 생기고 참 안타깝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하는 분들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하게 하여 주셔서 우리 대한민국이 정치가 안정되게 하시고 우리 대한민국이 민주국가로 더욱 발전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정치하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드려야 돼요.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게 하여 주옵소서. 국회의원 중에 크리스천이 108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그분들이 기도 많이 하고 국회에 가서 섬기면 우리나라가 더 크게 발전할 것을 믿습니다. 분명히 교회에서는 크리스천인데 국회가면 그 명함을 떼어놓고 그냥 정치인으로만 일한다고 하면 문제가 생겨나는 거예요. 끝까지 양심을 지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와 같은 일을 감당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삶의 가치
저희 교회에 맡겨진 사명이 무엇입니까? 구제와 선교입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구제와 선교하는데 아낌없이 투자해서 한국 사회에 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로 세계 선교 역사에 가장 아름다운 영향을 남기는 그와 같은 교회로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올 해 6월 달에 한 젊은 선교사님이 아프리카 말리에서 순교를 하셨습니다. 권지상 선교사님. 목사님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선교사가 되기를 소원해서 한양대 영문과를 나오고 총신대를 졸업한 후에 그 불어권인 서아프리카 쪽 선교를 위해서 프랑스 어학연수까지 다녀왔습니다.

아프리카는 동쪽으로는 영어권이고 서쪽은 불어권인데요. 아프리카 말리는 오랜 종족갈등으로 내전이 일어나자 여행 금지구역으로 된 것인데 그곳의 ‘보조족’이라는 곳을 가서 섬겼는데 소수민족으로 부족 99퍼센트가 무슬림이고 가보니까 기독교인이 두 명밖에 없었습니다. 이 부족을 섬기기 위해 2010년부터 아내와 함께 들어가서 정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선교 사역을 하다가 지난 6월 차가 전복되는 사고로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선교사로 간지 4년 만에 그의 삶을 마칩니다.

그런데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러한 위험을 가지고 선교하고 있기 때문에 미리 유서를 써놓으셨어요. 유서가 공개됐는데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제가 선교지에서 만약 순교하게 된다면, 개인적으로 무척 영광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저를 아끼는 많은 분이 저의 죽음으로 인해 인간적으로는 잠시 같이 있지 못해 슬프지만, 천국에서 큰 상급을 받고 있을 저를 생각하면서 기쁨으로 장례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각막과 장기 기증을 해 놓은 상태입니다. 선교지에서 가능하다면 선교지 사람들을 위해 시신이 쓰여졌으면 좋겠고, 가능하지 않다면 화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녀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 때 가장 가치 있는 일’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과 ‘그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하며 (그 마지막 말씀이 굉장히 마음에 와 닿습니다.) ‘소풍과 같은 삶’을 잘 마무리하여 ‘천국’에서 뵙길 기대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 소풍간다고 하면 들떠서 나가지요. 우리가 이 세상 사는데 이렇게 좀 소풍 같은 삶을 들떠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 모든 것 다 놓고 주님 앞에 서게 되는데 그때에 부끄러움 없이 우리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막았을 때에 울면서 막았을 때에 사도행전 21장 13절에, 21장 13절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기도하는 사람들이 다 막습니다. 가시면 안 됩니다. 사도바울 선생님. 가시면 거기서 붙잡혀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이 다가올 것입니다. 가지 말라고 제자들이 울면서 막았을 때에 “왜 울면서 내 앞길을 막아 내 마음을 괴롭게 하느냐. 나는 주님이 원하시는 이 길을 갈 것이다. 그 길이 죽음의 길이라도 나는 갈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삶의 가치에 대해서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그가 사도행전 20장 24절에 내가 주님의 일을 할 때 주님의 일을 위해서라면,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할렐루야! 사람은 죽음 앞에 두려워 떱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기가 드려질 수만 있다면 나는 내 생명도 기꺼이 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8장 35절에,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여러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어떤 희생도 감당할 수 있는 그러한 믿음의 용기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분명히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타협하고 머뭇거리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여, 내 목숨까지도 주님 원하신다면 제가 내 목숨 바쳐 주님 일 하기 원합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그 대통령은 16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신데 노예해방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동족끼리의 전쟁도 감수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1861년부터 65년까지 남북전쟁으로 인해서 남과 북이 나뉘어 수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처음에는 북군이 남군에게 밀렸습니다. 남군에 리라고 하는 장군이 있는데 아주 탁월한 그 전략가입니다. 그래서 계속 북군을 괴롭히고 처음에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참모들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아닌가봅니다.” 왜냐하면 남쪽에도 예수님 믿는 사람이 있고 북쪽에도 예수님 믿는 사람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저들 편인가봅니다.” 그 때 아브라함 링컨이 남겼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마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 인생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내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 편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 당시 인구의 3퍼센트에 해당하는 103만 명의 사상자를 냈고 남북군인 62만 명이 전사하는 그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해방을 시켜서 미국역사에 길이 남는 큰 업적을 남겼는데 이 전쟁에 승리하고 나서 곧 그는 극장에서 암살을 당해 죽습니다. 여러 사람이 그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암살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 있었어요. 생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내가 암살자의 손에 죽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는 분명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길 것입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내어놓고 노예해방이라고 하는 위대한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여러분, 한번 뿐인 인생인데 역사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에 사로잡혀서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야 될 것입니다.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목숨 바쳐 헌신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일생 동안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성령님께 붙잡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고 하면 어떠한 희생이 따라도 그 길을 묵묵히 갈 수 있게 하여 주시되, 하나님 영광 위해서 일생 바쳐 헌신하는 저희들의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2014. 12. 28. 주일설교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